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타가 10월 20일 공식 론칭한 캠리, RAV4, 프리우스(왼쪽부터). | ||
주변에서 차를 살 때 ‘쏘나타 사러 들어갔다가 그랜저 사서 나온다’라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애초에 마음에 두었던 차를 사러 갔다가 옵션 등을 따지다 보면 한 단계 위의 차를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한국인들 마음의 틈새시장을 노린 것일까. 도요타는 중형세단인 캠리2.5의 풀옵션 가격을 현대자동차 쏘나타2.0(3100만 원)과 그랜저2.7(3842만 원) 풀옵션 가격의 중간인 3490만 원으로 책정했다. 게다가 RAV4는 현대차 투싼(3147만 원)과 싼타페(4015만 원)를 노리듯 2륜구동은 3210만 원, 4륜구동은 3490만 원에 판매된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4590만 원, 국내 최고 공인 연비인 29.2㎞/ℓ를 획득한 프리우스는 3790만 원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도요타가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들을 정면으로 겨냥해 대량판매를 노린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지난 20일 신차발표회에서 후노 유키토시 도요타 본사 부사장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며 “수입차 고객은 대중적인 시장과는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는 치기라 타이조 한국도요타 사장의 “올해 판매량은 월 500대, 내년에는 월 700대를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라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당장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에서는 “안심해서도 안 되고 안심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 전략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반발을 감안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지만 속으로는 공격적인 마케팅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특히 도요타는 수입차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를 무엇보다 잘 알고 있다. 판매가격보다 고객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부분인 애프터서비스 불만을 확실히 해소하는 전략을 통해 한국 시장에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도요타의 국내 5개 딜러 건물 지하에는 정비가 가능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수입차 최대 규모의 대형 정비공장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월 2000~3000대를 팔아도 고객 서비스 유지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요타는 판매목표를 적게 잡아 국내 터줏대감 업체들의 경계심을 줄이고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의 만족을 주면 판매확대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 목표대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도요타가 내년부터 국내시장에 정착하면 연 판매량이 2만~3만 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
도요타의 공습에 맞서는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다양한 마케팅과 신차 발표를 통해 방어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관계자는 도요타의 한국 진출과 관련해 “당분간 판매추이를 지켜봐야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져올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급형인 저가격대 수입차의 국내 시장 진출에 맞춰 대응 차종을 출시하고 비교시승 등 체험 마케팅 등을 강화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국내 시장에 쏘나타 2.0을 주력 차종으로 밀면서 캠리에 대적할 모델로 기존 그랜저와 내년 출시될 신형 그랜저(개발명 HG), 기아차 ‘케이세븐’(K7)을 내세울 계획이다. 현대차는 여기에다 그랜저를 구입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기본적으로 90만 원씩 할인해주는 행사를 펼치고 있다. 기아차는 11월 말에 준대형 세단 K7을 출시해 소비자들이 직접 K7과 캠리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비교시승회를 준비 중이다.
르노삼성도 SM7 2010년형을 전국 30여 개 롯데마트에 전시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GM대우의 경우에는 도요타의 국내 진출 차종과 겹치는 부분이 없어 신형 마티즈와 라세티 프리미어를 내세워 중소형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편 도요타의 공습을 최전선에서 맞닥뜨리는 현대차 판매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예상한 일이라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며 “현대차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정비서비스와 저렴하고 좋은 부품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여전히 현대차에 대한 수요가 높은 만큼 꼼꼼한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도 “국산차 입장에서는 유럽보다 일본이 좀 더 버거운 상대인 게 사실”이라며 “해외에서도 일본차를 제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충분히 내수시장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도요타의 최대 라이벌인 현대차가 여유 있는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시끄럽기 때문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노조)의 새 집행부 출발이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있어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9월 18일 이경훈 신임 위원장이 선출됐지만 아직까지 취임식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측과의 임·단협 돌입 시점과 절차에 대한 새 집행부와 현장 조직 간의 이견이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현대차노조 집행부가 30일 대의원 선거 이후 11월 중순 임·단협 개시로 향후 일정을 변경하면서 연내 타결을 원하는 현장 조직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노노갈등’으로 번져 쏘나타, 그랜저 등 현대차 핵심 차량의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도요타와의 국내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현대차 생산직 관계자는 “도요타가 국내에 진출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대의원 선거와 임단협 등 문제로 사람들의 관심이 그쪽에 쏠려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