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부친 박준철 씨, 이승엽 부친 이춘광 씨, 박지성 부친 박성종 씨가 한자리에 모여 자식을 최고의 운동선수로 성장시킨 뒷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IMF가 한창일 때 98년 US오픈에서 드라마 같은 우승으로 일약 국민 골퍼로 거듭난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 ‘산소탱크’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주름 잡았던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홈런 타자로 한국과 일본을 접수했던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 씨는 한국의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선수의 성공 스토리에 배경으로 작용한다.
“세리가 지금은 주춤거리고 있지만, 세리를 보고 성장한 ‘세리 키즈’들 덕분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빚을 지며 세리를 뒷바라지했고, 세리가 독하게 골프를 한 덕분에 부와 명예도 거머쥐었다. 이젠 세리가 몇 승을 더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2016년 은퇴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 전까지 골프 선수로서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박준철 씨
“은퇴하고 결혼까지 시키면 홀가분하고, 할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뒷바라지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영국에서 신혼생활과 유학을 위해 곧 출국할 예정인데, 지성이가 없는 동안 재단과 축구센터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성이 덕분에 아버지가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지성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런 관심을 받았다고 본다.”-박성종 씨
“승엽이가 야구한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지금까지 선수로 뛰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있다. 일본에서도, 또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승엽이가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삼성 라이온즈 연간회원권을 끊고 대구에서 경기가 열릴 때마다 야구장을 찾는데, 승엽이가 뛰는 경기를 지금까지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그래도 아버지로선 아들이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 편하게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이춘광 씨
유명 선수를 자식으로 둔 아버지들은 성적에 따라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았다. 자식이 흔들릴 때는 모진 말로 강하게 채찍질하기도 했다. 때론 자식을 위해 총알받이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식의 이성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박세리, 박지성, 이승엽은 그냥 선수가 아닌 국민들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박준철 씨는 “나의 어두운 과거로 인해 세리가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실력으로 잘 이겨내 대견했다”면서 “한때는 결혼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인륜지대사는 부모의 영역 밖이더라. 지금은 초월한 상태”라고 말했다.
박성종 씨는 “그동안 지성이 열애설이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속을 태웠고, 속도 상했다”면서 “이젠 그런 일은 없어 다행인데 결혼시켰다고 해서 자식 걱정이 줄어드는 건 아닌 듯하다”고 대답했다.
이춘광 씨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승엽이가 (이)송정이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큰일 났다 싶었다. 송정이가 대학 1학년생이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의 처자가 운동선수의 삶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그래도 두 아이 낳고 잘 사는 걸 보면 기특하고 대견하다. 운동선수는 운동도 잘 해야 하지만, 가정을 꾸린 만큼 가정에도 충실해야 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승엽이가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세 아버지들은 각자 살아온 인생이 다르다. 자식이 뛰는 종목에 따라 뒷바라지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자식의 성공을 지켜보며 선수로서의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제대로 잘 조화를 이루길 바랐다. 그런 점에서 아직 미혼인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는 아쉬움이 크다.
쉽게 만날 수 없는 각기 다른 종목의 스타플레이어 아버지들. 자식을 특징 짓는 유니폼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을 보며 한 가지 깨달은 건 ‘아버지’란 이름은 크고 위대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