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회복에서 대도약으로, 초격차 대한민국’을 주제로 국민보고회를 주재했다. 정부는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연결해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 구조를 비수도권으로 확장하고 한국형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보고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서남권에는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 4기와 산업 생태계를, 충청권에는 81조 원 규모의 반도체 패키징 거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정부는 SK, GS 등 기업과 협력하며 총 550조 원을 투자해 울산과 세종, 강원 동해 등지에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계획도 발표했다.
발표 직후 논쟁은 서남권 반도체 생산기지로 좁혀졌다. 야권은 단순히 ‘왜 호남이냐’는 문제를 넘어 입지 선정 과정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정부가 어떤 기준과 검증을 거쳐 서남권을 반도체 생산기지로 선정했는지, 기업의 경영 판단이 먼저였는지 정부의 지역 산업정책이 먼저였는지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보고회의 실질적인 결론이 광주·전남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4기를 짓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는 기업들이 전국에 분산해 건설하겠다는 계획이고, 새만금과 대경권의 피지컬 AI 사업은 기존 구상을 다시 발표한 데다 투자 규모도 제시되지 않았다”며 “반도체 공장은 현찰이고 피지컬 AI는 어음이다. 입지 선정 방식도 ‘호남만을 위한 수의계약’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다른 지역의 반발과 국론 분열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보고회의 구체성과 선정 절차를 문제 삼았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메가프로젝트가 아니라 메가허풍 국민보고회였다”며 “반도체를 제외한 사업은 ‘호남 몰아주기’ 비판을 희석하기 위한 들러리처럼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왜 호남을 반도체 생산기지로 선정했는지, 어떤 검증과 절차를 거쳤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기업도 투자 시기와 이행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요신문i’에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던지는 순간 논쟁 구도는 영남 대 호남이 아니라 호남 대 반호남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반도체 입지는 전력, 용수, 인력, 공급망, 기업의 투자 판단이 맞물려 기업이 우선 결정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먼저 못 박으면 경제 논리는 사라지고 정치만 남는다. 국가전략산업을 지역감정의 소재로 끌어내린 무책임한 발표”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이 전력과 용수, 산업 인프라, 용지 가격 등을 검토해 내린 투자 결정을 야권이 정치적으로 재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SNS를 통해 3대 메가프로젝트가 각 권역이 잘할 수 있는 산업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는 구상이라며 정부는 기업의 결정을 존중하고 전력 차등요금제와 인허가, 부지·용수 등 기반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 계산으로 미래의 발목을 잡지 말아 달라”고 밝혔다.
강준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국민의힘이 전체 산업전략은 외면한 채 호남이라는 지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특혜라는 주장에 대해 “호남 지역에 대한 본능적 차별의식”이라며 “호남을 지원하면 정치 도박이고, 영남을 지원해야 균형발전이냐”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업이 호남에만 투자를 몰아주는 계획이 아니라 지역별 강점을 고려해 전국에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방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출발점이라며 기업의 결정을 정부가 기반시설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6단체도 전력과 용수, 부지 등 필수 인프라와 제도적 기반을 적기에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학계에서는 호남 반도체 투자를 지역 간 이해득실 문제로만 다루는 정치권의 공방이 소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SNS에 “산업 인프라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드는 것”이라며 “인프라는 입지를 결정하는 상수가 아니라 국가가 전략적으로 입지를 정한 뒤 뒤따라 만들어내는 변수”라고 주장했다. 다만 송전망과 용수 인프라, 인력 양성, 배후도시를 책임질 구체적인 재정 계획과 실행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력과 용수 문제를 고민한 흔적은 보였다면서도 “인프라는 투자의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팹이나 AI 데이터센터 완공 뒤에 기반시설이 구축되면 속도전의 의미가 퇴색한다며, 지역 공방보다 전력·용수·인재 확보와 정책의 연속성, 시장 변화에 대비한 실행계획을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준 기자 cj5121@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