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림수에 능한 타자보다는 실투를 놓치지 않는 타자가 한 수 위다.’
야구의 오래된 격언이다. 미국에선 이를 두고 ‘미스테이크 히터(Mistake Hitter)’라 한다. 아무리 훌륭한 투수라도 약점이 있고, 이따금 실투도 하는 법. 결국 상대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집어내는 자가 승리한다는 논리다.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정치권의 네거티브 공방을 두고 눈살을 찌푸리는 국민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 임하는 주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일단 이겨야 한다. 보이는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그저 놔둘 생각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불과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는 향후 총선의 공천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모든 당권주자들의 시선은 한 곳에 꽂혀 있다. 대권주자 문재인 의원이다. 문 의원의 당권 출마는 곧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스페셜 원’으로 여겨진다. 워낙 압도적인 탓에 어쩌면 그의 출마가 현실화된다면, 전당대회 자체는 싱거운 흥행 참패로 끝날지 모른다는 얘기도 곧잘 나온다. 물론 문재인 의원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친노 핵심을 비롯한 진영 인사들이 문 의원의 출마를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 본인은 고심 중이다. 결국 자신의 대권행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본인 스스로의 결단에 큰 장애물이자 다른 주자들에게도 약점으로 지적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의 말처럼 문재인 의원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대권주자’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간접적인 당·대권 분리조항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만약 당권과 대권에 모두 도전한다면, 대권 도전 1년을 앞두고 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새정치민주연합 당헌 25조 2항). 여러모로 당 안팎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만약 출마한다면 전당대회 직전까지 다른 후보자들에게 ‘당권에 나선다면 현재의 당헌에 따라 임기를 완료하고 대권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식의 극단적인 질문 공세를 받을 게 뻔하다.
또 다른 당권주자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의원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했지만, 13일 새벽 트위터를 통해 “당과 집권을 위해서 당권과 대권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본인의 추후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는 문재인 의원과 친노 진영에 대한 압박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당권을 잡는다고 해도 그 후가 더 문제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만약 문재인 의원이 당권을 잡는다면, 향후 총선에서 최소한 현재 수준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대권주자지만, 의정 경험이 부족한 문 의원에게 쉽지 않다”며 “현재 10%대의 당 지지율을 최소 30%로 올려놓고 총선 막바지까지 이를 유지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이것 실패하면 곧 본인의 차기 대선도 날아간다”고 단언했다.
비노 진영에서 출마가 유력한 박지원 의원은 응당 ‘호남의 세’를 초집중해야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호남 출신 당권주자인 정세균 의원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지원 의원이 넘어야 할 산이자, 다른 진영과 후보자들에게 공격 받을 수 있는 대목 역시 ‘호남 물갈이론’이다. 특히 친노 세력 집권 이후 지난 19대 총선과 6·4 지방선거, 7·30 재·보궐 선거까지 ‘호남 물갈이론’은 큰 힘을 발휘했다. 더군다나 지난 재보선에서 호남의 핵심 지역 중 한 곳인 전남 순천·곡성 지역에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
박지원 의원은 특히 호남 물갈이론이 거세게 일었던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호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라며 “호남으로 승리할 수 없고 호남을 빼고도 안 된다. 물갈이 공천은 어느 지역이나 당연하지만 특별히 호남 물갈이 요구는 자존심 문제”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새정치연합 당직자는 “최근 몇 년간 박주선, 이용섭, 강운태 등 유력 호남 정치인들이 이 호남 물갈이론의 희생자로 기록됐다. 호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박지원 의원도 호남 물갈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현직으로 몇 남아있지 않은 동교동계 인사로서 박 의원은 19대 현역 의원 중 최고령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비주류이자 비노 인사에 속하지만, 사실상 ‘무계파’라 칭해질 만큼 조직세가 취약하다. 무엇보다 원외라는 점이 치명적이다. 물론 이러한 이해관계 덕에 당 개혁에 과감하게 메스를 댈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도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어찌 보면 김 전 의원의 이러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다른 진영 후보의 적극적인 공세 대상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12일 한 당권 주자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최대 표밭인 호남 지역을 돌며 묵묵히 당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난 어려운 선거를 많이 치러봤다. 물론 기본적으로 열심히 뛰고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다만 선거 전략이란 무엇인가.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결국 나의 것을 돋보이게 하고 남의 잘못되고 그릇된 점들을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이 기본 아닌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난 분명하게 지적할 점은 지적할 생각이다. 모두에게 만만찮은 싸움이 될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