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천정부청사 내 청약통장 상담과 가입을 위해 마련된 이동은행에서 직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주택청약종합저축은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6일 공식 출시된 이 통장은 불과 하루 만에 200만 계좌를 돌파하더니, 1주일 만에 330만 계좌를 넘겼다. 기존 청약통장 가입 계좌 수가 600만인 점을 감안하면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가파른 상승세에 금융권뿐만 아니라 정부 모든 관계자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택청약종합저축에 대한 일반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대해 일각에선 은행들의 치열한 고객 유치 때문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주택청약종합저축이 갖는 경쟁력이 없었다면 이 같은 ‘빅 히트’ 역시 불가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경쟁력은 ‘만능’이라는 단어에 녹아 있다. 주택 소유나 세대주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공공 민영 주택에 모두 청약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 통장이다.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이 통장은 마치 나이나 주택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식으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만능이라는 단어에 휘둘려 무조건 가입할 경우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활용도나 혜택이 적어 괜히 갈아탔다가 후회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은 모든 사람이, 모든 주택에 청약할 수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컨대 유주택자의 경우 모든 주택에 청약할 수는 없다. 서울 근교 알짜지역에 선보일 ‘보금자리주택’을 통해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주변 시세보다 15% 저렴하고, 입지가 뛰어난 곳에 공급하겠다는 보금자리주택. 정부는 이 같은 취지에 맞춰 최근 강남 세곡, 서초 우면, 하남 미사, 고양 원흥을 보금자리주택단지 시범지구로 발표했다. 네 곳 모두 입지가 뛰어나지만 이 가운데서도 주목을 끈 곳이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이다.
정부의 공언대로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이곳에 주택이 공급될 경우 유·무주택자 모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워낙 입지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주택자는 만능통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곳에 청약할 수 없다. 보금자리주택은 유주택자의 경우 청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청약저축 가입자였다가 만능통장 열풍에 휩쓸려 주택청약저축으로 갈아탄 사람도 여러모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오는 9월 사전예약을 받는 보금자리주택의 당첨도 낙관할 수 없다. 새로 만능통장으로 갈아탄 경우 기존 청약저축의 가입액, 납입횟수 등은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휴대폰 이동통신회사를 바꿀 경우 기존 마일리지가 없어지는 것과 같
은 맥락이다.
게다가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과열은 당첨 확률을 낮추는 단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존 통장은 민간·공공, 중대형·중소형, 무주택자·유주택자로 청약이 세분화돼 있었지만 이에 대한 장벽이 대부분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기 지역 및 주택형으로 청약자들이 쏠릴 확률이 커지기 때문에 청약자들 사이에선 정작 원하는 주택형에 ‘소신청약’을 하기보다 당첨 가능성을 따지는 ‘눈치작전’도 횡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주택청약종합저축 열풍은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다. 이 가운데 ‘국민은행은 땅을 치고 있고, 국토해양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백미다.
주택청약저축은 현재 우리 신한 하나 기업은행과 농협, 이렇게 5개 금융기관만 취급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은행은 주택청약저축을 취급하지 않는다. 국민은행이 이 상품을 취급하지 못하는 이유는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 전 정부는 경쟁 입찰을 통해 5개 은행을 주택청약저축 수탁은행으로 선정했다. 국민은행은 당시 위탁 수수료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30년여 만에 기금 관리업무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주택청약종합저축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이들 5개 금융기관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반면 국민은행은 고객들이 경쟁 은행들로 몰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5개 금융기관들이 이 상품과 연계해 다른 상품 판매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은행의 속앓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주택청약종합저축 출시를 진두지휘한 국토해양부는 통장 대박에 ‘구세주가 등장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갈수록 가입자가 줄고 있는 청약저축으로 국민주택기금 부족 현상을 빚어왔지만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이 크게 늘면서 기금 확충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윤진섭 이데일리 기자yj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