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인배 사장은 ‘1초경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자리까지 오게 된 건 지난 총선에서의 공천 탈락이 시발점이었다. 그때 심정이 궁금하다.
▲나 스스로는 공천파동이라고 본다. 나는 제일 앞장서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열정을 바쳤다. 웬만하면 공천을 주는 게 순리다. 그런데 잘못됐다. 친이-친박이 싸우면서 대구·경북지역 3선 이상 중진들이 다 날아갔다. 대통령 형(이상득 의원)하고 박근혜 전 대표 빼고. 그 공천에서 실패를 했기 때문에 지금 여당이 170석이 넘어도 정치를 이끌어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 당시 울분은 말도 못한다. 공천 못 받을 건 꿈에도 생각 못했다. 탈당한 이도 있지만 나는 의리상 백의종군, ‘4년 쉬자. 책이나 쓰자’ 생각하며 남았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직을 제안 받았을 때 어땠나.
▲아유, 3선인데 뭐 준정부기관(한국전기안전공사) 정도 가서 되겠나. 능력발휘 할 만한 데(규모가 큰 정부투자기관) 보내주면 안 되겠나 그랬다. 그런데 이권 많은 공기업 가서 문제돼 정치인생 끝나는 것보다 고칠 점이 많은 공사 가서 능력발휘 하라는 게 대통령 뜻이라는 말을 듣고 결심했다. 내 인생에 딱 한 번 하는 건데, 내년에 도지사 선거(지방선거) 있지만 안 나갈 것이다. 3년간 한 번 바꿔보자.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초경영’이다.
─이제는 유명해진 ‘1초경영’,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사장으로 내정되면서 기자들 교수들하고 수시로 토론을 했다. 어느 공기업보다 잘하고 싶었다. 토론 과정에서 쉽고 국민들 머리에 각인될 만한 단어를 찾다가 떠오른 것이다. 좀 있으면 책도 나온다. 1초경영은 한마디로 스피드 경영이다. 그러나 무조건 빨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극대화해서 고객(국민)이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기업보다 빨리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1초경영은 실천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1초경영혁신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혁신과제 200여 개, 핵심과제 24개를 선정, 실천해나가고 있다. 매주 화요일이면 지역본부를 방문해 점검하고 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공기업은 보통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어떤 복안이 있나.
▲이명박 대통령께서 공기업 방만,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해 사기업 출신 사장들 많이 앉혔는데 청와대 쪽에서 볼 때는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별로 안 좋다. 사기업에선 오너한테만 잘하고 수익만 내면 칭찬 듣고 승진한다. 우리도 수익성을 위해서라면 검사료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맘대로 못 올린다. 그렇다고 수익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우면 공장을 짓지 않고 전기 검사부터 안한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수익 창출이 어렵다. 그래서 해외사업으로 눈을 돌려 해외성장동력본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지난해 2억 원 정도를 벌었다. 올해는 20억 원 이상 벌 것이다. 곧 양해각서(MOU)를 맺으러 몽골에 간다. 많은 사람들이 후진국에서 무슨 돈을 벌어오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후진국에 UN 등 국제원조로 지어지는 원자력발전소 같은 전력시설에 대한 검사권을 따오는 것이다.
─한전하고는 협력·경쟁 부분이 많다는데 잘 되고 있나.
▲김쌍수 한전 사장은 동향(경북 김천)으로 개인적으로도 친하다. 그런데 언젠가는 우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지금까지 모든 송배전 시설 공사를 한전이 하고 점검도 한전이 다 하는데 이게 연간 1100억 원이다. 이는 자기가 시험 치고 자기가 점수 매기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 안전 검사는 누가 보든 우리가 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건데 이 문제는 앞으로 공개적으로 제기해 반드시 우리 공사가 가져올 것이다.
─현재 공사 부채가 400억 원 정도라고 하는데 해소할 수 있나.
▲취임 전에 600억 원이었다. 그건 전임자 때 퇴직금을 일괄정리하면서 생긴 부채다. 지난해 197억 원 갚았다. 올해 순이익과 자산재평가를 통해 연말쯤 제로(0)가 될 것이다.
─정치인에서 공기업 CEO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는 평가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나. 여하튼 오늘 나처럼 공천에서 탈락한 뒤 공공기관 CEO로 나간 사람들에게 내가 밥을 산다며 다 모이라고 했다. 정말 열심히 뛰자, 공기업 혁신 안 된다고 난리인데 우리가 사기업이나 관료 출신보다 더 잘해야 우리 후배들이 낙하산 소리 안 듣는다고 말하면서 이 모임을 정례화하려고 한다. 낙하산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사실 난 낙하산 소리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인명을 구하는 게 낙하산인데, 직원들 살리는 건데 뭐 나쁘냐는 거다.
─공기업 CEO 인선에 대해 남다른 생각이 있는 듯하다.
▲공기업은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사람, 관료도 넣고 사기업 출신도 넣고 정치인 출신도 넣고 해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권 출신이 잘하는 게 바른 말이다. 공기업 회의 가보면 관료 출신은 한마디도 안한다. 점수 못 딸까봐. 그러나 정치인 출신들은 무슨 얘기든 많이 한다. 그리고 공기업에 젊은 사람이 오면 좋겠다. 젊으면 꿈을 가지고 잘하려고 한다. 지금 공기업 사장들 나이가 너무 많은 듯하다.
─정치권 밖에 있으니 정치가 더 잘 보일 것 같다. 현 정치권의 문제점이 뭐라 생각하나.
▲서두에도 얘기했지만 정치력이 없다. 노련한 정치인이 있어야 하는데 초선이 너무 많다. 오합지졸, 리더십의 부재다. 어쨌든 국회는 개원하고 첫해는 좀 힘들다. 서로 이해도 못하고 잘난 척하고…. 내년쯤 되면 서로 좀 친해지고 좋아질 것이다. 시간밖에 답이 없는 듯하다. 나는 정치 욕 안한다. 정치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고 정치인을 욕하는 건 결국 유권자인 국민을 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뽑은 게 잘못이지. 뽑을 때 잘 뽑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참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만 기업인 출신이다 보니 너무 정치를 등한시하고 소홀히하는 듯하다. 실제로 아무리 대통령 철학이 좋아도 정치권을 설득하지 못하면 역사의 인물이 되기 어렵다. 시장하고는 다르다. 대통령이 철학을 실행하려면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국회의 협조없이는 안 된다. 정치만 소통이 잘 되도록 하면 자기 리더십대로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잘하리라고 본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