▲ KBS <개그콘서트> 현대생활백수 코너 중 한 장면. 사진제공=KBS | ||
그러나 그냥 손 놓고 있기에는 수많은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기만 하다. 실업상태에서는 마냥 실망하고 있기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 백수라고 재테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적은 돈이지만 재테크를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해두면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A 씨. 3개월 전 현재의 직장에 취업이 되기까지는 A 씨도 백수였다. A 씨는 처음에는 백수생활을 길게 할 것으로 보진 않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것이 참 한심스러운 일이라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기 전까지 용돈을 버는 것은 물론이고 재테크도 해보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우선 시간 관리를 잘하기로 작정했다. 아르바이트 시간과 취업준비에 투자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분배했다. 취업준비는 주로 오전에, 아르바이트는 야간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변변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용돈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가급적이면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줄였다. 친구들과는 집이나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휴대전화도 요금을 고려해 급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발신보다는 수신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이런 A 씨를 친구들은 ‘짠돌이’라고 불렀지만 그래도 사정을 감안해 많이 이해해주었다. 이러한 고통이 나중에 취업이 되면 다 좋은 기억이 되리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담배도 끊어 버렸다. 하루에 2500원 정도 들어가는 담배를 끊거나 줄이기만 해도 한 달에 5만 원 이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장소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건강도 챙기고 교통비도 절약하는 방법을 선택한 셈.
아르바이트는 독서실 야간총무 일을 선택했다. 수입은 생각보다 적으나 저녁시간에 일단 책을 볼 만한 분위기도 되고 해서 선택하게 됐다. 월 급여가 30만여 원이었지만 최저 기본 생활비만 썼기 때문에 15만 원 정도는 모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백수생활 6개월 동안 모은 돈이 90만 원. 취업을 한 지금에도 이 90만 원은 쓸 수가 없어서 정기예금에 넣어 놓고 있다. 이 돈은 평생 동안 쓰지 않을 생각이다. 아주 힘들었던 백수시절에 벌었던 돈이라서 더욱 소중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돈을 보면 큰 위안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돌아보니 조기 취업의 원인도 이렇게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 덕분이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고 했다. 취업이 안 되고 어렵다고 친구들과 낙담하며 술자리나 벌였으면 부모님께 송구스러웠을 것은 물론이고 돈도 모으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실업자 B 씨(여)는 적극적으로 백수생활을 즐기는 케이스다. 그는 직장을 5년 정도 다니다가 현재는 백수생활을 한 지 6개월째라고 한다. 전문직종 경력자라서 구직에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보고 천천히 직장을 찾아볼 생각이었지만 최근의 경기상황으로 볼 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1년은 더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B 씨는 저축해 놓은 돈이 꽤 있어 지금이 아니면 쉴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이 기간을 자기 충전의 시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건강과 자기계발 중심의 계획을 세웠고 경비는 최소화하고 있다.
B 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각종 이벤트에 거의 응모한다. 몇 달 하다 보니 당첨률이 높은 이벤트나 사이트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무료시사회를 통한 영화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하는 편이다. 무료티켓을 양도하는 게시판에도 종종 들어가 본다. 이뿐만이 아니다. 식품·화장품회사에서 실시하는 공장견학에도 응모한다. 무료로 여행도 하고 가끔 선물도 챙길 수 있어서 좋다. 건강유지를 위해선 아파트 내의 헬스클럽을 이용한다. 샤워를 하지 않으면 3개월에 4만 5000원이란다. 샤워는 집에 와서 하면 되니 크게 불편하진 않다. 한가한 오전에 가서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요즘엔 매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에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실업자 훈련과정을 찾는다. 본인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병원서비스 매니저 과정을 다니고 있다. 5년여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느끼지 못했던 많은 점들을 한꺼번에 배우고 있는 느낌이어서 아주 즐겁고 재미있다고 한다.
시간이 남을 때는 구립 도서관을 많이 이용한다. 여기에 가면 정기간행물은 물론이고 평소 보고 싶었던 책도 읽을 수 있고 대여도 가능하니 유익하단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걸어 다녀서 교통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통신요금과 헬스회원비와 집에 내놓는 생활비가 한 달에 쓰는 돈의 전부다.
그간 저축해 논 자금의 관리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친구인 은행직원에게 맡겼지만 지금은 일일이 챙겨보고 다른 저축상품과 비교해보고 결정한다. 다행히 직장을 그만두기 전 백수생활에 대비해서 저축내역을 일부 조정했기 때문에 남들처럼 펀드 같은 금융상품으로 손해를 보는 것을 최소화했다. 그렇지만 경기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어서 거의 모든 저축상품을 만기 3개월로 해두고 수시로 상황을 확인하며 조정하고 있다.
B 씨는 이렇게 자신의 자금을 수시로 관리하고 새로운 상품도 찾다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냥 맡겼을 때보다도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같은 반 친구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집에서 폐품을 모으는데 적정량이 모이면 고물상에 팔아서 저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3이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고 딸에게 물으니 “그 친구는 목표가 있대요. 대학등록금을 부모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이 모으는 것이고, 가급적이면 대학에 들어가서도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서 공부를 하겠다고 해요”라고 대답한다. ‘아직 가치관 형성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고 공부도 더 열심히 많이 해야 하는데…’라는 걱정을 했지만 사실 그 아이의 마음가짐이 우리 시대의 백수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적절한 생활태도라고 생각했다.
백수생활을 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절약하는 습관과, 티끌을 모아서 태산을 만드는 정신, 노하우를 갖게 된다면 이미 재테크의 승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돈 많이 벌어서 펀드로 주식으로 유흥으로 다 날리는 것보다 티끌을 모으는 당신이 더 아름답다.
한치호 재테크 전문 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