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는 이중근 회장이 조정호 회장과 조 회장의 신축 주택 시공사 장학건설을 상대로 낸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5월 14일 이 회장은 조 회장이 새로 짓고 있는 주택이 본인 주택의 한강 조망권을 침해한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부영그룹과 메리츠금융그룹 총수가 다툼을 벌이게 된 곳은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가 대저택이 밀집한 한남동 일대 ‘이태원 언덕길’이다. 이곳은 남산자락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한강이 펼쳐져 풍수지리학적으로 배산임수 입지를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내려 삼성 리움미술관을 거쳐 걸어가다 보면 높은 담장을 가진 단독주택이 여러 채 등장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 등 여러 재벌 총수가 이곳에 살고 있다.
이중근 회장은 부영그룹 회장에 취임한 해인 1994년 이태원 언덕길에 있는 한남동 73X-XX번지 부지를 사들였다. 같은 해 12월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 연면적 438.15㎡(약 133평)의 적갈색 벽돌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단독주택이 이 부지에 완공됐다. 이 회장은 이 주택을 거처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주택 바로 옆 74X-X 부지도 2015년 사들였다. 이 부지는 현재는 나대지(건물이 없는 대지) 상태다.

이중근 회장 자택과 조정호 회장의 신축주택은 도로 하나를 두고 맞닿아있다. 두 건물은 불과 49m 떨어져 있고 걸어서 1분 남짓 거리에 있다. 한강을 기준으로는 조 회장의 주택이 앞에, 이 회장의 주택이 뒤편에 있다. 갈등은 여기서 생겼다. 이 회장은 조 회장 주택이 지어지면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는 한강 조망권 침해 피해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현재 나대지로 있는 74X-X 부지에도 이 회장은 향후 건물을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경우 조 회장 신축 주택이 정면으로 조망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서부지법 재판부는 이중근 회장의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조정호 회장 주택이 완공되면 이 회장 주택의 왼쪽과 남쪽 일부에 조망권 침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간 이 회장 주택과 한강 사이에 저층 건물만 있어 조망이 확보된 것이고, 조망은 객관적인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조 회장에게도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법원은 밝혔다.


부영과 메리츠금융 두 그룹 총수 간 조망권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월 28일 이중근 회장 측은 법원에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이 회장 측은 조 회장 주택의 건축 법규 위반 여부를 다투기 위해 용산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용산구청 측은 “건축허가가 났다는 것은 허가 단계에서 위법 요소가 없다고 행정관청이 판단했다는 의미”라며 “다만 이 같은 행정처분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소송이 제기돼 해당 부지를 둘러싼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행정소송에서 위법성이 인정되면 건축물에 시정조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행정소송과 별개로 조망권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두 총수가 합의점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중근 회장 측은 “조망권은 정면으로 보이는 경관뿐 아니라 좌우를 포함한 전체 시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건물이 지어질 게 명백한 부지 조망을 정면으로 가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회사 업무와는 관계가 없는 영역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신세계와의 갈등은 층수 조정하면서 마무리

이명희 총괄회장 소유의 이 단독주택은 현재 조정호 회장이 짓고 있는 단독주택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현재 정유경 회장과 정 회장의 남편 문성욱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의 주소지가 이 단독주택이다. 이중근 회장으로선 과거 분쟁을 겪었던 집의 바로 옆집과 같은 이유로 다시 갈등을 겪게 된 셈이다.
부영과 신세계 총수의 조망권 분쟁에선 이중근 회장이 승리했다. 2009년 8월 서울서부지법 재판부는 이중근 회장이 낸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이 짓고 있는 건물이 들어서면 이중근 회장 남쪽 방향 조망이 대부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조망이익 침해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한도를 넘는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신축 건물이 서울시 건축조례가 제한한 높이에 위배돼 건축 관련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명희 총괄회장 측이 신축 주택을 지상 2층이 아닌 1층까지만 짓겠다고 하면서 갈등은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재벌 총수들은 금전적 배상보다 기존 생활환경이 훼손되는 것 자체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업종이 다른 경우라면 상대방의 눈치를 볼 이유도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