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은 형소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돌입했지만, 24시간이 지나고 범여당 주도로 토론이 강제 종결돼 법안 의결을 막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이 시작되자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했다.
민주당이 주도한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검사의 직접 수사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도 폐지된다.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는 있다. 이 경우 경찰은 최장 2개월(수사기관 연장 포함) 보완수사를 마치고 그 결과를 검사에 송부해야 한다. 수사과정의 모든 자료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이에 필요한 사건의 기록에 대한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차례 ‘국민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예외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여 왔다. 최근에는 국민 여론도 ‘예외적으로 최소한 허용해야 한다’ ‘관련해 조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흐름을 보였다. 경찰의 조직적 수사 은폐 의혹이 여실히 드러난 ‘장윤기 사건’도 우려감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정청래 전 대표와 범여권 강경파에서는 ‘완전 폐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8·17 전당대회 국면에 접어들면서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보완수사권 문제를 더 부각시켰다. 정 전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수차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메시지를 냈다. 유시민 작가까지 나서 “이 대통령이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며 검찰개혁 의지를 비판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국회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권한을 줬으니 책임도 질 것”이라고 공을 국회에 넘겼다.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도 “보완수사권 폐지를 정부 기본 입장으로 최종 정리했다”면서도 국회에 형소법 개정 정부안을 따로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여권 내에서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다. 민주당이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추인하자, 검찰을 관할하는 부처의 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참모를 통해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알려진 것. 정 장관은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이어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사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재확인했다. 다만 청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며 사퇴론에 선을 그었다.

현행 형소법은 공소기각 판결 사유로 △공소가 취소됐을 때 △피고인에 대해 재판권이 없을 때 △동일한 사건에 대해 이미 확정판결이 있을 때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일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는 △중대한 위법수사를 근거로 해 공소가 제기된 경우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해 공소가 제기된 경우가 새롭게 추가됐다. 이 내용은 기존에 논의가 없다가 지난 28일 밤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들이 추가해 통과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보수진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셀프 면죄부’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기도박의 밑장빼기 같은 파렴치한 속임수를 자행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외친 ‘일하는 국회’가 고작 이 대통령의 재판 삭제를 위해 도피로를 깔아주는 일을 하는 국회란 말이냐”고 꼬집었다.
주진우 의원도 ‘민주당의 형소법 개정안은 이 대통령 공소취소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9일 본인의 SNS를 통해 “민주당이 이 대통령 사건에 붙여 온 ‘조작수사·조작기소’ 주장을 그대로 법조문에 옮긴 것이다. 무엇이 ‘중대한’ 위법이고, 어느 정도가 ‘현저한’ 일탈인지 기준도 없다”며 “공소취소 특검이 어려워진다 싶으니까, 이번에는 법원이 공소를 기각하도록 우회로를 만들었다. 입법권으로 대통령 개인의 형사재판을 지우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승원 의원은 30일 법안 제안설명에서 “대법원이 수십 년간 확립한 법리를 반영한 것으로, 중대한 위법수사와 공소권 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인 안전장치”라며 “특정인을 위한 졸속 개정이라는 악의적 프레임에 의한 정치적 공세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통령의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관련해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일부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파기환송했다. 이 대통령 관련 재판은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중단된 상태다.
민주당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이 2025년 6·3 대선 직전 초고속 결론을 내리며 대선에 개입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이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한 만큼 이 대통령 임기 이후 재판이 재개되면 일부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벌금 100만 원 이상 형량이 확정되면 민주당도 선거보전비 434억 원을 반환해야 한다. 이에 형소법 개정으로 위법수사와 소추재량권 일탈을 근거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아내려고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형소법 개정에는 보완수사권 외에도 준비하고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가 전부인 것처럼 거기에 대해서만 논쟁을 했다”며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 사유 추가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공론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법안 성안 막판에 몰래 끼워 넣듯이 추가했다. 야당의 공격에 빌미를 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 논란까지 불거졌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지난 7월 28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개헌 시 이 대통령의 임기 연장 문제’에 대해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 문제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 선택”이라며 “정치적 당사자들이 합의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국회의장실과 청와대가 뒤늦게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은 불가능’이라고 입장을 냈지만, 야권에서는 즉각 “친명 국회의장이 이재명 대통령 연임을 위해 총대를 멨다”고 공세를 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야당은 앞서 공소취소 특검을 고리로 ‘이재명 독재’ 프레임을 넓혀나갔다. 개헌을 대통령 연임으로, 김용범 정책실장의 ‘AI 국민배당금’은 공산당 논리로 만들었다. 여기에 지방선거 과정에 선거관리위원회 부실선거 관리 문제가 터졌고, 형소법 개정안 ‘법원 공소기각 판결 사유’ 추가, 조정식 의장 ‘현역 대통령 연임 개헌’ 논란까지 이어졌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정국 분위기 반전을 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청와대는 형소법 개정에 대해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이번 개정안이 현장에서 차질 없이 시행되고, 국민께서 삶 속에서 그 변화를 체감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