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1년부터 국가회계에 발생주의 등 국제기준을 도입하고, 2012년부터는 국가채무 통계기준도 발생주의 방식으로 전면 개편키로 한 상태다. 이러한 일정에 맞춰 2009년에 회계 법령의 정비를 마무리했고 국유재산과 물품 등 국가 자산에 대한 실사도 마쳤다. 또 국제기준 도입 준비를 위해 국가회계기준센터를 2010년에 개소하기로 했다. 국가회계기준센터에서는 국가회계기준에 대한 실무해석, 외국 정부회계제도에 대한 조사, 발생주의 회계에 따른 재정 지표 개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회계제도의 연계, 회계·결산 담당 공무원의 교육 지원을 담당하게 된다.
정부가 국가회계제도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가회계기준이 세계 기준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탓이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국가채무부문이다. 국가채무는 한 나라의 재정 상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국가회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외국 투자자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자료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2001년에 내놓은 정부재정통계편람(GFSM 2001)에 의거해 국가채무를 계산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IMF가 1986년에 내놓은 옛 정부재정통계편람(GFSM 1986)을 바탕으로 만든 국가재정법에 따라 국가채무를 계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IMF에서는 각 국가들의 국가채무를 기록하면서 한국은 빼놓고 있다. 한국의 국가채무가 다른 나라와 비교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뢰하지 않는 셈이다.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터지면 우리 정부가 위험이 작다고 아무리 선언해도 외국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GFSM 2001’과 ‘GFSM 1986’에 근거한 국가재정법, 이 두 가지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GFSM 2001에서는 발생주의 회계처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국가재정법에 따른 회계처리는 현금주의다. 또 GFSM 2001에서는 ‘정부부채’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국가재정법에서는 ‘국가채무’ 개념을 사용한다. 발생주의가 도입되면 국가채무는 현재보다 증가하게 된다.
여기에 정부부채 개념을 사용할 경우 국가채무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만 포함한 국가채무와 달리 정부부채에는 여기에다 준정부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준정부기관들이 방만한 운영으로 부채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채무가 급증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IMF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러한 정부부채 개념을 사용한다.
실제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07년 298조 9000억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로 2010년 407조 1000억 원, 2013년에는 493조 4000억 원으로 500조 원에 육박하게 된다. 하지만 국회 예결위가 한국재정학회에 의뢰해 추정한 ‘정부부채’는 2007년 현재 최저 688조 4000억 원에서 최고 1198조 원에 달한다.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준정부기관이 들어가느냐(정부부채), 아니냐(국가채무)에 따라 채무 액수는 천양지차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도 최근 2007년 말 현재 정부가 발표한 국가채무는 298조 9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33.2% 수준이지만, OECD 기준 ‘정부부채’는 540조 2000억 원으로 GDP의 59.9%에 달한다고 밝혔다. ‘GDP대비 정부부채 40%’는 세계 투자자들의 투자 기준선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억울한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투자자들에게 선진국이 아닌 개발국가로 규정되어 있다. 개발국가에 대한 투자 기준은 정부부채가 GDP대비 40% 이상이냐, 이하냐다. 40%가 넘을 경우 빚은커녕 이자도 갚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투자금액을 회수하게 된다”면서 “반면 선진국의 경우 아무리 빚이 많아도 이자를 갚을 수 있다고 보고 회수하지 않는다. 단순히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빚을 대비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여야, 학계는 문제가 되는 준정부기관을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 중이다. 정부는 상품판매가격이 시장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으면 준정부기관, 그렇지 않으면 공기업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경우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해도 정부부채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이나 학계에서는 이럴 경우 정부가 부채를 공기업에 떠넘길 수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파산시 정부 책임과 공공성에 따라 준정부기관과 공기업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4대강과 관련된 수자원공사 부채 문제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사업비 15조 3000억 원 중 8조 원과 경인운하 사업비 2조 2000억 원 중 1조 8000억 원을 수자원공사에 떠넘겼다. 2008년 수자원공사 매출액이 2조 40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자원공사는 부채로 9조 8000억 원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수자원공사는 공기업으로 분류되어 있어 수자원공사 빚은 정부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사업을 벌이는데 부채는 국가가 아닌 수자원공사에 떨어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의 고심도 여기에 있다. 국가채무를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정부부채로 바꾸자니 여차하면 국가 빚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피해가자니 세계 각국이 실눈을 뜨고 쳐다볼까 두렵다.
정부 여당에겐 이보다 더 큰 ‘정치적 문제’도 있다. 정부부채가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계산되는 첫해가 하필 다음 대선이 있는 2012년이라는 점이다. 여차하면 이명박 정부는 천문학적인 빚을 남기는 정부로 기록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정부에 엄격한 채무 관리를 종용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