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낙하산 인사를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수단은 중요치 않은 예비군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것일까. 대부분 회사 내에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만큼 낙하산 부대원들을 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외국계 기업 법무팀에 근무하는 J 씨(여·27)는 소위 ‘빽’으로 입사했다. 대학 졸업 후 인턴부터 시작해 현재 정규직이 된 그가 낙하산 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러나 무턱대고 요직에 안착한 것이 아니라 인턴 단계부터 밟았기 때문에 따가운 눈총은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들인 노력의 결과다.
“인턴으로 들어오기도 힘들지만 인턴에서 정식 되는 것도 만만치 않아요. 제가 남들처럼 하면 그것도 뒤에서 누가 밀어줬다는 소문이 금방 돌았겠죠. 누가 알까봐, 아는 사람은 편견을 가질까봐 두 배는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을 떨었어요.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진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더 많이 웃고 친근하게 굴면서 먼저 다가갔죠.”
그는 알게 모르게 들리는 또 다른 낙하산 부대원에 대한 ‘뒷담화’를 들으면 아직도 마음은 편치 않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J 씨는 “친한 선배한테는 먼저 비밀을 털어놓고 또 그만큼 잘 해서 특별히 차별받거나 하는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지금 하는 만큼 하면 어디든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가끔 든다”고 털어놓았다.
이와는 달리 무기력하게 회사를 다니는 낙하산 부대원도 있다. 존재감 없이 조용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S 씨(여·26). 교육공무원이었던 어머니의 입김으로 준공무원에 해당하는 직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스스로가 삶의 의욕이 없다는 점이다. 업무 시간에 퇴근 후나 주말에 놀러갈 계획을 짜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란다.
“험난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놓고 나서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고생하기는 싫고…. 그래서 매일 습관처럼 회사를 다녀요. 목표가 없으니까 매사가 심드렁하고 빨리 업무 끝내고 퇴근하기만 기다리게 되죠. 딴전을 부려도 특별히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요.”
“점심이야 다 같이 시키거나 한꺼번에 나가니까 함께 먹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거의 배제되고 있어요. 담배를 피울 때나 커피를 마실 때나 삼삼오오 작은 규모로 회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죠. 아무래도 제가 있으면 회사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공과 사는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누가 믿어주나요?”
그는 왜 따돌림을 당하는지 확실히 이유를 알기 때문에 대놓고 따지지도 않는다. 다만 묵묵히 일할 뿐이다. 동료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H 씨는 “사장의 친척이 아니라 회사 동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며 “어떻게든 일단 입사하고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들어왔지만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고 고백했다.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낙하산 부대원이 겪는 괴로움의 한 부분이다. 늦은 나이에 출판사에 입사한 K 씨(여·31)는 입사 초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외국에서 경제학 석사까지 받고 3개 국어에 능통하지만 1년 넘게 취업에 실패했고 결국 아버지의 권유와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못 이겨 생각지도 않던 길을 가고 있다.
“꿈꾸던 길도 아니고 일은 힘들고 정말 초반 3개월은 매일매일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했어요. 지금도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많이 적응이 됐죠. 낙하산 부대원들은 입사의 자유를 얻는 대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죠. 직업을 얻었다는 마음에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죠.”
그는 보통 부대원들과는 달리 넘치는 능력에 걸맞지 않은 일이 늘 불만이다. K 씨는 어느 정도 능력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경우지만 반대로 자신감 결여로 늘 맥 빠지게 행동하는 낙하산 부대원도 있다. 가장 흔하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N 씨(29)는 매사에 의기소침한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고.
“뭘 해도 안 좋게 볼 것 같은 생각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돼요. ‘나댄다’는 소리 듣는 것이 두렵죠. 동료들과 큰소리 내면서 어울리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먼저 나서고 싶지만 그게 맘 같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지방대 나와서 상대적으로 학벌이 달리는 것도 늘 마음에 걸려서 더욱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낙하산을 타고 은행에 입성한 L 씨(30)는 다시 낙하산을 타고 다른 곳으로 옮길까 고민 중이다. 석사 출신 몇 백 명이 달려들 만큼 좋은 자리를 꿰찼지만 일은 힘들고 미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란다.
“신입 연봉이 상여금 합해서 3300만 원쯤 되는데 들어와서 보니 진급도 너무 어렵고 퇴근 시간도 매일 늦더군요. 영업력도 필요한데 성격상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요. 능력 안 되면서 이 정도 들어온 것만 해도 행운이라는 거 알아요. 그렇지만 더 편하고 좋은 데 가고 싶은 욕심이 나네요.”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J 씨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지금도 내 자리 주변에만 두세 명이 부대원들”이라며 “대놓고 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알까 불안감에 떠는 사람, 쉬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 등 처지는 같아도 대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기왕 들어온 거 열심히 하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