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대법관 후보자를 대법원장에 추천하면 관례상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에 협의를 통해 의사가 일치하는 후보를 먼저 추리고,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대면으로 제청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의도 제대로 없었고 제청 형식도 서면으로 통보했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로부터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군을 추천 받아놓고도, 후보 임명 제청을 하지 않으면서 대법관 공석 사태를 반년 가까이 방치했다. 이를 두고 대법원과 청와대 사이에 대법관 후보에 대한 의사 불일치 때문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오는 9월 이흥구 대법관까지 임기만료 퇴임을 앞두자 더 이상 임명 제청을 미룰 수 없어 1+1 방식의 ‘끼워넣기’를 했다는 분석이다. 김성수 판사 관련해서는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 협의가 있었지만 손봉기 판사는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이 알려지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김민석 신임 당대표는 8월 19일 이번 사태를 ‘사법농단’이라고 규정하고 조 대법원장을 ‘조희대 씨’라고 호칭하며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조희대 탄핵’ 주장까지 나왔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8월 23일 “조희대 대법원은 이미 정치 플레이어가 됐다”며 “조 대법원장은 탄핵당할 충분한 자격과 자질이 있다”고 했다. 앞서 조 대법원장 사퇴·탄핵 목소리는 ‘이 대통령 파기환송 판결 대선 개입’ ‘지귀연 재판부 교체 요구 거부’ 등 논란 과정에서 수차례 제기돼왔다.
청와대 역시 조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에 대해 “협의를 건너뛴 것이자,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 않은 일방 통보절차”라며 “전례가 없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8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에 대법원장과 대통령 간의 만남을 요구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서면 제청 방식은 민정수석과 협의했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 측은 “대법관 제청의 일반적인 사항에 논의한 사실은 있지만, 서면 제청 여부 등 구체적인 제청 방식에 대해선 협의 자체가 없었다”며 “‘협의가 되면 만날 수 있느냐’는 대법원 측 문의에 ‘협의되면 그때 논의하자’고 일반적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진실 공방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이러는 사이 여권에선 조 대법원장이 제청을 철회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김승원 의원은 8월 28일 “협의 없이 제청한 현 후보자에 대해 자진철회하고, 1차로 꾸려진 남은 4명의 후보자 중 대통령과 협의해 재제청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제청 이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은 8월 24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제34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 축사에서 “사법제도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법의 지배’라는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고 말했다. 헌법이 정한 ‘제청권’ 활용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8월 28일 “그동안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를 거쳐 제청에 이르러 온 것은 각 기관 간의 권한을 상호 존중하라는 헌법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은 그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권한이 아니라, 헌법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실질적 임명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하는 권한”라며 “재제청 요청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제한하라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예정한 상호 견제의 한 방식으로서 제청이 각 기관에 대한 존중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앞서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기존 대법관 후보 4명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후보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을 타진한 사실이 공개된 점도 재제청에 영향을 줬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미 정당하게 추천된 후보자들을 제청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후보자 개인에게 타진한 것은 인사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라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 탄핵 카드를 꺼내며 압박하고 있지만 회의적 시선이 우세하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이나, 내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조 대법원장이 위헌 요소가 있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국회 현재 의석 구성으로 보면 조 대법원장을 탄핵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헌법재판소로 갔을 때 조 대법원장이 헌법과 법률을 명백하게 위반했느냐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기각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 조 대법원장에 정당성과 명분만 주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대법원장 탄핵은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주요인물들의 대법원 선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대법원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명태균 여론조사 수수·통일교 금품수수 혐의 관련 김건희 씨 상고심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별도의 전원합의기일을 잡지 않아 ‘재판지연’ 논란이 일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을 탄핵시키고, 대법관 후보자 임명이 늦어지면 김건희 씨 등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더 미뤄질 수 있다. 확정판결이 나지 않아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될 가능성도 있다. 김건희 씨 경우 구속기간 만료는 10월 말이다.
김승원 의원은 8월 2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조 대법원장의 ‘패싱 제청’은 김건희 재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며 “대법관 임명이 지연될수록 전합 심리가 장기화돼 김건희 석방 가능성은 높아진다. 손 후보가 임명돼 ‘윤석열·조희대 체제’가 공고해지면 김건희 무죄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부정평가 주된 요인으로는 부동산 정책이 27%로 가장 높았다. 민주당이 추진한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에 따른 ‘검찰 권한 축소’가 7%로 뒤를 이었다. 일단락된 줄 알았던 검찰개혁 문제가 ‘제주 장미란 씨 실종 사건’ 경찰 허위종결 논란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사법개혁까지 전선을 넓힐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부정평가 요인 중 하나로 ‘사법부 흔들기’도 2% 응답이 나왔다.
민주당 내부에선 탄핵 등 무리수를 던질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사법개혁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을 굳이 탄핵할 이유는 없다. 김민석 대표도 사법부 판사들이 법관회의 등을 통해 조 대법원장 자진 사퇴 압박 행동해달라고 요구하지, 탄핵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 지도부가 우선 챙겨야 하는 것은 민생안정”이라며 “검찰개혁 때는 여권 강경파가 다른 이슈보다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민들의 반감을 산 면이 있다. 사법개혁은 이미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약화 및 법원행정처 폐지 등 법안이 나와 있다. 민생을 챙기면서, 국회에서 이런 사법개혁 법안들을 입법을 통해 단계를 밟아 가면 된다. 오히려 이번 조희대 사태를 통해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난해부터 조 대법원장을 향해 수차례 청문회와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조 대법원장 측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의견서만 내고 불출석하거나,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민주당 한 인사는 “그동안 국회가 대법원 국감을 할 때 대법원장이 인사말 후 이석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사법부 존중’ 차원에서 관례였다”며 “조희대 대법원장 측은 ‘서면 제청’이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 민주당도 ‘법대로’ 나갈 수밖에 없다. 국회법이 정한 대로 증인출석 요구의 건이 의결됐으니, 조 대법원장은 31일 법사위 현안질의에 출석해 증인으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