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이 FA 자격으로 홀가분하게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마음 편한데 왜들 걱정하시냐”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공존한다. 시즌 초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불편한 몸으로 성적을 내려다보니 밸런스가 흐트러져 고생을 많이 했다. ‘지지고 볶았던’ 올 시즌이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랐다. 다행히 지금은 어깨가 많이 좋아졌다. 몸이 좋아지니까 자신감도 커지는 것 같다.”
―해외진출을 앞두고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보직이 바뀌었다. 당시 선동열 감독은 선수가 자원했다고 밝혔다. 사실인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처음부터 내가 자원했던 건 아니다. 코칭스태프에서 몇 차례 얘기가 있었다. 그 결정을 나한테 맡기셨는데 당장에는 마무리를 맡는 게 손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우기보다는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내가 한 선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다.”
―10월 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시즌 최종전에 등판했다. 그때 경기를 마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과연 내가 KIA 유니폼을 다시 입을 수 있을까? 9년 동안 이 유니폼을 입고 여기서 뛰었는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시즌이 마무리돼가면서 코칭스태프에게 시즌 최종전에 꼭 서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등판해서 팬들에게 야구로 인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주어진 기회였는데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더 떨어졌다(웃음). 솔직히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아마도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2011년 10월 말, 구단 측에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정식으로 요청했다가 결국엔 없던 일로 마무리됐었다. 그 후 2년 동안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포스팅시스템 진출이 무산된 후유증이 꽤 컸던 것으로 보였다.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감독님이 바뀌고 팀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엔 구단의 만류에 의해 남게 됐는데, 2년 동안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길 바랐던 것 같다. 채운 것 없이, 배운 것 없이 2년의 시간이 지났다. 책임감 없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나름 잘해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이상하게 잘 풀리지 않았다. 내 야구가 많이 퇴보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해보자. 2년 전 팀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느낀 상실감이 꽤 컸던 것으로 아는데….
“처음 야구 시작할 때 내 인생에 메이저리그는 없었다. 프로야구 선수로 뛸 수 있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 메이저리그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내 게임이 기다려지고, 야구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야구를 즐기면서 포스팅시스템을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고지를 앞에 두고 내 의지를 꺾어야 했다. 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다 보니 그 아쉬운 마음을 쉽게 털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군 입대 후 제대 날짜를 기다리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2년의 시간이 참 길고 더디게 흘러갔다. 2012년부터는.”
“솔직히 부럽다. 그리고 기분 좋다. 어떤 기사의 댓글을 보니까 현진이가 어렵게 닦아 놓은 길을 윤석민이 가서 망쳐 놓을까봐 걱정된다는 내용이 있더라. 적어도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난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였다. 현진이도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였다. 아무한테나 ‘에이스’란 수식어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말로만 자신있다고 말하지 않겠다.”
―흔히 윤석민하면 ‘멘탈이 약하다’, ‘강심장이 아니다’, ‘소심하다’ 등등의 표현들이 뒤따른다. 본인이 들어서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다.
“내가 멘탈이 약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소심했다면 WBC, 베이징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제대로 활약을 했겠나.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어떤 소문이 나도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평가에 일희일비했다면 아마 제대로 숨 쉬고 살지 못했을 것이다.”
―윤석민의 장점은 변화구와 제구력이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봤을 텐데, 자신의 야구가 미국에서 통할 것 같다고 생각하나.
“에이전트사인 보라스 코퍼레이션으로부터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여러 구단에서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런 말에 기대감을 부풀리지는 않는다.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어디이고, 어느 정도의 대우를 제안하는지 알고 싶다.”
―이번에 출국하면 미국에서 류현진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진출 선배격인 류현진에게 가장 궁금한 게 무엇인가.
“타자를 상대하는 노하우다. 현진이랑 전화통화 할 때 들은 얘기인데 현진이는 시속 97마일(156km)의 공이 빠르게 느껴지지 않은 반면 범가너의 140km대의 공은 너무 빨라서 손도 못대겠다고 하더라. 즉 공의 힘과 끝, 무브먼트가 중요하다. 현진이를 직접 만나면 어느 때보다 야구 얘기를 많이 할 것 같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웃음).”
―만약 미국 진출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제안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상하게 주위에서 더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시선들이 많다. 나는 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소식 전해드릴 테니 지켜봐 달라(웃음).”
미국 진출 첫 해에 제대로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는 류현진은 윤석민이 하루 빨리 미국으로 건너오기만을 바랐다. 윤석민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 챔피언십시리즈를 마치고 LA로 건너온 류현진과 15일(한국시간) 현지에서 해후할 전망이다. 인터뷰 말미에 윤석민이 이렇게 말한다. “내년 이맘때 전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진짜 궁금하지 않아요(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