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고려인 사업가 '장 회장'과 수감 중인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 이들은 한때 식품사업을 함께한 평범한 동업자로 보였다. 이후 두 사람 관계는 틀어져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그런데 두 사람 관계를 되짚어가면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범죄 피의자 밀항 △자금세탁 △현직 경찰관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의혹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통화 녹취 및 휴대전화 메시지, 금융 관련 자료, 사정당국 작성 문건 등을 토대로 ‘장 회장-박 안톤’ 두 사람 주변에서 2020년부터 벌어진 사건과 의혹 전말을 서울과 부산, 김해 등지에서 9개월 동안 추적했다.
[연재 순서][일요신문] 2020년 7월 초. 박 안톤(가명)은 경남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며칠 전 경남 김해에서 벌어진 고려인 64명이 뒤엉킨 집단 난투극 이후, '김해 남부파 두목' 사샤가 경찰 추적을 피해 도주한 뒤였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①] 총기와 밀항, 그리고 돈세탁
[마피아의 심부름꾼 ②] 2020년 고려인 난투극, 사라진 한 사람
[마피아의 심부름꾼 ③] "술 상자에 돈 넣어 경찰에 바쳤다"
경찰은 안톤에게 물었다. 왜 안톤 명의의 승용차가 사샤 등 도주자들에게 넘어갔는지, 왜 안톤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그들이 사용했는지 추궁했다. 안톤은 굳게 입을 닫았다. 자신이 장 회장에게 차량 열쇠와 유심카드를 넘겼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조사가 끝난 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부산경찰청 소속 A 경감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며칠 뒤 안톤은 다시 경찰에 불려갔다. 경찰은 사샤의 행방을 물으며 "범인을 숨기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안톤은 이날 역시 침묵을 지켰다.
경찰서를 나온 뒤 A 경감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제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
그로부터 얼마 뒤, 장 회장이 안톤을 찾았다. 또 심부름이었다. 이번에는 총도, 차량도 아니었다.
'돈'이었다.

"회계담당자인 최 과장한테 500 받아서 A 경감에게 전해."
안톤은 장 회장 지시대로 최 과장에게 갔다. 금고가 열렸다. 최 과장은 하나은행 봉투에 5만 원권 100장을 넣어 안톤에게 건넸다. 500만 원이었다.
안톤은 오후 6시쯤 A 경감이 근무하던 부산경찰청 인근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였던 커피숍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안톤은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잠시 뒤 A 경감이 나타났다. 안톤은 곧장 A 경감에게 5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고, A 경감은 봉투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고 증언한다.
두 사람은 40~50m 떨어진 다른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안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사샤 문제였다. 자신의 차와 휴대전화 번호가 사샤 일행에게 넘어간 사실을 경찰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톤은 A 경감에게 정말 문제가 없는지 물었다. A 경감은 다시 안심시켰다고 한다.
"다 잘 됐으니 신경 쓰지 마."

돈 심부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약 3개월 뒤인 2020년 10월 5일쯤. 이번 장소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장 회장의 아파트였다.
장 회장은 집 안 금고를 열었다. 미화 100달러짜리 지폐 100장, 1만 달러(약 1300만 원)가 나왔다.
장 회장은 안톤이 준비한 흰 봉투에 달러를 넣었다.
두 사람은 2020년 당시 장 회장 조카가 대표였던 R 사(2022년부터 장 회장이 대표이사) 법인차량인 제네시스를 타고 부산의 한 고층건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장 회장은 안톤에게 A 경감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러시아 수사당국이 '킹크랩 왕'으로 불린 올레크 칸에 대해 수배에 나설 것이라는 취지의 정보가 러시아에서 들어왔다는 얘기였다.
안톤은 당시 장 회장이 이렇게 불평했다고 기억한다.
"도움은 올레크 칸이 받고 돈은 내가 줘야 하니…."
약속장소 주차장에는 A 경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 회장과 A 경감, 안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한 남성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올레크 칸의 장남 알렉산드르 칸이었다. '올레크 칸'. 러시아 마피아계에서 '킹크랩 왕'으로 불리는 남성이다. 러시아 사법당국에서 '살인교사'와 '밀수' 등 혐의로 기소됐다가, 해외로 도피해 국제수배 대상에 오른 인물이다.
안톤은 장 회장과 A 경감, 알렉산드르 칸이 건물 안 소파에 앉아 약 2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기억한다. 자신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칸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장 회장과 A 경감, 안톤은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장 회장이 안톤에게 말했다.
"A 경감에게 달러를 전해줘."
안톤은 자신이 들고 있던 1만 달러가 든 흰 봉투를 A 경감에게 건넸다.

이상한 장면은 그로부터 열흘쯤 뒤 다시 이어졌다.
2020년 10월 15일께 안톤과 장 회장은 김해의 한 경찰서로 불려갔다. 김해 집단 난투극과 관련한 조사였다. 경찰은 장 회장이 아닌 올레크 칸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집단폭행사건의 배후가 올레크 칸이냐?"
“올레크 칸이 누구냐?”
"올레크 칸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
안톤은 올레크 칸이 가끔 R 사 공장에 들러 사우나를 하곤 했으며, 킹크랩 사업가로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그리고 다시 엿새가 지났다. 2020년 10월 21일. 경찰의 날이었다. 안톤은 이날도 장 회장의 지시를 받았다.
"A 경감에게 300만 원을 가져다줘. 술도 같이 사서 가져가."
안톤은 회사 회계담당자에게서 현금 300만 원을 받았다. 돈은 흰 봉투에 넣었다. 이어 R 사의 법인카드로 위스키와 보드카 등 약 70만 원어치의 술을 샀다.
오후 무렵 안톤은 부산경찰청 인근 사설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A 경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톤은 지난 2월 초 일요신문 취재진과 함께 해당 사설 주차장에 갔다. 그곳에서 했던 안톤의 증언에 따르면 A 경감은 자신의 흰색 SUV 차량 뒤쪽으로 갔다. 트렁크 문이 열렸다. 안톤은 그 안에 위스키와 보드카가 든 상자를 실었다.
이어 주머니에서 300만 원이 든 봉투를 꺼내 A 경감에게 건네려 했다. 그러자 A 경감은 돈을 직접 받지 않고 이런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냥 박스(위스키와 보드카 담긴 상자)에 넣어둬."
안톤은 현금 봉투를 술 상자 안에 넣었다. 두 사람은 악수했다. 안톤은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안톤 주장대로라면 2020년 7월부터 10월 사이 A 경감에게 전달된 돈은 세 차례다.
500만 원, 1만 달러, 300만 원과 약 70만 원어치 주류.

이 돈 이야기가 수면 위로 나온 것은 약 5년 뒤였다.
2025년 11월 9일 안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내는 형식의 '공직자 비리 제보서'를 작성해 국민신문고에 접수했다.
안톤은 제보서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제가 한낱 고려인 동포로서 엄청난 용기를 내 대한민국 대통령님께 글을 올립니다."
그는 장 회장 측의 보복이 두려워 제보를 망설였다고 했다. 제보 내용은 A 경감에게 건넸다는 돈만이 아니었다.
안톤은 자신이 장 회장의 지시를 받아 러시아제 권총 두 자루와 탄약을 보관·전달했고, 범죄 피의자의 도피와 밀항에도 관여했다고 자백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행위까지 함께 적은 셈이다.
안톤은 이후 부산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으며 A 경감에게 돈을 세 차례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는 안톤이 기대한 방향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말을 못하는 안톤에게 경찰이 배치한 러시아어 조사 통역관이 다름 아닌 장 회장의 다른 사건 통역인이었다. 안톤은 통역관 교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제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차례 이상 조사를 받은 뒤에야 교체됐다.
안톤은 위스키 등을 살 때 썼던 신용카드의 결제 내역 등을 경찰에 제공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용카드 결제내역과 별개로 위스키 등 제품 구매 영수증을 요구했다. 안톤은 카드사와 판매처 등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5년 전 영수증을 찾기란 무리였다.
결국 부산청은 2026년 4월 이 사안을 무혐의로 입건 전 종결했다. 통지서에 적힌 이유는 '증거불충분이 명백하다' 한 줄이 전부였다.

A 경감은 일요신문 취재진에게 △2020년 무렵 장 회장과 교류한 사실 △이전부터 장 회장 등 무리와 유착 의심을 받아온 사실 △러시아 등 구소련권 지인들로부터 위스키 등을 선물 받은 사실 등은 인정했다.
그는 "제가 (장 회장 뒤를 봐준다는) 오해는 여러 차례 받았다"면서도 "제가 예전에 러시아 쪽을 담당했고, 친한 사할린 쪽 사람들이랑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공도 차고 그래서 오해를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스키 등은 러시아 친구들이 자기 나라 갔다 오면 작은 거 한 병 들고 와서 선물 삼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A 경감은 안톤의 주장을 놓고는 "지어낸 이야기다. 내가 굳이 뭐 하러 장 회장 쪽과 직접적인 거래를 했겠느냐"라며 "(안톤이) 내가 장 회장과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서 인간관계 형성 배경에 대해 잘 모를 거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 회장이 친한 척을 하니까 나를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으로 아는 것 같은데, 나는 누구 한쪽을 도와줄 수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다"며 "(안톤이) 나를 물고 늘어지면 뭔가 풀리는 걸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 경감은 '장 회장을 건실한 사업가로 볼 수 있는지' 물음에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주현웅·김지영·남경식·최희주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