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광고 ‘주전 경쟁 원칙’에 유격수 꿈 이루고자 덕수고행 타진…이홍석 “정윤진 감독에게 내가 먼저 연락”
[일요신문] 고교 야구의 가을은 전학의 계절이다. 전학한 선수는 약 6개월 가량의 출전 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에 대부분 9월이나 10월에 선수들이 많이 움직인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경기인 등록규정’에 따르면 제18조 제7항 1호에, 18세 이하부의 경우 타 시도 또는 동일 시도 이적시 선수 활동 제한 기간을 6개월로 정하고 있다. 단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적하는 선수 포함 팀 등록 선수가 30명이면 활동 제한 기간을 적용 받지 않는다.
우승 명문 팀인 덕수고에도 변화가 있었다. 에이스 정주영과 외야수 조원빈이 경기상고로, 좌완 이휘영은 서울고, 내야수 홍주용은 휘문고로 옮겼다. 덕수고로선 내년 시즌 전력에 타격을 입을 만큼 주축 선수들의 전학 결정에 어려움을 느꼈지만 최근 이를 만회할 만한 선수들이 덕수고로 자리를 옮겼다. 내년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히는 세광고 내야수 이홍석과 휘문고 좌완 김주원이 합류한 것이다.
최근 고교야구계에서 세광고에서 활약하던 이홍석이 덕수고 전학을 선택해 관심이 집중됐다. 사진=이영미 기자이렇듯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고교 야구의 전학 흐름이지만 주요 선수가 전학을 결정하면 소속팀 감독은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또 예상치 못한 핵심 선수가 전학 오고 싶다고 연락을 주면 그 또한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고3을 앞두고 야구부를 바꾸는 결정은 선수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한 매체에서 청주 세광고의 창단 첫 청룡기 우승을 이끈 핵심 선수가 서울로 전학할 예정이라며 지역 인재 유출에 따른 지역 고교 야구 기반 약화를 우려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선수는 세광고 4번 타자이자 야수와 투수를 겸하는 2학년 주장 이홍석이었다.
이홍석은 지난 7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까지 4경기 14타수 7안타(1홈런) 6타점 타율 0.500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준결승전에서 상대 투수의 공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해 결승전에 뛸 수 없었지만 그는 오른손에 깁스를 한 채 더그아웃에서 ‘응원 단장’으로 팀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이홍석은 고교 1학년부터 ‘천재 타자’, ‘고교 오타니’로 불리며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올 시즌 최고 시속 150㎞을 던질 만큼 투타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이홍석의 덕수고 전학을 다룬 매체에서는 ‘지역 야구계에서는 이런 배경에 청소년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정윤진 덕수고 감독의 ‘선수 빼가기’ 영향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본 정윤진 감독은 사실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잘못된 내용의 기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정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선수의 전학과 그 전학의 배경을 놓고 상대 학교 감독이 선수를 빼갔다는 내용의 기사를 쓰려면 적어도 그 감독에게 전화해서 사실 확인을 하는 게 기자의 의무 아닌가.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내게 연락조차 한번 안 했다. 나는 이홍석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고려 중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청소년대표팀을 맡고 있었고, 국제대회를 준비했던 상황 중에 처음 이야기를 들었다. 울산에서 대표팀 강화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대표팀의 황성현(덕수고, NC 지명)이 내게 처음으로 이홍석 이야기를 꺼냈다. 홍석이가 외야수가 아닌 내야수, 그 중 유격수로 뛰고 싶어 하는데 세광고에서는 상황이 여의찮아 전학을 고려 중이고, 마침 덕수고에 엄준상이 맡았던 유격수 자리가 비니 덕수고로 전학 오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황성현이 전화를 바꿔줘서 그때 처음으로 이홍석과 통화했다.”
정 감독은 이홍석과의 첫 통화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이홍석이 세광고의 주전 선수라 함부로 학교를 옮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과 그럼에도 전학을 희망한다면 세광고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게 우선이며 그 대화가 잘 이뤄졌다면 세광고에 남는 게 좋고, 대화를 통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때 다시 연락을 달라는 게 정 감독이 이홍석에게 전한 조언이었다.
이후 정 감독은 이홍석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고 한다. 세광고 방진호 감독과 대화를 나눴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고, 만약 덕수고에서 내야를 맡겨준다면 덕수고로 전학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정 감독은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해 대만에 도착한 이후 이홍석 아버지의 전화도 받게 된다.
“(이)홍석이 아버지께서 세광고 감독과 면담을 했는데 이홍석이 원하는 내야는 경쟁을 거쳐야 한다고 해서 아버지는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덕수고로 전학가면 내야를 맡을 수 있느냐고 다시 물어보셔서 지금 덕수고에 내야 자리는 남아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와 통화를 마친 후 방진호 감독과 통화를 하는 게 맞는 듯 해서 대만에서 방 감독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 이후 전학은 이홍석 아버지와 덕수고 체육부장님이 진행한 걸로 알고 있다.”
세광고 방진호 감독은 왜 덕수고 정윤진 감독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까. 10월 1일 방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내용을 물었다. 다음은 방 감독의 설명이다.
“이런 일이 이슈화되는 게 좀 의아하다. 이홍석이 우리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인 건 맞다. 선수가 유격수 자리를 원했지만 우리는 경쟁을 통해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누차 얘기했다. 물론 홍석이가 우리 팀 전력의 핵심 선수이지만 경쟁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이건 우리 팀 운영 방침이다. 이 점에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방 감독에게 정 감독의 전화를 왜 받지 않았느냐고 묻자, 방 감독은 “내가 그 전화를 받을 입장은 아니었다”면서 “솔직히 감정이 좋다고 하면 거짓말 아니냐”라고 답했다.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서울은 자원들도 많고, 덕수고는 특히 야구 명문 팀 아닌가. 그런 학교에서 굳이 지방 학교에까지 손을 대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했던 지도자 입장에서는 허탈한 마음도 생긴다. 서울이나 지방 학교나 지도자들이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지방 팀은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덕수고가 선수를 빼갔느니, 안 빼갔느니 하는 건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대신 감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지난 7월 세광고가 1954년 야구부 창단 이후 72년 만의 청룡기 대회 첫 우승을 일궜을 때 핵심 전력은 2학년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야구계에서는 세광고의 2027년이 더 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청룡기에서 2학년 이홍석은 외야수로 뛰었고, 이홍석이 원했던 유격수는 2학년 김우진이 맡았는데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44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것이다. 방 감독 입장에서는 유격수를 원하는 이홍석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보장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유격수를 원하는 선수는 이홍석 외에도 김우진이 있었기 때문에 주전 자리는 선수들의 경쟁을 통해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 감독은 이홍석의 전학이 내심 서운했지만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홍석이 보낸 문자 한 통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눈치다. 지금은 이홍석의 꿈을 응원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홍석은 현재 덕수고에서 훈련 중이다. 기자가 덕수고를 찾았던 9월 30일 이홍석은 곧 미국으로의 출국을 앞둔 엄준상과 함께 뛰고 구르며 유격수 훈련을 소화했다. 이홍석의 얼굴은 매우 밝았다.
[인터뷰] 이홍석이 직접 밝히는 덕수고 전학 속사정
야간 훈련을 마친 이홍석과 마주 앉아 세광고에서 덕수고로 전학하게 된 속사정을 들었다. 이홍석은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홍석(왼쪽)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벡스와 계약을 맺은 엄준상(오른쪽)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사진=이영미 기자“평소 친하게 지낸 (황)성현이 형과 통화하다가 덕수고에 유격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덕수고로 전학 가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었고, 이후 정윤진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다. 감독님께서는 이런 일은 우선적으로 부모님이랑 세광고 감독님이랑 상의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방진호 감독님을 찾아갔는데 감독님은 그 자리에서 유격수 자리를 보장해 주긴 어렵고, 경쟁을 통해 기회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유격수 자리가 있는 덕수고로의 전학을 결정했다.”
이홍석은 자신이 세광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데에는 방진호 감독과 코치들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감독님, 코치님들이 안 계셨다면 내가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유격수 자리가 계속 주어졌다면 굳이 학교를 옮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덕수고로 전학 온 이유는 오로지 내 꿈과 목표를 위해서다.”
그래서 물었다. 이홍석의 그 꿈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하고 싶다.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의 김하성 선배님처럼 한국의 유격수하면 이홍석이란 이름이 나오게끔 유격수로 더 많은 성장을 이루고 싶다.”
일부에서는 이홍석이 내년에 신인 드래프트 신청이 아닌 메이저리그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해외 진출을 도모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미국 도전과 관련해서 이홍석은 “아직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프로에서 뛸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력을 쌓는 게 우선”이라고 답한다.
이홍석은 덕수고에서 만난 엄준상과 함께 훈련하며 평소 궁금했던 유격수 수비와 타격 관련 질문을 많이 건넸다고 한다.
“준상 형이 많은 질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친절하게 다 설명해줬다. 준상 형이랑 같이 훈련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다. 수비의 움직임, 송구 능력 등이 다른 고교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준상 형을 데려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홍석은 덕수고의 많은 훈련량조차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자신의 행보와 관련해 ‘덕수고 정윤진 감독의 선수 빼가기’로 보도돼 굉장히 난감했다고 털어놓는다.
“솔직히 정윤진 감독님께 너무 죄송했다. 내가 먼저 덕수고로 전학 가고 싶어서 알아본 거고, 이후 내가 감독님께 전화를 드린 건데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기사가 나와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은 세광고 감독님, 코치님과도 연락하고 있고, 코치님들이 힘들 때 연락하라고 말씀해주셔서 편하게 연락 주고받고 있다. 어렵게 전학한 만큼 여기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노력해서 꼭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유격수로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