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선언을 한 ‘야구 여신’ 공서영(왼쪽), 최희 아나운서. 이들은 스포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XTM 관계자는 “2년간 우리 방송사에서 야구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베이스볼 워너비’를 진행했던 공 아나운서가 대형 연예기획사 ‘초록뱀미디어’와 계약했다”며 “본인이 ‘스포츠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올 시즌 ‘베이스볼워너비’ 진행자는 아직 공석인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퇴사는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라며 “공 아나운서는 2년 전 우리 방송사와 일할 때부터 프리랜서 신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희 KBS N SPORTS 아나운서는 진정한 퇴사다. 2010년 KBS N SPORTS에 입사한 최 아나운서는 2011년부터 야구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아이러브 베이스볼>의 진행을 맡았다.
최 아나운서는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아이러브 베이스볼>의 메인 아나운서를 꿰찰 만큼 탁월한 방송 감각과 수준 높은 진행 솜씨를 뽐내며 김민아(MBC SPORTS+), 김석류(은퇴) 아나운서에 이어 ‘2세대 야구 여신’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최 아나운서는 전격 프리 선언을 했다. 당시 최 아나운서는 “그동안 몸 담았던 KBS N SPORTS을 떠나 프리랜서로 전향한다”며 “스포츠 관련 방송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퇴사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최 아나운서가 둥지를 튼 대형 기획사는 앞서 공 아나운서를 영입한 초록뱀미디어였다. 초록뱀미디어 측은 “처음부터 두 여성 아나운서를 한꺼번에 영입하겠다는 전략을 짠 건 아니다. 원체 두 여성 아나운서의 실력과 상품성이 좋아 어쩌다 보니 차례 차례 영입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가엔 두 여성 아나운서가 초록뱀미디어로부터 최고 대우를 약속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 케이블스포츠채널 PD는 “공서영, 최희 아나운서 모두 억대 계약금을 받고, 한 해 2회 이상의 광고 출연을 약속받은 것으로 안다”며 “초록뱀미디어가 꽤 주목받는 기획사임을 고려할 때 최소 3개 이상의 고정 프로그램 출연을 보장받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형 기획사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 투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게 목표다. 그러나 케이블스포츠채널은 지상파나 종편에 비해 대우가 열악한 게 사실이다. 잘나가는 야구 해설가도 회당 100만 원 이상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김성주 아나운서의 예처럼 두 여성 아나운서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공 아나운서는 “소속사에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아 향후 계획을 말하긴 힘들지만, 앞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형 기획사와 계약한 뒤 공 아나운서는 종편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JTBC의 모창 프로그램 <히든싱어 2>의 고정 패널이 된 데 이어 최근엔 같은 방송사의 주력 프로그램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2부 ‘예능심판자’에서 출산 휴가를 떠난 박지윤 대신 일일 MC로 출연해 합격점을 받았다.
최 아나운서 역시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시청자들과 만날 것 같다”며 “소속사와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할지 상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 종편 PD는 “우리가 기획 중인 프로그램에 최 아나운서를 출연시키려고 소속사에 의사를 타진했더니 ‘이미 5개 이상의 방송사에서 러브콜이 왔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출연료도 웬만한 A급 연예인 못지않아 ‘최희’라는 브랜드 파워가 상상 이상임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최 아나운서는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꼭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며 “이 같은 뜻을 소속사에 전했다”고 말했다. 공 아나운서도 “야구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계속 전문성을 기르고 싶은 마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야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방송계는 두 여성 아나운서의 프리 선언 이후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사람들이 ‘여신, 여신’하니까 진짜 여신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자신들이 마치 김성주가 된 것으로 오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김성주를 제외한 프리 선언 아나운서 대부분이 시장에서 도태됐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모 방송사 PD 역시 “방송사에 처음 올 땐 ‘스포츠 아나운서로 뼈를 묻겠다’며 진정성을 강조하더니 좀 떴다고 이제 와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히고 있다”며 “케이블스포츠채널이 무슨 여성 아나운서들이 출세를 위해 차를 갈아타는 정거장이냐”고 따졌다.
하지만, 현역 여성 아나운서들은 “우리들의 처지를 잘 몰라 하는 소리”라며 “‘여신’이란 별명을 붙은 건 우리가 아니라 클릭수를 높이려는 상업 언론”이라고 반박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공서영, 최희 아나운서의 프리 선언 이면엔 방송가의 어두운 현실이 숨어 있다. 최 아나운서는 “많은 여성 아나운서가 임금, 신분보장, 활동 영역을 두고 고민이 많다”며 “나도 그러한 고민 속에서 프리선언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먼저 임금이다. 케이블스포츠채널 여성 아나운서들의 임금은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경력 5년 차의 한 여성 아나운서는 “지상파 아나운서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고 있다”며 “각종 수당에서도 지상파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은 돈을 받는다”고 말했다. 특히나 촬영 지원이 빈약하다. 이 여성 아나운서는 “스튜디오 촬영 땐 의상과 분장을 지원받지만, 외부 촬영 땐 의상과 분장을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한다”며 “눈에 보이는 직업인 만큼 의상과 분장에 들어가는 비용이 월급의 반 이상이 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지원은 빈약한데도 방송사에 떼가는 돈은 많다. 보통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가 광고 계약을 맺으면 계약액 가운데 절반은 방송사 몫이다. 광고주가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와 직접 계약하는 게 아니라 방송사에 협찬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광고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케이블스포츠채널의 PD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은 회사의 일원이라, 개별 계약할 수 없다”며 “방송사가 광고 출연료를 협찬금으로 받고, 이 가운데 일부를 아나운서에게 떼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 스포츠 아나운서에 비해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사실 아나운서는 정년이 따로 없다. 능력 있는 남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60세가 넘어서도 마이크를 잡는다. 하지만, 여성 아나운서는 결혼 혹은 출산을 하면 ‘아줌마’로 낙인 찍혀 마이크를 놔야 한다. 경력 10년 차의 한 여성 아나운서는 “3년 전 ‘여성 아나운서는 처녀가 제격’이라는 방송국 고위층의 한마디로 기혼 여성 아나운서들이 대부분 마이크를 놔야 했다”며 “나 역시 아나운서실에서 홍보실로 등 떠밀리듯 쫓겨났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40세가 넘은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TV에서 보기 드문 게 현실이다.
활동 영역이 제한적인 건 가장 큰 문제다. 최 아나운서는 “야구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사실상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가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다”며 “내가 계속 야구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MC를 꿰찬다면 후배 아나운서들은 언제까지고 내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