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지분 51.02%를 보유한 최대주주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은 지난 1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외환은행 지분을) 6개월에서 1년 내에 매각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관련 재판도 마무리된 상태라 법적 장애물도 사라진 만큼 매각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우리금융 지분 72.97%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예보) 역시 우리금융 매각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예보는 일단 우리금융 지분 중 일부를 매각하기 위해 조만간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경영권에 필요한 지분 ‘50%+1주’ 외 22.97%를 선매각하고 난 뒤 시장상황에 따라 추가 지분 처분을 통해 민영화 과정에 돌입할 태세다.
외환은행이나 우리금융 같은 대형은행 매물의 등장은 국내 금융권 판도의 재편을 부를 전망이다. 지난 2007년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수 포기를 선언했던 HSBC는 최근 매튜 디킨 한국HSBC 대표가 “한국에서 어떤 은행도 인수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 이렇다 보니 그동안 꾸준히 외환은행에 관심을 기울여온 KB금융의 인수 가능성이 주목을 받게 된다.
KB금융은 지난 7월 1조 원대 유상증자를 통해 실탄창고를 채운 상태다. 최근 황영기 KB금융 회장의 사임으로 지주사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적극적 M&A(인수·합병)를 통한 미래성장 동력 장착”을 공언하고 나서 대형 M&A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금융권에선 외환은행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기업금융과 해외영업 인프라가 KB금융의 국민은행 사세 확장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6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내놓았을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적이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재판 마무리 이전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인수 작업이 무산되고 말았다. KB금융이 몇 년을 별러온 외환은행 인수 성사 여부는 우여곡절 끝에 들어선 강정원 체제에 대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대형은행 인수전을 앞두고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사퇴를 둘러싼 KB금융과 우리금융의 관계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 재직 시절 투자손실에 대한 금융당국 중징계를 받고나서 최근 KB금융 회장직에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KB금융 내 ‘반 황영기’ 세력과 우리금융 내에서 황 전 회장에게 손실 책임을 전가하려는 세력 간의 교감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황 전 회장이 ‘우리금융 투자손실 책임’ 화살을 맞고 날아간 자리를 꿰찬 강정원 행장이 우리금융과 어떤 관계를 형성해갈지도 관심을 끈다. 회장 재임 시절 황영기 전 회장이 공격적인 M&A를 주창했던 까닭에 강정원 체제하에서의 M&A 성적표는 황영기-강정원 전·현직 수장의 비교평가는 물론, 강 행장의 롱런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형 M&A 과정에 정부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KB금융의 대형 은행 인수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관심사다. 존 그레이켐 론스타 회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찾아와 (외환은행 지분을) 팔고 싶을 때 팔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부의 물밑 개입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인 셈이다.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현 정부세력과 친분이 있던 황영기 전 회장 세력이 물러난 현 KB금융 수뇌부와 정부의 새로운 관계에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KB 신한 우리, 3대 금융지주사들에 비해 자산규모가 작은 하나금융이 대형 은행 인수를 통해 국내 자산규모 1위 금융지주사에 등극할 수 있을지도 화두 중 하나다. 최근 금융권에 ‘하나금융이 1조 원대의 유상증자를 단행할 것’이란 이야기가 퍼지면서 지난 5일 유가증권시장본부는 하나금융에 대해 ‘유상증자 추진설’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를 했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 측은 ‘주주가치 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자본계획의 일환으로 유상증자를 검토 중이나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금융권에선 하나금융의 유상증자 추진을 대형 M&A를 위한 실탄수급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5일 한국투자증권이 ‘우리금융을 겨냥한 증자’라는 분석보고서를 내놓는 등 하나금융의 우리금융 지분 인수전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자금이다. 하나금융이 KB금융이나 신한금융 등에 비해 실탄이 달리다 보니 증권가에선 SK그룹과의 파트너십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SK텔레콤이 최근 하나금융과 제휴를 통한 하나카드 지분참여를 추진 중인 까닭에 SK그룹의 금융업 강화 행보가 금융권의 주목을 받아왔다.
한때 SK그룹의 SK증권 매각설이 나돈 적도 있지만 증권사의 지급 결제 기능이 가능한 자본시장통합법이 올 2월부터 시행되면서 SK가 증권업 강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이에 일각에선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면서 우리금융 산하 우리투자증권을 SK 측에 매각, 자금을 조달할 것이란 ‘큰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외환은행이나 우리금융이 매물로 나오긴 했지만 인수 희망자들이 수조 원에 이르는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외환은행의 경우 4조 5000억~5조 원, 우리금융은 6조~7조 원 정도의 인수자금이 필요할 전망이다. 외환은행이나 우리금융을 인수할 경우 국내 금융권에서 부동의 1위로 올라설 것이 확실한 만큼 금융지주사들이 M&A를 위해 어느 정도 무리는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과 하나금융 외에도 농협중앙회나 민영화를 앞둔 산업은행 역시 대형 은행 매물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우건설 같은 대형 산업자본 인수전에선 좀처럼 국내 자본이 나서려 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대형은행 인수전 본격화를 앞두고 국내 자본 간 대형 ‘쩐의 전쟁’이 예고되는 분위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