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장실에서 일어나는 선·후배 간의 에피소드를 보여준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 코너. | ||
내 앞에서 밝게 웃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가식을 발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웃음은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고 호의를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음향전문가로 일하는 C 씨(31)는 같이 일하는 팀원의 ‘두 얼굴’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인상이 참 좋은 친구였어요. 얼굴 자체가 웃는 상이고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서 만나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곤 했죠. 전 당시 회사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태였고 그 친구는 저보다 오래 근무했는데 이상하게 동료들이 그 친구를 좀 꺼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 될 것 없는 사람한테 너무한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알고 보니 ‘뒷담화의 제왕’이었어요. 조금씩 친해지면서 슬슬 시작하더군요. 처음 와서 잘 모를 거라는 둥 하면서 다른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 털어놓은 거지요.”
이직 초기라 인상 좋은 동료의 말을 믿었던 C 씨는 괜스레 애꿎은 동료들을 오해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린 계기가 있었다. 그는 “다른 동료를 통해 전해들은 내 험담의 근원지가 그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무척 놀랐다”며 “아직도 그 선한 웃음을 생각하면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K 씨(여·27)도 험담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믿었던 사장님의 험담 때문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사무실 관리와 경리 업무를 봤는데, 회사를 자주 방문하던 거래처 분이 있었어요. 사장님과 친분이 있는 분이셨죠. 두 분 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뒤에서 제 허물잡기에 열심이셨더군요. 지각 한두 번에 천하에 게으른 직원이 됐고 회식을 빠지거나 일찍 갔다고 계산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됐어요. 사무실 문구용품을 따로 챙긴다는 의심까지 받았고요.”
이런 사실을 퇴사 후 친분 있던 인수자에게서 들은 K 씨는 억울함에 눈물까지 났다. 그는 “가서 따질 수도 없고 진심으로 대했었는데….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비밀 사내연애도 배신의 좋은 소재다. 게임 개발사에 근무하는 B 씨(30)는 2년간이나 사내 연애를 하면서 철통보안을 유지했던 동료 커플에게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고.
“전체 인원이 20명도 안되는데 대부분이 그 사실을 몰랐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저희 결혼합니다’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해서 빵 터졌죠. 팀장과 다른 여직원이었는데 여자 분은 얌전하고 이미지 자체가 전혀 예상을 못하게 만드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대화는 메신저로 하고 퇴근도 따로 하고 그 둘의 관계를 알고 있던 소수의 몇몇조차 헤어졌다고 오해할 정도로 완벽하게 연극을 했어요.”
이 정도 배신이면 애교로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배신의 당사자가 본인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크게 상처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J 씨(여·29)는 배신 때문에 가까이 지내던 두 사람을 동시에 잃었다. 사랑 때문에 사람을 잃은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
“유럽 쪽을 담당하는 남자 직원이 새로 들어오면서 일이 시작됐죠. 성격도 활발하고 여행을 많이 다녀서 해박했어요. 단박에 제 마음에 들어서 같이 일하던 언니에게 상담을 시작했어요. 그 뒤로 남자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니에게 보고하면서 같이 웃고 공감하고 짝사랑을 키워갔죠. 언니랑 셋이 술자리도 몇 번 가지면서 친분을 쌓아갔고 언니의 응원 속에서 용기를 내게 됐어요. 그 사람도 반응이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 핑크빛 희망도 조금씩 생겼고요. 그러다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셋이 다 같이 친해져서 스스럼없이 지내던 무렵인데 담배를 피우던 그와 언니가 그 핑계로 중간에 같이 나가는 횟수가 많아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의심을 안했는데 점점 마음이 불안해 졌고 알고 보니 둘이 사귀고 있었죠.”
J 씨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두 사람을 ‘유령’ 취급했다. 도저히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언니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상담 초기부터 사귀기 시작했으면서 J 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연기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J 씨는 “남자분이 언니를 선택했다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 있었죠. 더 큰 배신감을 느낀 것은 언니였다”며 “차라리 미리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바보같이 설레면서 엉뚱한 소리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황당한 사건도 있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N 씨(여·28)는 같이 근무하는 선배 때문에 큰돈을 지불하고 뼈아픈 반성을 했다.
“평소 체격이 좀 있어서 버릇처럼 살 뺀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같은 팀 선배가 ‘아는 학교 선배가 있는데 남자분이지만 일주일 만에 9㎏이 빠졌다’면서 참 놀랍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솔깃했죠. 그것도 몸의 무리 없이 건강하게 빠졌다는데 누가 관심을 안 보이겠어요. 어떻게 뺐느냐고 물어봤더니 굳이 그 선배를 같이 만나자고 하는 거예요.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싶었지만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어 만났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 다이어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N 씨는 현장에서 생각할 틈도 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들에 휩싸여 순식간에 카드 번호를 불러주고 바로 120만 원을 결제하게 됐다. 살 뺀 선배는 물론이고 같은 팀 선배까지 다단계 회사에 푹 빠져 있어 등급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N 씨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화가 난다”며 “입사 초기라 돈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희생양 삼았던 선배 덕분에 한동안 카드 값 갚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후배의 배신도 빈번하다. 출판 계통에 근무하는 H 씨(32)는 애정을 쏟던 후배한테 배신감을 느꼈다.
“일이 힘든 데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라 이직률이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쉽게 정을 주거나 가르치는 일이 적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성격 싹싹하고 부지런한 후배가 들어왔어요. 이것저것 먼저 물어보는 것도 많고, 분위기가 좋아서 오래있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에 아는 것 모르는 것 열과 성의를 다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4개월 정도 있다가 덩치 큰 곳으로 바로 옮겨 버리더군요. 참 씁쓸했습니다.”
회사생활을 오래 한 인생 선배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후배의 표정을 믿지 말고, 본인과 잘 맞는다는 착각에 있는 사실 없는 사실을 털어놓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안 그랬다가는 모든 것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 특히 다양한 연애사를 시시콜콜 늘어놓는 것은 금물. ‘쉬운 사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