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웅진 회장. 최준필 기자
특히 웅진홀딩스는 오는 1월 말이나 2월 초 법정관리에서 졸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무리 “자금 마련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급전이 아닌 바에야 법정관리 졸업을 한두 달 앞두고 지분을 전량 매도할 이유는 없다. 재계 관계자는 “법정관리 졸업 직전에 지분을 모두 넘겼다는 것은 새 출발을 아들들에게 맡기겠단 의미로 보인다”면서 “회장직과 오너 위치를 지킬 생각이었다면 지분을 몽땅 매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진작부터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의 책임을 져야 할 윤 회장이 직접 재기하기보다 두 아들을 통해 웅진그룹의 재건을 도모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비록 주요 계열사들의 매각으로 의미가 축소되기는 했으나 웅진홀딩스는 그룹의 지주회사다.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윤 회장의 두 아들은 현재 웅진 계열사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장남은 웅진씽크빅 전략기획실장으로, 차남은 웅진케미칼 경영기획실장으로 각각 근무하며 후계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웅진코웨이에 몸담고 있던 장남 윤형덕 실장은 웅진코웨이가 MBK파트너스에 매각되면서 웅진씽크빅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새봄 실장 역시 웅진케미칼 매각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웅진홀딩스나 웅진씽크빅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들이 매각되면서 웅진그룹은 웅진홀딩스, 웅진씽크빅, 북센, 렉스필드골프장 등 그 규모가 확 줄어들었다.
왼쪽부터 장남 윤형덕, 차남 윤새봄.
웅진홀딩스 채권단은 웅진홀딩스 회생을 위해 오너 일가가 400억 원대의 사재를 출연하고 대신 25% 지분과 경영권을 보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윤 회장의 두 아들은 채권자 변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 이번 유상증자 외에 윤 회장 일가는 앞으로도 추가 증자에 참여, 지분을 높이고 경영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정으로 볼 때 윤 회장의 지분 전량 매각이 단순한 ‘자금 확보 차원’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로 윤 회장은 만 69세가 된다. 재기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젊은 나이도 아니다. 다만 장남 윤형덕 실장의 경험과 나이가 아직 그룹을 이어받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웅진은 예전의 웅진이 아니다. 규모 있고 이름깨나 있는 대표 계열사들이 전부 매각되고 이제 남은 것은 ‘출판사와 골프장’뿐이다. 윤 회장이 지난 1980년 직원 7명, 자본금 7000만 원으로 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씽크빅)을 설립한 때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윤 회장의 나이 만 35세. 이렇게 본다면 윤형덕 실장과 윤새봄 실장의 나이가 이른 것도 아닌 셈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한번 무너지면 훅~
윤석금 회장은 대를 이어서라도 재기를 노리고 있다. 웅진홀딩스의 경영권을 약속받고, 그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웅진씽크빅만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재계 관계자가 적지 않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 번 무너진 기업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엄청나게 확장해왔기에 그 수준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 한 번 쓰러진 대기업이 되살아나거나 오너가 새 출발을 해 성공한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또 다른 대기업 인사는 “기업을 경영하려면 은행권과 관계가 중요한데 쓰러진 기업과 경영인이 은행권으로부터 신용을 되찾기는 힘들다”며 “기업을 쓰러뜨린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까지 재계를 호령했던 그룹 중에서도 지금은 그저 이름만 남아 있는 곳이 허다하다. 대우그룹이 대표적이다. 쌍용그룹, 한일그룹, 진로그룹 등도 한 번 무너진 후 끝이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경우처럼 일부 오너 일가 중 한 사람이 기업을 끌어가는 예도 있기는 하지만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보유 지분을 털어냈기에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형태다. 그나마 쌍용건설은 지난해 말 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신세가 됐다.
재기의 예가 아예 없지는 않다. 한라그룹이 그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다. 1996년 재계 12위까지 올랐으나 이듬해 외환위기 때 무너진 한라그룹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공조 등 주력 계열사들을 전부 매각했다. 이후 수년 간 한라건설을 중심으로 이름만 유지해왔다.
2008년 만도 인수를 계기로 그룹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위니아만도(옛 만도기계), 한라공조 등 부도 직후 매각됐던 옛 한라그룹의 대표 계열사들을 되찾아오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모태인 위니아만도를 되찾아오고 나서야 재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금 회장은 일단 그룹의 모태인 웅진씽크빅과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윤 회장이 과연 재기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