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랬다. 빈볼이나 벤치클리어링은 경기의 일부분으로 보고 감수할 수 있지만, 김기태 감독님의 사퇴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시즌 초반이고, 너무 갑자기 그만두신 터라 많이 놀랐다. 빈볼 논란은 더 이상 확대되는 걸 원치 않았다. 정찬헌 선수도 출장 정지까지 당했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날 이후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정근우 선수의 2루 슬라이딩 모션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었다. 수비수가 봤을 때 굉장히 위험한 슬라이딩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것은 SK 시절부터 계속 제기됐던 문제였다.
“슬라이딩을 할 때 스파이크를 무릎 위로 높이 드느냐, 아니면 무릎 밑으로 해서 수비를 걸어 더블플레이를 못하게 하느냐에 따라 시각차가 생길 수 있다. 기본적으로 크로스 타이밍이라면 1루 주자의 병살플레이를 저지하려고 2루 슬라이딩을 높게 또는 낮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같은 방법을 쓴다. 포수가 홈플레이트에서 블로킹을 하는 방법도 홈을 향해 달려오는 주자를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위험한 블로킹도 하는 게 아닌가. 수비는 막으려고, 공격은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가끔은 부상도 생기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누가 누구를 지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수비를 하던 선수가 공격으로 바뀌면 똑같이 슬라이딩을 한다.”
―동갑내기 김태균 덕분에 한화 생활이 수월했다고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어느 날 태균이가 그런 얘길 하더라. ‘근우 너는 우리 팀에서 한 10년 이상 있었던 선수 같다’고. 태균이가 한화 입단식 날 내가 입은 유니폼을 보고 ‘진짜 안 어울린다’며 놀렸다가 스프링캠프 때는 한화 유니폼이 맞춤복처럼 잘 어울린다고 말을 바꾸었다(웃음). 내가 워낙 적응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태균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를 잘해줬다. 태균이, (이)용규와 대전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래서 자주 어울린다.”
정근우는 근면, 성실, 노력하는 모습으로 감독들로부터 ‘가장 데려 가고 싶은 선수’로 꼽힌다. 지난 3월 31일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정근우가 선취 득점을 뽑아낸 뒤 동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화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는 경기에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데.
“SK에서도 지는 경기를 한 적이 많다. 그러나 지금 한화의 문제는 마운드이다. 1, 2점을 앞서고 있어도 불펜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다 보니 안심이 안 된다. SK는 투수진이 탄탄했다. 수비할 때도 어느 정도 계산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긴 투수층이 얇아 경기 내내 야수들이 불안해하는 편이다. 4위를 못하면 5~9위란 순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5월 들어서 반등의 기회를 잡고 한화가 달라졌다는 소릴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팀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경기 후 특타나 새벽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사실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규, 태균이 모두 방망이에 문제가 있었다. 잘 안 맞는 날에는 새벽 두세 시까지도 타격 훈련을 했었다. 한번은 원정 경기 때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세 명이 새벽까지 방망이를 휘둘렀다. 연봉의 높고 낮음 없이 모두 성적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 특히 FA로 온 나와 용규는 더욱 그렇다. 태균이는 최고 연봉을 받기 때문에 그 또한 부담스러울 것이다. 모두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한화 입단 후 SK 원정 경기를 치른 적이 있었다. 원정팀 선수로 인천 문학경기장 방문은 처음이었을 텐데, 어떤 느낌을 가졌나.
“솔직히 인천에서 호텔 생활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원정버스에서 내려 더그아웃까지 가는 길은 이전에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이었다. 그 길이 멀고 길더라. 게임하는 내내 내가 왜 최정이 친 볼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SK 포수 정상호는 내가 타석에 서니까 ‘형, 마치 지금 홍백전하는 것 같아요’라며 해맑게 웃더라. SK 훈련시 종종 자체홍백전을 치렀고, 내가 같은 팀이 아닌 상대팀 선수로 타석에 서니까 정상호는 그런 기억을 끄집어냈다. 순간 긴장감이 확 떨어졌다. 그래서 경기를 망쳤다(웃음).”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정근우가 도루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이젠 나이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조금만 뛰면 (허벅지를 가리키며) 여기가 올라온다(웃음). 다만 지금까지 9년 연속 20도루에 성공한 선수가 없었다. 현재 가능성 있는 선수가 김주찬(KIA, 7개), 이종욱(NC, 4개) 선수인데, 세 선수 모두 기록 달성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물한 살인 박민우와의 도루 경쟁에선 내가 이길 수 없다(웃음).”
―선수들이 꼽는 최고의 도루왕은 누구인가.
“(김)주찬이 형이다. KIA에서 온 용규 말로는 도루할 때의 스타트와 슬라이딩할 때 차고 들어오는 게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더라. 그 형 나이가 올해 34세인데,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다. 도루는 주찬이 형이고, 방망이를 치고 1루로 뛰어가는 게 제일 빠른 선수는 (손)아섭이다. 타격 폼이 앞으로 치면서 체중을 싣고 튀어나가는 스타일이라 수비하는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선수이다. 그래서 아섭이는 내야땅볼로 아웃될 게 안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화에선 주로 1번 타자로 나가면서 가끔은 3번을 칠 때도 있다. 타순에 대해 예민한 편인가.
“아무래도 1번으로 나설 때는 하루가 정말 바쁘다. 2, 3번만 쳐도 준비하는 과정에 여유가 있는데, 홈경기일 경우, 1번은 수비하고 바로 타석에 설 때가 많고, 횟수도 제일 많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1번보다는 조금 뒤로 가서 치는 게 마음 편하다. SK 시절 8, 9번을 친 적이 있었다. 두 번째 타석에 서니까 5회가 됐더라. 네 번째 타석에 나가기도 전에 경기가 끝났다. 야구하는 기분이 안 들었다.”
지난 4월 18일 LG와의 홈경기 5회말 정근우가 동점 홈런을 친 뒤 피에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4월 9일에는 기자들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했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까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2005년 프로 입문 후 2군을 전전하다가 2006년부터 야구의 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 무렵 아내와 연애를 하게 됐다. 당시 SK 구단 직원이었던 아내를 향해 줄기차게 대시를 한 끝에 데이트를 시작했고, 아내와 만남을 가지면서부터 야구도 술술 풀려갔다. 즉 아내를 만나기 전의 100여 경기를 제외하면 900여 경기는 아내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야구적인 면보다 야구 외적인 면에서 더욱 풍성하고 많은 걸 얻었던 시간들이었다.”
정근우는 10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한 날, 경기 마치고 자신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자신의 야구인생을 선물로 가득 채워준 스승이기에 정근우는 지금도 김 감독을 챙기며 감사를 전한다.
“그런데 감독님이 먼저 미안하다고 하셨다. 1000경기 출전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면서. 정말 고마운 분이다.”
부지런함, 근성, 최선, 노력, 열심 등등의 단어들로 나열되는 정근우표 야구는 후배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왜 감독들로부터 ‘가장 데려 가고 싶은 선수’로 꼽히는지, 그가 왜 감독들의 최고 지지를 받는 선수인지는 그가 치고 달리고 수비하는 모습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전=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