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자리를 지키려던 공공기관장들에게는 전방위적인 압력이 가해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석채 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다. KT와 포스코는 지난 2002년과 2000년에 민영화가 됐지만 대주주가 없는 지분 구조 탓에 사실상 정권의 입김에 따라 최고경영자가 물갈이돼 왔다.
2003년 당시 임영록 남북경협실무단 대표가 북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같은 해 최경수 조달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일요신문 DB
이처럼 박근혜 정부와 같은 새누리당 정권 출신임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후대를 받은 인사들이 대거 자리에 물러나고 있는데 반해 오히려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중용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임명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이 가장 대표적이라는 것이 관가와 업계의 평가다. 임영록 KB금융 회장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20회로 관직에 입문했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가 주류인 경제부처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재정경제부 요직을 거쳤다.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서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 금융정책국장, 차관보,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제2차관까지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임 회장은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차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주요 보직 후보에서 줄줄이 배제됐다. 이후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과 법무법인 충정 상임고문 등을 지내며 외곽을 떠돌다 2010년 7월에서야 KB금융 사장을 맡으며 금융계로 턴을 했다. 임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핵심 인사였던 어윤대 전 회장이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KB금융을 맡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 이사장도 노무현 정부에서 속칭 잘나가던 인사였다. 행시 14회 출신인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중부지방국세청장을 거쳐 조달청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별다른 직책을 맡지 못하고 물러났다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발탁으로 현대증권 사장을 맡으면서 증권업계로 자리를 옮겼다. 최 이사장은 관직과 증권업 경험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임명됐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초기 요직을 두루 거치다 낙마했던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경제부처 후임 장관이나 공공기관장 후보에 이름이 항상 오르내리고 있다. 박 회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임기 중간에 그만두고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옮길 정도로 부각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과의 마찰로 경제수석으로 온 지 7개월 만에 교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던 박근혜 캠프와 연을 맺었고, 이러한 점이 고려되면서 공공기관장 등에 임명되고 있다”며 “특히 이렇게 임명된 이들 대부분이 관료 출신이지 정치인은 아니다. 요직을 거칠 정도로 능력은 있으면서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전 정권에서 찬밥대접을 받았다는 점이 고려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정창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이재영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중요시되던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국토균형발전 분야를 맡았던 국토부 인사들이다. 정 사장은 행시 23회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건설교통부 주택국장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단 부단장 등 요직에서 일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국토해양부 기획조정실장과 1차관을 거치며 잘나가는 듯했으나 저축은행 유탄을 맞고 낙마했다.
정 사장과 가족들이 당시 문제가 된 부산저축은행 계열은행에서 2억 원가량의 예금을 인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정 사장은 정기 예금 만기 도래에 따른 인출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인출 과정에서 미리 정보를 안 사람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연루된 사람에 대해 엄중 문책하라”고 지시하자 바로 그 날 사임했다. 이후 강원대 사회과학대 초빙교수로 일하다 이번에 발탁됐다.
역시 행시 23회인 이 사장도 노무현 정부에서 건설교통부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기획단장과 토지국장, 국토균형발전 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지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택토지실장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경기도시공사 사장을 지내던 이 사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형 공기업 사장이 됐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