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팬덤의 신뢰를 잃고 팀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는 사정만으로 수년간 유지해 온 전속계약까지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룹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엑디즈) 전 리더이자 드러머 건일과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계약 종료를 둘러싼 공방은 바로 이 지점을 보여준다. 양측이 해지 경위와 당사자 동의 여부를 놓고 엇갈린 주장을 내놓으면서 소속사가 '이미지 리스크'를 이유로 계약 종료를 결정할 수 있는 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엑디즈의 팬덤은 물론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공분이 일자 소속사 JYP엔터는 신속한 대처에 나섰다. 논란 이튿날인 8월 13일 JYP엔터는 공식입장을 내고 "최근 멤버 건일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아티스트와 다각도로 충분한 논의를 거친 결과, 더 이상 팀 활동을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상호 합의 하에 전속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건일 역시 같은 날 팬 소통 플랫폼 버블을 통해 문제가 된 발언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했다. 다만 일부 온라인 게시물과 사생활 침해로 심리적 부담을 겪던 상황에서 특정 '악성 팬'을 두고 감정을 표출한 것이었다며 전체 팬덤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입장문에서 건일은 "저는 정말 끝까지 엑디즈로 남고 싶었고, 여섯 명의 엑디즈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회사의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당시 계약 해지가 '상호 합의'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비추기도 했다. 입장 발표 일주일 뒤인 8월 20일에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그룹에서 자진 탈퇴한 사실이 없으며, 전속계약 해지에도 동의한 바 없다"고 밝히며 계약 해지 과정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문제는 이런 성격의 논란으로 수년간 유지해 온 전속계약을 즉시 종료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건일과 JYP엔터의 의견 차도 '팬덤이 등을 돌린 아이돌을 소속사가 어디까지 정리할 수 있는가'라는 산업적 판단과 '그 사정이 실제 전속계약을 끝낼 정도로 계약 위반에 해당하는가'라는 법적 판단 사이의 간극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사례가 더보이즈 전 멤버 주학년과 소속사 원헌드레드 레이블 간 전속계약 해지 분쟁이다. 주학년은 2025년 일본에서 AV(성인 비디오) 배우 출신 인플루언서 아스카 키라라와 사적으로 만났다는 논란이 불거진 뒤 팀에서 탈퇴하고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 받았다. 원헌드레드는 해당 행위가 전속계약상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주학년이 계약서에 명시된 해지 사유가 아니라며 맞서자 원헌드레드는 전속계약금 15억 원을 포함해 위약벌과 예상 수익 등을 합산한 약 80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주학년이 아스카 키라라와 만난 것은 사생활의 영역으로, 팬덤이 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로서는 부적절한 처신일 수는 있어도 계약 해지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품위손상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전속계약상 해지 사유인 '품위손상'은 추상적인 개념인 데다 당사자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성매매 의혹 역시 경찰 수사 단계에서 불송치 결정이 내려진 점을 고려해 계약 해지를 정당화할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한 엔터사 관계자는 "일반 대중이 보기에도 납득 가능한 사회적·법적 논란과 달리 팬들의 실망과 분노를 원인으로 한 계약 해지는 소속사와 재판부 간 시각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이돌 산업 측면에서는 신속한 회복이 힘들 만큼 주 소비자층과의 신뢰가 훼손된 것이지만 법원이 보기엔 실제 계약 당사자 간 신뢰관계 파탄이 아니고, 논란 멤버가 모든 손해를 떠안을 만한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아이돌은 활동 기간 내내 팬들의 사랑과 믿음을 기반으로 소비를 이끌어내는 직업인 만큼 팬덤이 등을 돌리면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소속사로서는 팀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빠른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이런 산업적 판단과 법적 해지 요건 사이 간극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는 전속계약 단계에서 팬덤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까지 구체적인 해지 사유로 명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