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입문 11년차인 이성열은 오랜 부진을 털고 올 시즌 넥센 타선의 중심축으로 매서운 화력을 선보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시즌 초반부터 매서운 화력을 선보이며 넥센 타선의 중심축으로 우뚝 선 이성열(29). 2003년 순천 효천고 졸업 후 포수로 LG유니폼을 입었지만 1군 무대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2008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후 2010년 홈런 24개를 몰아치며 주목을 받았으면서도 꾸준함이 부족하다는 맹점으로 인해 2011년 홈런 7개의 성적표를 받아든다. 결국 2012년 7월, 넥센으로 트레이드됐지만 이성열의 부진은 계속됐다. 그의 은인은 전적으로 염경엽 감독이다. 올시즌 비로소 야구인생에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이성열. 그런 순간을 맛보기까지 무려 11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프로 11년의 야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희로애락’의 결정판인 것 같다. 기쁜 일보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훨씬 많았더라.
▲지금처럼 이렇게 편하게 야구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감독님의 두터운 신뢰 속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대우받고 인정받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 2013년 넥센에서 보내는 올 시즌이 정말 행복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넥센에서 이렇듯 훨훨 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가.
▲너무 뻔한 대답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감독님 신뢰 덕분이다. 감독님은 날 가장 먼저 주전 선수로 뽑아놓으셨다. 애리조나 캠프 때부터 말이다. 그게 선수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감독님의 안목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고, 내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야구란 놈과 싸웠다. 이전까지만 해도 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조금 노력해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역시’ 하는 생각에 쉽게 포기했다. 아마도 내가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부분 또한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시즌을 앞두고 이전에 했던 야구를 다 버렸다는 말을 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10년 동안 했던 야구가 별다른 게 없었다. 그걸 안고 있기보다는 그걸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생각했다. 감독님이 꾸준히 출전 기회를 제공해주셨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가능했다고 본다. 내가 운이 없는 놈은 아닌 것 같다(웃음).
―이전에 야구 안 될 때마다 소 농장을 하시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있는 건가.
―지금까지 두 차례의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언제가 더 쇼킹했었나.
▲LG에서 두산으로 이적했을 때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2010년 반짝 성적 내고선 다시 고꾸라졌다. 그런 상태에서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소식은 진짜 멘탈 붕괴를 뛰어 넘어 멘탈 파괴였다. 그런데 그게 진짜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웃음).
―넥센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5월 초반 KIA를 꺾고 1위를 지키고 있는데, 넥센이 이 기운을 그대로 이어나갈 것만 같다.
▲진짜 그렇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 팀은 2% 부족한 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프런트부터 감독, 코치, 선수들 모두가 가족애로 똘똘 뭉쳐있다. 우정, 애정, 열정이 우리 팀에 녹아들어 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상황이다. 넥센의 상승세는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 지켜봐 달라. 내 얘기가 거짓인지 아닌지를.
―‘제2의 박병호’란 타이틀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병호랑 나랑은 2년 터울이다. 내가 선배인데, 어떻게 내가 ‘제2의 박병호’가 될 수 있겠나. 지난해 보여줬던 병호의 활약을 내가 재현하고 있다는 부분 때문에 그런 꼬리표가 붙을 수는 있겠지만, 나로선 그런 호칭이 달갑지 않다.
―좌타자 이승엽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게 맞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승엽 선배님은 내 야구의 우상이신 분이다. 난 승엽 선배님이 우리나라 최고의 야구선수라고 생각한다. 그 선배님이 경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 그 자체다.
―만약 이승엽 선수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부분과 관련해 질문을 하겠나.
▲시즌 때, 비시즌 때 어떤 스케줄로 생활하시는지가 궁금하다. 즉 평소의 자기관리를 어떻게 해나가시는지 알고 싶다. 왜냐하면 나 또한 선배님처럼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연봉이 1억 원이 안 된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박병호의 기록을 깰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박병호는 6200만 원에서 무려 254.8%가 오른 2억 2000만 원에 새 연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72(7200만 원)를 받고 있는데, 부상만 없이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1억 원 대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병호와 같은 상승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병호의 인상폭이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