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인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
이명박 대통령은 올 들어 거의 매월 해외순방에 나서고 있다.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워 해외순방 때마다 경제인들과 동행한다. 일부 기업인들은 대통령 특별기에 탑승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이 대통령과 함께하는 경제인 수행단은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40여 명에 달한다. 경제인 수행단 선정 기준이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향후 구체적인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인 만큼 이들은 이 대통령과 일정을 함께하면서 현지에서 기업 활동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걸어 다니는 뉴스메이커’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과 동행한 기업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인공이고 기업인들은 ‘조연’이기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까닭에 이 대통령과의 해외순방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거나 의미 있는 행보를 하고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는 정치부에 소속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동행하는 관계로 경제보다는 정치에 포커스를 맞춰 취재하고 기사를 송고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실례를 들어보면 6월 중순,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 현지에서 개최된 한·미 양국 주요 기업인들과의 만찬 간담회에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이 참석했다. 정 사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처음으로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공식행사에 참석한 것이지만 국내 언론에는 정 사장의 행보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정 사장과 현지에 함께 간 현대·기아차 홍보라인에선 이를 어떻게, 얼마나 홍보할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동행했다’는 선에서 그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한다.
▲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경제인들이 이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
첫 방문지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한·우즈베키스탄 경제인 초청 오찬 연설’에서 축사에 나선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양국 경제인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공개적으로 극찬했다. 한진그룹은 우즈벡 나보이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 중앙아시아의 물류허브로 직접 투자·육성하는 ‘나보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나보이 프로젝트’를 한국 기업의 대표적 투자사례로 호평한 것이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대한항공의 서비스 속에 안락하게 서울을 다녀왔다”고 말문을 연 뒤 나보이 프로젝트에 대한 조 회장의 결단에 대해 ‘감사, 만족’이라는 말을 동원해 극찬을 이어갔다. 그는 “조 회장이 혜안을 가지고 훌륭한 용단을 내려 나보이 프로젝트는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조 회장은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한국의 국민과 사회를 위해서도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은 이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 정상이 공식행사에서 특정 기업 오너를 거명하며 ‘칭송’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외교 성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당시 동행 기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에 대한항공은 순방이 끝난 뒤 자사 출입 기자들에게 홍보했지만 뉴스의 생명이 ‘신선함’인 만큼 기대보다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한국의 중견건설회사인 동일하이빌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중앙아시아 순방 최고의 이벤트였던 한·카자흐 양국 대통령 간의 ‘사우나 미팅’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자국에 진출한 동일하이빌의 실력을 치켜세우자 이 대통령은 “말로만 관심 가져선 안 된다”며 ‘뼈 있는 농담’을 했다고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지난 2004년 국내 주택업체 최초로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동일하이빌은 현지에 한국형 아파트를 적용, 카자흐스탄 중산층의 호평을 받았다. 동일하이빌은 카자흐스탄 신행정수도인 대통령궁 인근에서 8년 6개월에 걸쳐 2451가구의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최근 미분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때 양국 대통령이 ‘의미 있는 한마디’를 한 셈이다. 하지만 역시 국내 언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페루 리마 APEC 정상회의에서 현대·기아차를 직접 거론하며 치켜세웠던 것도 마찬가지. 이 대통령은 페루에 도착한 첫날 현지 교민들과 함께한 동포 리셉션에서 “오늘 공항에서 들어오면서 보니까 내가 탄 자동차는 중국차인데 앞뒤로 경호하는 차는 현대·기아차더라”면서 “현대·기아차가 우리 앞에 경호를 하는데 내가 앉아서 보니까 내가 탄 차보다도 앞에 가는 경찰차가 더 낫더라”고 호평했다.
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오늘 앞에 쭉 가는 우리 한국 차를 경찰들이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참 좋았다. 차가 참 예쁘고 튼튼해 보이더라”면서 “한국 차들이 고장도 안 나는 참 좋은 차인데 이렇게 해서 우리가 남미 한 나라 한 나라와 가까워질 수 있고 (교류가) 활성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해 동포들의 박수를 받았다.
현대·기아차는 그해 2월, APEC 정상회의를 위해 투싼과 스포티지로 구성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100대를 경찰차로 기증했다. 이 같은 사실과 이 대통령의 극찬을 묶어 적극 홍보할 만도 했지만 현대·기아차는 마음속으로 고마워하는 데 그쳤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