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카드의 급성장을 두고 모그룹인 현대기아차의 부당지원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은 현대카드 본사.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2003년 불어 닥친 ‘신용대란’으로 당시 카드업계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신용대란은 카드회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길거리에서 카드를 ‘발급’하다 보니 사람들이 갚을 능력 이상의 소비를 즐겼고 결국 카드대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추락했다. 이는 신용카드사들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거듭됐다.
현대카드는 2001년 다이너스카드코리아를 인수하며 뒤늦게 카드업계에 뛰어들었다. 당시 시장점유율은 1.8% 정도. 신용대란이 일어난 2003년에는 적자만 6300억 원이었다. 매각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그 후 현대카드는 다양한 혜택을 준다는 의미에서 멀티플(Multiple)의 머리글자를 딴 ‘현대카드M’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카드M은 현재 단일 카드로는 국내 최초로 600만 회원을 돌파하며 신용카드 업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현대카드는 이를 바탕으로 신한카드가 25%를 차지하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현재의 신용카드 시장에서 점유율 11%로, 15.2%로 2위인 KB카드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특히 현대카드는 소비자와 가장 밀접한 개인신용판매 부문에서 KB카드를 제치며 2위에 올랐다. 소비자들이 카드로 물건을 구매할 때 현대카드를 많이 쓴다는 방증인 셈이다.
후발주자로 출발해 KB카드와의 경쟁에서 이긴 부문이 나오자 현대카드는 마케팅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 ‘어느새 2위’라는 카피를 내걸고 대대적인 광고에 나섰다. 이에 라이벌인 KB카드와 삼성카드는 ‘과장광고’라며 발끈하고 있다.
실제 신용판매와 현금대출을 포함한 현대카드의 올해 2분기 전체 사용실적은 12조 6000억 원으로 KB카드의 18조 원과 큰 차이가 난다. 개인과 법인을 포함한 신용판매 실적도 KB카드가 13조 6000억 원으로 현대카드의 11조 원보다 2조 6000억 원 앞섰다. 삼성카드의 경우 2009년 상반기 영업실적이 24조 7000억 원으로 23조 5000억 원 수준의 현대카드보다 높다. 하지만 올해 3분기에는 현대카드 이용실적이 13조 1120억 원으로 12조 9188억 원에 그친 삼성카드를 제쳤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2위 마케팅을 펼치면서 광고에 ‘신용카드업자 20개 사 중 개인신용구매액 기준’이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며 “단순히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현대카드의 성장을 나타내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밝혔다. 반면 KB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카드사 중 종합적인 2위가 KB카드가 아닌 현대카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라며 “특히 TV 광고화면이 금방 지나가 작은 글씨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KB카드가 전례 없이 순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강정원 KB금융 회장(내정) 체제를 앞두고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KB금융은 금융지주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이 97%의 비중을 차지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카드 부문 등을 강화해 은행을 제외한 분야에서도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강 회장의 숙제로 언급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현대카드가 ‘어느새 2위’라는 카피를 들고 나오니 KB카드의 속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강 회장이 취임하기 전에 일찌감치 문제가 될 걸림돌은 치워버리겠다는 의도로 읽히고 있다.
현대카드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이번 논란에 대해 내부 직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며 “카드사에서 여신금융협회에 보내는 자료가 그때그때마다 달라서 업계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에 변동이 있을 때가 많지만 주로 개인신용판매액이 카드 실적 기준으로 많이 활용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카드는 개인판매에 주력을 하고 있어 그 분야에서 2위를 한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대출이나 리스 등 종합적인 부문에 관심을 쏟는 삼성카드나 KB카드도 모두 자기네들이 2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고 덧붙였다.
현대카드는 최근 모그룹의 부당지원 논란에도 휩싸였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현대카드를 부당지원하고 있다고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이 문제제기를 한 것. 부당지원 논란은 지난 200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결정을 내리자 이에 반발한 현대·기아차그룹이 소송을 제기해 2년 후 법원에서 승소하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여전히 카드업계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현대카드는 현재 고객이 현대차 또는 기아차를 살 경우 판매가격의 50만 원을 할인해주는 대신 신용카드 포인트로 되갚는 세이브포인트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2003년 현대차와 제휴를 맺고 도입한 것으로 현대카드의 급성장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다른 카드사들의 자동차 판매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1~2%인 것과 비교해보면 현대카드는 10배가량 높은 수준인 14~15%다.
게다가 세이브포인트를 갚으려면 현대카드를 계속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기아차그룹이 현대카드 성장의 중요한 축임을 알 수 있다. 현대카드의 취급액이 2002년 12조 1627억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2조 6900억 원으로 4배가량 성장한 것도 현대·기아차그룹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성헌 의원 측은 “현대·기아차그룹이 세이브포인트에서 할인금액의 70%를 부담하고 현대카드가 30%만 낸다”며 “하지만 고객이 갚는 포인트는 모두 현대카드가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측은 “5년 전에 이미 법원에서 판결이 난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