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무산이 최상의 시나리오였으나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으로 단일화되는 것보다 공격 포인트가 명확한 노 후보가 편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단일화가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내부 분위기는 초긴장 상태다.
대선 때까지 유지될 것으로 믿어왔던 이회창 대세론이 선거를 불과 20여 일 남겨두고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태연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관계자들조차도 후보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일부 인정하고 있어, 단일화의 충격파가 어느 정도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한 특보는 “노 후보가 조직과 돈을 가지고 있는 여권의 후보인 만큼 앞으로 치열하고 어려운 싸움이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그동안 주장해온 정치쟁점이 재현되면서 죽느냐 사느냐의 양상으로 격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묻어뒀던 노무현 X파일을 다시 꺼내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정몽준 의원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데도 당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경선 이후 지방선거, 재보선 등을 통해 노 후보의 정치력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으나 또 다른 비책도 마련해 둔 상태”라면서 “정몽준 의원의 지지층을 끌어들이는 데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내가 잡는다’지난 15일 전국교육자대회에 참석한 이회창 후보(왼쪽)와 노무현 후보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 ||
연장선상에서 부패무능정권 심판론을 부각시켜 대선구도를 주도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서청원 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이 각종 회의에서 이를 집중 거론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서 대표는 25일 “노 후보는 지난 5년간 나라와 국민에게 고통을 준 DJ 민주당 부패정권의 후계자”라고 비판했고, 김영일 사무총장도 “이번 대선은 정권교체를 통한 국운융성이냐 아니면 정권연장으로 끝없는 추락이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선거”라며 “남은 것은 부패정권 심판과 정권교체 확인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노무현 구도가 보혁구도라는 점에서도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선거기간 동안 안정희구성향의 중도보수층을 결집시키고 광범위한 세확산를 시도한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다.
보수층 결집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충청권이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고 충청권 공략에 집중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이 후보는 당분간 충청권을 집중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민주당 내 반노인사인 이인제 의원, 이한동 전 총리와의 연대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심대평 지사의 영입도 적극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이 후보도 “정권교체로 국가혁신을 이루는 데 동참한다면 얼마든지 같이 갈 것”이라며 이들 인사들과의 연대에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한나라당이 충청권을 집중 공략하는 데는 또 다른 전략이 숨어 있다. 이른바 ‘몽표(정몽준 의원 지지층)’를 이 후보쪽으로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정 단일화 과정에서 나타난 이 지역 민심을 분석해본 결과 정 의원을 지지하는 층이 노 후보 지지자보다 더 많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따라서 중도보수 성향의 이 지역 유권자들이 노 후보쪽으로 옮겨가기보다는 심정적으로 한나라당에 가까운 표가 많을 것으로 보고 이들 표를 최대한으로 ‘수확’한다는 복안이다. 이들을 끌어들일 경우 전체 대선구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몽표’ 흡수전략은 충청권뿐만 아니라 정 의원의 지지층이 상당했던 수도권과 강원도, 영남지역 일부를 대상으로도 집중 펼칠 전망이다. 아울러 정 의원의 지지층으로 알려진 W세대(월드컵 세대)도 포섭한다는 방침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이제 경쟁자가 아닌 만큼 그에 대한 공격을 전면 중단하고 중간자적 입장의 ‘방관자’로 만들거나 아예 친 한나라당화하는 ‘작전’도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정 의원 접촉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민주당은 정 의원을 계속 협력구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막판 대선구도가 결국은 영호남 지역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표 단속에 들어갔다.
이는 노 후보가 부산 출신임을 내세워 PK지역에서 노풍을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후보는 현역의원들을 각 지역구로 내려보내 득표전략에 최선을 다해 줄 것으로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단일화가 임박해지기 직전 신경식 대선기획단장에게 특명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 후보가 신 단장에게 ‘의원들이 왜 당사에만 왔다갔다하느냐’면서 ‘당에는 당3역과 실무진을 제외하고 전원 지역에 내려가서 활동하게 하라’고 성토 섞인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 후보 개인에 대한 검증도 철저히 할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노 후보의 국정운영 능력이 과연 있는가 여부를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행정경험이나 국제적 안목 등을 이유로 이 후보에 비해 국가 통치권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점을 공격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사생활 부분도 건드린다는 전략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노 후보는 실제로 서민후보가 아니다”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해온 그의 경력과 생활 면을 보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후보의 설화(舌禍)와 관련된 자료와 생수회사 비리 및 노 후보 측근인사의 벤처비리 의혹 등이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난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이 후보와 관련된 사생활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의 대선전략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앞으로 일주일 내지 열흘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 이 후보 입장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관건이고 노 후보로서는 이를 뚫고 투표일까지 유지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 초반 분위기가 그대로 투표 당일까지 갈지 모른다”며 예측불허의 박빙승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