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26일 국회는 ‘형법 제98조의2 외국 등을 위한 간첩 조항’을 신설했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외국 등의 지령, 사주, 그 밖의 의사 연락 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는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에 대해 미수범뿐 아니라 예비·음모·선동·선전 단계부터 처벌할 수 있도록 적용 대상을 넓히기도 했다.
#진통과 계엄 거쳐 시행 앞둔 간첩죄 개정

2024년 11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합의 아래 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가 안보와 첨단 산업기술 보호라는 명분에 따라 여야가 모처럼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민주당은 간첩죄 개정안과 함께 민주당 단독 추진안인 ‘법 왜곡죄’와 ‘표적수사 금지법’을 패키지로 묶으려고 시도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반발했다.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맡고 있던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민주당이 국가 안보를 방치하고 있다는 취지로 맹공을 펼치기도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형법 개정안을 야당 공격용 정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정국이 요동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8월 24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윤성식) 심리로 열린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가 형법 개정을 막고, 안보 예산 가운데 감시정찰 자산이나 유도무기 관련 예산만 골라 삭감했다”면서 “이거는 대한민국 국정을 아주 마비시키고자 하는 체제 전복 세력들이 우리 국회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것(생각)이 강하게 있었다”고 했다. 간첩죄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윤 전 대통령 계엄선포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였다.
간첩죄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2025년 12월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2026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3월 12일 공포됐다. 2026년 9월 1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간첩죄 개정을 부른 일련의 사건들

한 군무원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정보요원들 신상정보와 군사기밀을 중국인에게 금전을 받고 수년간 유출한 사례가 적발됐다. 정보를 넘긴 대상이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이 군무원에겐 간첩죄가 적용될 수 없었다.
2025년엔 삼성전자 전직 임원 및 연구원들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18나노 D램 공정기술,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 등을 빼돌려 중국 정부 지원을 받는 반도체 기업에 유출한 사건 재판이 법원에서 열렸다.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의 경제 가치를 지닌 국가 핵심 기술이 유출됐음에도, 간첩 혐의는 빠졌다.
중국인 유학생이나 관광객들이 국정원이나 군 시설, 국내 항구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 등을 무단촬영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많았음에도 이들은 간첩 혐의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혹은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을 뿐이다.
반대로 중국에선 한국인이 간첩죄로 구속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 국가 간 사법 시스템 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중국,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은 자국 국익을 침해하는 스파이 행위 전체를 강력히 처벌하는 간첩 처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북한을 특정한 1953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 간첩죄 혐의 처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을 이룬 배경이다.
중국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A 씨는 “중국의 간첩죄 수사는 냄새만 나도 구속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외국인의 경우 귀국을 하면 수사가 진행될 수 없으니 신변을 구속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강력한 수사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그는 “형법이 개정되더라도, 수사기관이 증거를 찾는 사이에 외국국적 혐의자가 귀국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 간첩죄 개정안은 간첩 혐의에 대한 범위를 외국으로만 확장했을 뿐, 그 외에 간첩을 실질적으로 잡아서 처벌할 수 있는 실효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 개정과 수사 인프라는 다른 문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지금의 간첩 수사 시스템은 법 개정 이전 적국 간첩을 잡는 데에도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면서 “과거엔 경찰에서 ‘에이스’로 분류되는 자원들이 안보수사과에 위치해 있었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수사에 경찰이 힘을 실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검찰 수사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모든 수사권을 받아왔다”며 “경찰 내부에선 형소법 개정에 따른 수사권을 인계하는 데에도 벅찬 상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간첩 행위 목격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거나, 간첩이 직접 자수를 하지 않는 이상 경찰이 능동적으로 외국 간첩을 직접 잡아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면서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할 당시엔 10~20년가량 축적된 자료를 가지고 간첩 수사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찰은 인사이동이 잦고 수사자료에 대한 전후임자 간 인수인계가 국정원만큼 정밀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고 했다.
그는 “법이 개정됐다 하더라도, 경찰 수사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이제 법 개정이 됐으니, 간첩을 모니터링하면서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고 했다.
간첩 신고를 진행해 본 경험자 B 씨는 “과거에는 간첩 신고를 할 경우 국정원이나 방첩사에서 수사를 컨트롤했다”면서 “그러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됐고, 방첩사는 해체 이전부터 민간인에 대한 간첩 수사 분야에 있어선 경찰과 협조를 해야 했다”고 했다.
B 씨는 “몇 년 전에 진행한 간첩 신고와 관련해서도 방첩사가 경찰에 해당 내용을 넘겼지만, 경찰이 해당 사건을 종결했는지 수사 중인지에 대한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법 개정 전부터도 경찰의 간첩 수사 대응 여력은 과포화 상태”라고 지적했다.
B 씨는 “현재 경찰 시스템상 간첩을 잡아야 하는 부서인 안보수사과는 전국에 걸쳐 분포한 탈북민을 모니터링하기도 바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법이 개정됐다 하더라도 경찰이 외국 간첩을 잡는 데 쏟을 여력이 부족한 상황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간첩죄 개정안 처벌 수위가 다른 나라 법과 상응하는 수준인지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 간첩법의 경우 상당히 무거운 형량으로 간첩죄를 다룬다”면서 “미국도 연방법 등에 의거해 간첩 혐의 경중에 따라 상당히 무거운 형량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간첩 혐의라는 것이 1인칭으로 보면 ‘첩보 활동’이고, 2인칭으로 보면 ‘간첩’이 되는 것인데, 국가 간 간첩 혐의에 대한 형량에 괴리가 생길 경우엔 현지 양형 기준에 따라 첩보 활동의 범위가 결정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중국 소식통은 “중국 현지 감옥엔 ‘대만 간첩’들이 상당수 수용돼 있는데, 이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간첩법 위반 혐의로 10년 징역이 나올 경우엔 내부적으로도 ‘가벼운 형을 받았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소식통은 “한국서 ‘외국 간첩’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부각시키게 된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 주요 국가는 중국”이라면서 “한국과 중국 사이 간첩 혐의에 대한 ‘상호 대응력’이 법적으로 확보됐는지엔 의구심이 따라 붙는다”고 전했다.
그는 “향후 양안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은 ‘국제 첩보전’의 장이 될 수 있다”면서 “중국이나 대만 등에서 한국 내 안보 상황과 관련한 첩보 수집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형국에 간첩죄 개정안의 실효성은 작지 않은 나비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