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신문 주최 제1기 명인전 리그가 진행되던 때였다. 리그 마지막 상대가 사카다 9단이었다. 그날 우칭위안-사카다, 후지사와 슈코-하시모토 쇼지, 두 판이 열렸다. 후지사와 9승2패, 선생과 사카다가 8승3패, 하시모토는 우승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후지사와가 이기면 우승. 후지사와가 지면, 후지사와와 우칭위안-사카다 전 승자의 동률재대결.
그런데 이들 앞에 묘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후지사와는 승패가 관계없는 하시모토에게 일찌감치 패하고 자책의 홧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칭위안-사카다 바둑은 종반까지 사카다의 우세였으나 선생이 줄기차게 따라붙어 결과는 빅. 덤이 5집이던 시절이라 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인데, 빅이면 백승이고 선생이 백이었다. 선생과 후지사와가 9승3패. 그러나 동률재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빅으로 이긴 것은 그냥 이긴 것보다 못해서 승점이 1점이 아니라 0.5점이라는 규정이 후지사와에게 초대 명인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제1기 명인전 리그에서 우칭위안 9단(왼쪽)이 대국을 펼치고 있다.
이듬해 제2기 명인전 리그에서는 5승3패로 또 2위. 두통과 시력장애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대국 중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는 등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훌륭한 성적이었으나 이제 와서 보면 운세나 기력이 거기까지였던 것인지, 제3기에 와서 선생은 7전 전패로 무너졌다.
요미우리는 선생에게 일정액 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은퇴를 권유했고 선생은 거부했다. 밀고 당기는 사이에 선생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일본기원 소속기사가 아니고 객원기사이며 요미우리신문의 전속기사라는 것이었다. 선생이 1947년에 이미 일본기원에 사표를 냈고, 그에 따라 일본기원은 선생을 제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사표를 낼 일이 없을뿐더러 일본기원으로부터 제명 통고를 받은 일도 없었다. 사표는 선생의 스승 세고에 겐사쿠 9단이 선생의 이름으로 대신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생은 1988년 11월 제1회 응창기배 4강전 때 서울에 왔었고, 그리고 1992년에는 열렬 애기가이자 바둑계 후원자였던 부산의 기업가 김영성 한국기원 이사의 초청으로 부인과 함께 제주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제자인 린하이펑 9단도 동행했다. 바둑팬은 일본 귀화→국적 상실→재귀화 사연이나 종교단체 홍만회 등에 대해 질문들을 했는데, “세고에 스승이 왜 선생도 모르게 대신 사표를 낸 것이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선생은 들릴 듯 말 듯 “나도,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면서 맑게 웃었다. 항간에는 당시 세고에 9단과 일본기원 사이에 뭔가 꼬인 일이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세고에 9단의 또 다른 제자 하시모토 9단이 관서기원을 만들어 나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들도 있다.
이광구 객원기자
‘수 나는 곳엔 가일수’ 규정 탄생 10번기나 신포석 말고도 선생의 일화는 무궁무진하다. 절대지존이었으므로 반상-반외의 화제에는 대개 선생이 그 중심에 있었다. 1959년 12월에 시작한 다카가와 9단과의 제5차 3번기 2국 때의 일이다. <1도>가 종국 장면. 선생이 백이다. 여기서 중앙 백진에 가일수 문제가 생겼다. <2도>처럼 흑1로 끊고 3으로 들여다보면 수가 난다는 것. 그러니 백이 한 수 보강해야 한다는 것. 흑3 다음은…. <3도> 백1로 이으면 흑2로 이쪽을 끊는다. 백3으로 단수치면 흑4로 잇는다. 계속해서 백A면 흑B로 이어 빅. 백B로 따내면 흑A로 이어 역시 빅. <4도> 백1로 먼저 끼우면? 이건 또 흑2로 늦추어 받는 수가 있다. 그러면 A의 곳 패가 문제가 되는 것. 그래서 다카가와 9단은 가일수를 요구한 것인데, 우칭위안 9단은 “패가 나는 것은 맞지만, 백은 팻감이 많다. 그러니 가일수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 것. 실제로 패싸움을 해보자. <5도> 백1로 따낸다. 흑은 일단 좌상귀쪽 2로 공배 하나를 메우면서 백이 흑▲ 자리에 잇기를 기다린다. 가일수와 똑같으니까. 백은 잇지 않겠다는 것이니 백도 3으로 공배를 메운다. 그러면 흑4로 패를 딴다. 백5는 팻감. 흑6으로 끊어오면 백7로 패를 딴다. 흑은 8로 또 공배 하나를 메운다. 가일수를 강요하면서. 백이 가일수하지 않고 버티려면 아까처럼 공배를 하나 메워야 하는데, 이제는 공배도 없다. 그러면? 착수포기! 당신이 두시라는 것. 흑은 10으로 패를 딴다. 백은 11로 팻감을 쓰고 13으로 되딴다. 그리고 좌상귀 쪽 흑14의 팻감을 듣지 않는다는 것. <6도> 백1로 패를 해소한다. 흑2로 저쪽 패를 따면, 우하귀 백3을 팻감으로 쓰고 백4로 △ 자리에 따낸다. 여기서 흑은 더 이상, 그냥 메울 공배도, 팻감도 없는 것. 일본기원은 부랴부랴 회의를 열었고, 장시간 토론 끝에 수가 나는 곳에는 가일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당시는 덤이 4집반이었는데, 이 바둑은 흑 반집승이었다.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