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그룹 본사 거양빌딩 G타워.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1969년 군납 건빵회사로 시작한 유진그룹은 금호아시아나와 마찬가지로 M&A를 통해 그룹의 규모를 키워왔다. 고려시멘트(유진기업에 흡수) 유진투자증권(구 서울증권) 로젠택배 하이마트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재계서열 42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과정을 진두지휘했던 유경선 회장은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특히 1조 9500억 원가량을 쏟아 부은 하이마트 인수는 승승장구하던 유진의 발목을 잡는 결정타가 됐다. 하이마트 인수를 위해 농협중앙회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1조 1000억 원이 그룹의 재무 사정을 악화시켰던 것이다. 하이마트 지분 80.8%를 가지고 있는 유진기업의 주가가 지난 2007년 12월 이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나 인수한 지 2년도 채 안 돼 재매각설이 흘러나온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지난 4월 시작된 채권은행들의 대기업 재무평가에서도 유진은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유진은 주채권은행인 농협중앙회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 안을 내놓기로 약속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유진이 하이마트의 지분 일부 혹은 전량을 매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고 실제로 농협중앙회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많은 대책 중 하나로 하이마트 지분 매각 얘기가 오고갔던 것은 맞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 2조 3000억 원에 영업이익 1200억 원을 올리며 그룹 내에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하이마트의 매각 가능성에 대해 유진은 “노(No)”라고 일축했다. 유진은 “하이마트를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것이며 이를 위해 2011년 기업공개를 할 것”이라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또한 재무 개선을 위해 전국의 공장부지와 자산 등을 팔아 2250억 원을, 자사주 매각으로 750억 원의 현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내놨다. 농협중앙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결국 하이마트 매각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 것이다.
증권가와 재계 등에서 하이마트 지분 매각설이 다시 흘러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유진이 주력 회사인 유진기업 자금 사정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하이마트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특히 유진처럼 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던 금호아시아나가 막판까지 버티다 결국은 대우건설을 매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하이마트 매각설은 더욱 확산됐다.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시 요구는 하지 않았지만 이런 소문이 또 들려 자체적으로 확인 작업은 했다. 주채권은행인 농협중앙회에서 유진의 유동성 해소를 위해 유진기업이 가지고 있는 하이마트 지분 일부를 파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유진으로서도 하이마트 지분율이 80%가 넘기 때문에 일부를 팔더라도 경영권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금호아시아나를 보더라도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농협중앙회 내부에는 ‘하이마트 기업공개만으로는 유동성 확보가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하이마트가 순이익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금융권으로부터의 차입금 만기가 아직 3~4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어 급하지는 않지만 자칫 이대로 가다가는 전 계열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도 여러 건 제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유진의 자금 확보 방안이 지지부진할 경우 또 다른 핵심 계열사인 건설부문 혹은 하이마트 지분 일부를 파는 것을 재무약정에 추가할 수도 있다. 여러 가능성 중에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수준이라 아직 유진 측에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곧 뭔가 하나는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증권시장에서 기업공개 역시 불투명한 것 아니냐. 확실한 대책을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탰다.
이는 최근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로부터 대우건설 매각을 이끌어낸 이후 주요 채권은행들이 대기업들에 대해 재무약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채권은행들이 처음 대기업들과 약정을 맺을 때만 해도 웬만하면 회사 쪽 편의를 봐주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설마 망하기야 하겠느냐’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점점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약정에 대한 추가 협의를 검토 중이다. 물론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매각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하이마트 매각설에 대해 증권가 일각에서는 유진 계열사 주식을 가지고 있는 몇몇 주주들이 주가 상승을 바라고 퍼트린 루머라는 견해도 내놓기도 한다. 유진 역시 “계획대로 보유 중인 지분 전량을 상장할 것”이라며 일축했고 농협중앙회 측도 “잘 알지 못한다. 재무약정대로 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