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흔을 감정했다는 기록조차 없다. 이 씨의 재심을 맡은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는 지난 4월 법원에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해 경찰청과 대구경찰청에 관련 기록을 요청했다.
경찰청에서 돌아온 답변은 ‘부존재’였다.
#경찰청 “감정 의뢰·실시 내역 부존재”

경찰은 사건 당일 현장 감식에 나섰다. 당시 작성된 실황조사서에는 피해자 혈흔과 함께 ‘피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적혀 있다.
실황조사서(1998. 1. 3.자)장판 위에 남아 있던 발자국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경찰은 일부 족흔에 자를 대 길이를 측정하고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가게 바닥과 방안 바닥에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약 7점과 방바닥에는 피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족흔적이 5점이 발견되고….”
(수사기록 58쪽)
문제는 그다음이다. 통상적으로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발견됐다면, 그 문양과 크기를 분석해 신발 종류와 치수를 확인하는 후속 감정이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수사기록에선 현장감식 이후 이 족흔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족흔을 감정기관에 의뢰했는지, 실제 감정이 이뤄졌는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도 찾을 수 없다.
재심청구서에서도 이 부분이 지적됐다. “당시 경찰은 해당 족흔을 토대로 문양을 통해 신발의 종류를, 길이를 통해 수치를 확인하고자 경찰청 과학수사계 등에 감정을 의뢰했을 것으로 보이나, 기록 어디에도 그 결과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당시 족흔 감정의 실제 실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4월 법원을 통해 경찰청과 대구경찰청에 대구남부경찰서·제50보병사단 헌병대가 의뢰한 지문 및 족흔 감정 내역과 결과를 송부해 달라고 신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부존재’였다. 경찰청은 지난 6월 ‘족적’에 대한 감정 의뢰 내역과 경찰청 감정 실시 내역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물론 사건 발생 후 28년이 지난 만큼 그사이 관련 기록이 소실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98년 1월 3일 사건 당일 작성된 실황조사서 이후론 경찰·군경찰·군검찰 수사기록 어디에서도 족흔의 감정 의뢰나 실시 여부, 후속 처리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 족흔의 감정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이 씨의 번복된 자백이나 목격자들의 엇갈린 진술과 달리, 범인을 객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핵심 물증’이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범행 전 곤색 체육복과 흰색 운동화를 구입해 갈아 신은 뒤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반면 피해자의 아들은 “범인이 검정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다른 목격자들의 진술을 살펴봐도 범인이 흰색 운동화를 신었다는 증언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경찰도 이 씨가 말한 운동화를 끝내 확보하지 못했다.
박 변호사는 “현장에 족흔이 5점이나 남아 있었고 일부는 크기까지 측정했다. 이를 제대로 감정했다면 이 씨의 자백과 피해자 아들의 진술 가운데 어느 쪽이 현장 흔적과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엔 금품 물색 흔적 없어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는 금품을 찾기 위해 가게나 방 안을 뒤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실황조사서(1998. 1. 3.자)같은 내용은 군경찰 수사기록에서도 반복된다. 1998년 1월 12일 검증조서에는 경찰의 1차 실황조사 때뿐만 아니라 군경찰의 현장검증에서도 “금품 물색 흔적은 볼 수 없었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불과 베개가 널려져 있는 것 외에 피의자가 동방안을 뒤진 흔적은 발견할 수 없으며….”
(수사기록 59쪽)
새로 확보된 현장 영상에서도 소형 금고는 비디오 진열대 안쪽에 닫힌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이 확인된다. 경찰이 금고에 남은 지문을 채취했지만 현출된 지문 2점은 모두 피해자 남편의 것이었다. 이 씨와 일치하는 지문은 없었다.
#“피 많이 묻었다”…혈흔 검출 안돼
금고에서 이 씨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면 혈흔은 어떨까. 범인은 피해자를 흉기로 13차례나 찔렀다. 이 과정에서 범인의 몸이나 옷에 다량의 피가 튀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 씨도 자백 과정에서 피해자를 찌른 뒤 “오른손과 칼에 피가 많이 묻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범행 약 18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전, 대구역 화장실에서 변기에 고인 물로 손과 칼을 씻었다고 했다.
경찰은 1998년 1월 6일 이 씨의 양손 손톱 10개와 이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정색 구두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혈흔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LMG(Leucomalachite Green) 검사와 루미놀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이 씨의 손톱과 구두 어느 곳에서도 혈흔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 같은 감정 결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이 씨의 자백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이 씨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고, 범행 당시 착용했다고 진술한 곤색 체육복과 흰색 운동화, 범행에 사용했다는 칼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씨의 자백과 피해자 아들 등 관련자들 진술, 현장검증 결과 등을 종합해 강도살인을 유죄로 판단했다.
그런데 2025년 임시근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가 진행한 혈흔 재현실험에서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실험 참가자 6명은 한 손을 돼지 피에 담갔다가 약 18시간 동안 자연 건조한 뒤, 고인 물로 씻어내는 방식으로 실험에 참여했다. 이 씨의 자백처럼 한 차례만 세척한 뒤 추가로 손을 씻지 않은 실험군에서는 LMG와 루미놀 검사 모두 혈흔 반응이 나타났다. 물이나 비누로 여러 차례 추가 세척을 진행한 다른 실험군에서도 일부 루미놀 반응이 확인됐다.

이와 관련, 박 변호사는 “혈흔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씨가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이 씨의 손과 구두 모두에서 혈흔이 나오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 자백이 실제 범행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객관적 물증을 바탕으로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유죄를 뒷받침할 물증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객관적인 물증으로 자백을 검증했는지를 봐야 한다”며 “실제 감정 결과가 자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자백과 목격자 진술을 가릴 수 있었던 현장 족흔은 제대로 검증됐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접촉 없이는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범죄는 현장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현장 수사관들은 범인과 피해자, 범인과 물건, 물건과 물건 간의 접촉으로 생긴 미세한 흔적들을 쫓으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간다. 이를 가리켜 ‘범죄의 재구성’이라 부른다.
28년 전, 대구 장미비디오 살인사건을 맡았던 수사기관은 과연 현장이 말해주는 그 흔적들을 제대로 쫓았을까.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