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급이 국회에 살포한 해명책자
한국선급은 지난 20일 ‘여객선 세월호 한국선급 관련’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국회 각 의원실에 배포했다. <일요신문>이 한 의원실에서 입수한 이 책자는 A4용지 101페이지 분량이었다.
한국선급은 국내 유일의 선급단체(사단법인)로서 국내외 선박의 안전검사를 담당하고 있다. 선급 분야에 있어서 사실상 국내 독과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선급은 직원 수만 875명에 달하며 2013년 기준으로 총 5000만여 톤, 3000척 이상의 등록선을 보유하고, 주요 해운국 35개 정부로부터 정부검사권을 수임 받고 있는 대형 조직이다.
문제는 이번에 대형 참사를 당한 세월호 역시 한국선급의 선박검사를 거쳤다는 것. 이 때문에 한국선급은 현재 세월호 사태의 큰 원인 중 하나인 부실 선박 검사의 책임기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위법 여부를 수사 중이다. 현재까지 부산지검은 한국선급 임원 1명을 해양수산부 공무원에 향응을 접대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으며, 전직 임직원 중 일부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해명자료를 제작해 국회에 배포한 것에 대해 일부 의원실에선 ‘부적절한 처사’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자신들만 살고자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대통령이 책임을 물어 대형 국가조직(해경)을 통째로 없애는 마당에 한국선급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결국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책임소재를 두고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선급이 국회에 해명자료를 살포한 것은 무슨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분명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책자 내용은 어떨까. 책자는 ‘한국선급은 희생자 구조와 사고 수습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어떤 비난에도 말을 삼가고 있다’는 머리말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러한 머리말과 무색하게도 내용 대부분은 사고 책임에 대한 자사의 무관성, 언론보도 해명자료를 포함한 이번 사태에 대한 선급 측의 해명, 자사의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한 역대 국내외적 성과와 역사 등이 주를 이뤘다.
한국선급은 선박검사에 대해 자동차검사와 비교하며 실제 운항에 있어선 선박을 통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책자는 ‘제1부 여객선 세월호 관련 참고자료’, ‘제2부 언론보도 해명자료’, ‘제3부 선급과 한국선급의 이해’라는 세 파트로 이뤄져 있었다.
한국선급은 ‘제1부 여객선 세월호 관련 참고자료’에서 “한국선급의 안전검사는 ‘자동차검사’와 마찬가지로 규정을 지킬 때 안전을 보증하지만, 실제 운항에서 규정을 지키고 따르는지는 한국선급이 통제할 수 없다”며 자사의 책임에 대해 선을 그었다. 반면 이번 사고는 화물 적재 및 고박(결박) 등 실제 안전조치 의무 규정을 어긴 선장과 선사 측에 있다고 책임 소재를 명시했다.
특히 앞서 한국선급 측의 안전검사를 수백 명의 생명을 태우는 대형 선박의 검사를 두고 자동차 검사와 비슷하다고 표현한 것은 이미 이전부터 논란이 있었던 부분. 한국선급 관계자는 21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렇게 표현했다. 앞서 많은 지적이 있어 지금은 수정하고 있지만, 해당 문서는 그 이전에 작성된 것이라 미처 수정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최근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부분 작동하지 않은 불량 뗏목 검사’에 대한 한국선급 측의 책임 여부도 주요 해명 대상이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한국선급은 선박안전법 규정에 따라 성능검사를 마친 뗏목이 선박에 필요한 숫자만큼 탑재됐는지 확인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작동 여부에 대한 검사는 한국선급이 아닌 정비사업장의 몫이며 한국선급은 그것을 거친 뗏목의 수량과 비치 여부만 확인한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또한 한국선급은 ‘제2부 언론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국내 언론이 자사를 상대로 제기한 ‘정부와의 커넥션’, ‘낙하산 인사’, ‘독과점 여부’, ‘검사 전문성 및 인력 부족’, ‘해경의 부실 검사 지적’ 등에 대한 지금까지의 세세한 해명자료를 취합해 제공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민감한 시점에 국회 모든 의원을 상대로 해명책자를 살포한 이유에 대해 한국선급 관계자는 “자료 대부분은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오해가 있는 부분을 정리해 책자로 만들었을 뿐”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잘했다 못했다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일부 오해가 있는 부분을 의원들이 알아주십사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 요구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한국선급 관계자의 최초 해명은 “없었다. 우리가 임의로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뒤늦게 팀장급 관계자가 <일요신문>에 전화를 걸어와 “선급 업무와 관련한 일부 의원실에서 부분적으로 자료를 요청한 경우가 있었다”고 정정했다.
해당 책자는 한국선급 홍보팀 명의로 제작됐다. 이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 한국선급 관계자는 “홍보팀 차원에서 상부에 건의했으며, 이에 재가를 받아 국회에 배포한 것”이라고 답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