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올레배 준결승에서 목진석 9단(오른쪽)이 이세돌 9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 김지석 9단과 결승전을 펼치게 됐다.
그런데 낭보는 14일 국내기전에서 날아왔다. 2013 올레배 6라운드(준결승)에서 김지석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이겨 결승에 진출했다는 것은 약간 반갑기는 했지만, 그런 정도는 이제 큰 뉴스는 아니었다. 뉴스는 목진석 9단이 이세돌 9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목진석 9단은 최근 ‘새로운 포석 실험’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주로 흑을 들었을 때, 가끔은 백일 때도, 판마다 외목을 들고 나오고, 상대가 걸쳐오면 아주 낯설고 크게 협공하며, 굳힐 찬스가 생기면, 굳히는 것도 아니고, 벌리는 것도 아닌, 보도 듣도 못한 초식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괴초식으로 승수를 쌓아가고, 랭킹도 10위권 한참 밖에 있다가 10위 안으로 들어왔다. 성적을 내지 못했으면 괴초식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잘 안 되니 한번 시도한 것 정도의 해프닝으로 지나갔겠지만, 이건 그게 아니었던 것.
14일의 목진석-이세돌 바둑에서 목 9단은 흑을 들고 다시 한 번 화려무쌍한 ‘3외목 포진’으로 출발은 했는데, 상대가 상대여서 그랬는지 내용은 시종 목 9단의 고전이었다. 처음부터 불꽃 튀는 타격전이었고 패싸움의 연속이었다. 천지대패가 네 번이나 벌어졌다. 목진석은 불굴의 투혼으로 맞받아쳤으나 그래도 결국은 지는 줄 알았는데, 종반에 접어들어 이세돌 9단에게서 실수가 튀어나왔다. 목진석이 그를 놓치지 않았다. 목 9단은 이세돌의 실착을 번개처럼 낚아채더니 거기서부터 그대로 밀어붙여 역전에 성공, 반면 14집을 남겨 7집반 차이로 대승을 거두었다. 323수에 이르는 대접전이었다.
목 9단은 1980년생, 올해 서른셋이다. 1994년 열세 살 때 입단했다. 어려서 입단했기에 당연히 촉망받았다. 입단하고 얼마 안 있어 1995년 시즌에는 한-중대항전 대표선수로 뽑혔고, 전장에 나가서는 당대의 거함 녜웨이핑 9단을 격침시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우주소년’ ‘괴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으면서 학구적인 자세와 독창적인 바둑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이창호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요즘은 TV 바둑프로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한 해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서른셋. 여전히 외모는 ‘우주소년’이고 ‘괴동’이던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는데, 서른셋이면 바둑에서는 어느덧 창업보다는 수성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나이. 이전에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제 더 이상 욕심을 부리기 어렵고 지금까지의 성적을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하느냐에 힘을 기울일 나이다. 그런데 목 9단은 지금 분연히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고 있다. 올레배는 국내 기전 중에서는 최고의 타이틀. 우승상금 1억 2000만 원이다. 상대는 김지석. 바둑 동네에서는 오래간만에 신선하고 멋진 승부를 보게 될 것이라면서 눈들을 빛내고 있다.
목진석의 실험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 예전에도 목진석은 종종 파격을 시도했다. 그게 먹힐 때도 있었고, 먹히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성패를 떠나 그의 파격은 답습과 타성의 갈증에 한 줄기 비를 뿌리는 청량제였다. 파격은 마음을 비워야 가능한 것. 승부에 대한 집착을 놓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공의 온축이 있어야 발휘되는 것.
더구나 최근에 보이는 목진석의 실험은 ‘그냥 한번 해 보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전의 파격이 단발성에 가까웠던 것에 비해 지금의 실험은 지속적이다. 그리고 훨씬 과격하다. 작심한 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혁명적인 발상”이라고까지 말하는 평자도 있다. “너무 앞서가고, 너무 거창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우칭위엔-기타니의 신포석 혁명을 방불케 하며, 거슬러 올라가면 방향은 좀 다르지만, 슈사쿠의 1-3-5 포석, 도사쿠의 ‘수 나누기’처럼 바둑의 ‘패러다임 쉬프트’를 이끌 수도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한국 바둑에 패러다임 개념을 도입-접목한 문용직 박사의 견해를 듣고 싶은 대목이다.
<2도>는 10월 24일, 올레배 5라운드, 목진석-박영훈. 목 9단이 흑이다. 흑1, 3의 양외목에, 흑5, 이번엔 고목이다. 좌상귀 흑7의 굳힘이 눈을 의심케 한다. 이게 뭐야. 굳힌 거야, 벌린 거야? 기보 입력 실수 아닌가. 마우스 미스? 255수 만에 흑이 1집반을 이겼다.
<3도>는 10월 19일, 올레배 4라운드, 목진석-변상일 2단(16). 목 9단이 흑. 흑1-3의 양외목. 흑7-9의 괴초식. 목 9단이 175수 만에 불계승.
<4도>는 11월 8일, ‘2013 KB바둑리그’ 14라운드, 목진석-류수항 2단(23). 여기서는 목 9단이 백. 백2, 4, 이른바 대고목과 외목의 조합. 올해 입단한 류 2단도 지금 한창 피가 끓고 있는 때. 대고목이 웬 말이냐는 듯,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는 듯 흑5로 직격 헤딩을 날렸다. 이 바둑은 189수 만에 류 2단이 불계승을 거두었다.
다케미야의 우주류가 20세기 바둑사에 불멸의 한 획을 그었던 것처럼 아무쪼록 목 9단의 실험도 열매를 맺어 21세기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기를! 승부가 다는 아니라는, 뭔가 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줄 것을 기대한다. 그래야 아마추어 바둑팬들이 더욱 프로의 바둑을 존경하고, 더 흥미롭게 감상할 것 아닌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