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공개된 이야기는 장성호의 '가출 사건'이었다. 장성호는 중학교 시절 최고의 유망주였지만 신입생 당시 야구장 청소가 하기 싫다는 이유로 곧바로 야구장을 떠났다고 털어놨다. 이후 당구장과 여인숙 등을 전전하며 집에도 들어가지 않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결국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다시 집을 나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선배였던 조성환은 감독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장성호를 찾아다녔다. 조성환은 "진짜 내 동생을 잃어버린 것처럼 찾으러 다녔다"며 "아버님께 연락드리면 '고생했다'고 말씀하셨다. 성호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셨다"고 떠올렸다. 장성호는 "그 이야기는 2013년 롯데에서 다시 만난 뒤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의 간판 타자로 성장한 장성호와 롯데 신인이었던 조성환은 경기장에서 처음 재회했다. 당시 조성환은 장성호에게 방망이 하나를 부탁했지만 "선배가 후배에게 줘야지 후배가 선배에게 주는 게 어디 있냐"는 답을 들으며 거절당했던 일화를 웃으며 소개했다.
조성환은 학창 시절 장성호의 방황을 기억했던 만큼 처음에는 '타고난 재능만으로 야구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훗날 롯데에서 함께 생활하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조성환은 장성호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하는 선수였다"며 "같은 팀에서 생활하면서 그동안 내가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성호는 KIA 타이거즈 시절 해프닝들도 공개했다. 1996~1997년 김응용 감독과 김성한 코치의 지도 아래 새벽 7시부터 해질 때까지 타격 훈련을 반복했고, 그 혹독했던 훈련 과정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외다리 타법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장성호는 당시 훈련을 떠올리며 "지금도 그 시절 꿈을 꾸면 식은땀을 흘리며 깬다"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데뷔 첫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상황에 대해서는 배탈로 트레이너실에 누워 있다가 김응용 감독에게 들켰고, 불성실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장성호는 "당시에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의 의미를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3년 장성호가 한화 이글스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며 다시 이어졌다. 조성환은 선수 생활 말미 외로움을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장성호의 합류에 대해서 "후배들이 많았지만 함께 의지할 선배가 없었다"며 "(장)성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선물 같은 기분이었다. 나 역시 위로를 받았고 성호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장성호 역시 "(조성환) 형도 그렇고 나도 선수 생활 마지막이 좋았던 시기는 아니었다"며 "상동 2군 구장까지 함께 차를 타고 다니고,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충암중 선후배 인연으로 시작되어 방황의 시절과 트레이드, 선수 생활 황혼기, 은퇴 후까지 이어지는 조성환, 장성호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위의 영상과 유튜브 채널 썸타임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채요한 PD pd_yos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