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고려인 사업가 '장 회장'과 수감 중인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 이들은 한때 식품사업을 함께한 평범한 동업자로 보였다. 이후 두 사람 관계는 틀어져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그런데 두 사람 관계를 되짚어가면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범죄 피의자 밀항 △자금세탁 △현직 경찰관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의혹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통화 녹취 및 휴대전화 메시지, 금융 관련 자료, 사정당국 작성 문건 등을 토대로 ‘장 회장-박 안톤’ 두 사람 주변에서 2020년부터 벌어진 사건과 의혹 전말을 9개월 동안 추적했다.
[연재 순서][일요신문] "모르겠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①] 총기와 밀항, 그리고 돈세탁
[마피아의 심부름꾼 ②] 2020년 고려인 난투극, 사라진 한 사람
[마피아의 심부름꾼 ③] "술 상자에 돈 넣어 경찰에 바쳤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④] 난투극 도망자 밀항, 경찰관은 알고 있었다…녹취 속 그날 대화
장 회장과 유착 의혹 등에 휩싸인 부산경찰청 소속 A 경감은 지난 8월 11일 "김해 난투극 피의자 1명이 밀출국한 게 맞는지"를 묻는 일요신문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밀출국한 인물은 밀레닌 알렉산드르, 별칭 '사샤'로 불린 남성이다. 그는 2020년 6월 20일 경남 김해 도심에서 벌어진 고려인 집단 난투극에 가담한 64명 가운데 유일하게 경찰에 붙잡히지 않고 도주했다.
A 경감은 '사샤 도주'와 관련해 "뜬소문이 많다"며 "(안톤이) 관련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면, 예전 수사받을 때 정확히 제보했으면 됐을 텐데, 왜 이제 와서 부산에 있는 나를 계속 끌어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고백 들은 경찰의 이상한 반응
이는 2024년 7월 16일 안톤과 A 경감 통화 녹취에서 확인됐다. 현직 경찰에게 자신의 밀항 조력 사실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장면뿐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A 경감의 반응도 눈에 띈다. A 경감은 사샤가 도망친 수법 정도에만 호기심을 뒀을 뿐이다. 주범 격 피의자인 사샤의 밀항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 제기나 진상 확인을 시도하지 않았다.
안톤 : 요트에 태우려고 보트를 샀던 거고. 그 사람이 보트를 타고 러시아까지 가야 했어. 요트가 러시아까지 갈 수가 없어서, 중간에 요트에서 그 사람을 하선시키면 거기서 누가 데려가기로 돼 있었거든.범죄 핵심 피의자인 사샤의 밀항 관련 대화는 1분도 채 이어지지 않았다.
A 경감 : 결국 그 사람이 여기서 어떻게 떠난 거야? 요트 타고? 보트 타고?
안톤 : 요트 타고 갔지. 내가 그 요트에 보트를 실어줬어.
A 경감 : 근데 그 요트는 사샤가 가지고 있는 거야?
안톤 :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대화는 곧바로 안톤이 별도로 접촉한 '경찰관 추정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안톤은 경기 안산에 사는 지인의 소개로 이들을 만났다고 털어놨다.
A 경감 : 무슨 경찰? 명함 줬어? 아니면 뭐 다른 거라도?안톤의 말을 들은 A 경감은 다른 사람 말고, 자신하고만 소통하자고 거듭 당부했다. 핵심 피의자의 밀항을 도왔다고 실토한 인물에게 자진 출석을 권유하거나, 관련 첩보를 관할 수사팀에 넘겨 정식 수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적어도 이 대화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안톤 : 걔네가 뭘 주겠냐. 내가 전에 말했던 안산에 사는 지인 있잖아.
A 경감 : 그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거야?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고?
안톤 : 경찰이 누구였는지는 나도 몰라.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젊고, 한 명은 나이 든 사람이었어.
A 경감 : 경찰이 맞긴 해?
안톤 : 모르지. 제복도 안 입고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안산에 사는 지인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해줬어.
A 경감 : 음….
안톤 : 난 아무 것도 몰라. 명함도 안 주더라고. 너도 명함 안 주잖아.
A 경감 : 지금은 아무도 만나지 마. 일단 우리끼리 얘기 좀 더 해보고 나서 '네 문제'를 창원에 정식으로 접수할지 결정하자고.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말고 만나지도 마. 우리 둘만 얘기해. 나중에 문제 생기면 골치 아파질 수 있어.대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네 문제'는 안톤이 장 회장의 범죄 혐의를 경남경찰청에 정식 제보할지 여부를 뜻한다. 현직 경찰관인 A 경감이 장 회장 관련 제보나 신고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만류하려 하는 듯한 모양새다.
안톤 : 에이, 소문 날 수가 없어. 이 일에 대해선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데.
안톤과 A 경감 두 사람은 서로의 근황을 격의 없이 묻는 것은 물론, 관내 불법 PC방 단속 정보와 주변 인물 동향까지 거리낌 없이 주고받았다. 공적인 단속 정보와 사적인 안부가 뒤엉킨 기이한 관계였다. 두 달 뒤인 2024년 9월 14일 나눈 대화에서도 이 같은 정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A 경감 : 요즘 일은 많지?
안톤 : 어, 일 엄청 많아. 너희 쪽은 어때?
A 경감 : 우린 그냥 조용해. 아참, 거기 PC방 하나 단속 떴었어? 돈 뺏겼대?
안톤 : 무슨 PC방?
A 경감 : 거 왜 있잖아, 게임하는 데.
안톤 : 글쎄, 내가 알기로는 지금 아무도 영업 안 할 텐데.
A 경감 : 근데 걔네는 어떻게 지낸대? 난 아무 말도 안 하긴 했는데, 저번에 걔네가 차 타고 가서 문을 열어봤더니 사람이 한 명도 없더래. 방금 막 문 닫은 것처럼. 근데 PC방 새로 생겼고 컴퓨터도 완전 새 거래. 신축처럼 해놨던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거지?
안톤 : 나도 모르지.

"(안톤이) 내게 먼저 접근해서 뭔가 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안 해줬다. 아마 나를 통해 장 회장과 뭔가 해보려고 했을 테지만, 경찰관으로서 어느 한쪽을 도울 수는 없었다."
A 경감은 일요신문에 이렇게도 말했다. 안톤이 자신에게 먼저 접근해 장 회장과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안톤과 A 경감의 2025년 2월 22일 메신저 대화를 보면 이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A 경감 : 먼저 변호사가 장 회장과 이야기할 거야. 장 회장이 동의하면 네 변호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줄게.안톤이 장 회장과 경영분쟁을 겪으며 소송에 나서려 하자, A 경감은 "수요일까지 기다려줄 수 있냐"며 이를 늦추려 했다. 안톤이 경찰관인 본인에게 먼저 접근해 도움을 구했지만, 자신은 응하지 않았다는 A 경감의 설명과 정반대다.
안톤 : 나는 (장 회장이) 내게 줘야 할 돈과 내 동의 없이 명의를 변경한 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거야. 변호사와 연락하지 않아도 돼. 나는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전부 법원을 통해 처리할 거야.
A 경감 : 수요일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안톤 : 아니, 난 기다리지 않을 거야.
A 경감 : 한 시간 뒤에 전화할게.
안톤 : 전화하지 마. 통화할 수 없어.
A 경감 : 나는 장 회장 측 변호사와 만났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보게 하자.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보자.
오히려 이 대화만 놓고 보면, A 경감이 먼저 나서 장 회장이 곤란해질 법한 상황을 막으려 한 정황으로 읽힌다. 특히 A 경감이 장 회장 측 변호사까지 직접 만나 조율에 나섰다는 대목은 경찰관의 통상적인 처신으로 보기 어렵다.

안톤 : 이건 내가 필요한 게 아니야."그래, 내가 필요한 거지" 등 발언은 A 경감이 이 문제를 단순한 제3자의 일로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A 경감 : 그래, 내가 필요한 거지. 그는 아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안톤 :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특히 장 회장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까지 우려하는 듯한 표현은 A 경감이 단순 중재자를 넘어, 장 회장 쪽 사정을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현재 안톤은 A 경감을 둘러싼 비위 의혹 전반에 대해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앞서 부산경찰청이 A 경감 비위 의혹을 입건 전 종결 했지만, 기존 조사 과정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을 충분히 진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다시 조사가 이뤄진다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A 경감은 사샤 밀항과 관련해 자신이 수사나 관련 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앞선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당시 담당을 했거나 수사를 했거나 관련 업무를 하지도 않았고 관할 지역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톤과 통화 녹취에 대해서는 "혐의 내용이 구체적이었다면 내가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적어도 보고서를 쓰든 뭐든 남겨뒀을 것"이라며 "왜 이제 와서 녹음을 공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현웅·김지영·남경식·최희주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