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세련 디렉터가 문제 삼은 것은 민희진 전 대표 측이 2024년부터 내놓은 일련의 ‘아일릿 카피’ 관련 주장이다. 당시 어도어는 공식입장에서 “아일릿은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사진, 영상, 행사 출연 등 연예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허 디렉터는 이 같은 공식입장과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에 이어 하이브와 민 전 대표 사이 주주간계약 관련 소송에서 나온 대리인의 구두변론, 언론자문회사가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등을 문제 삼았다. 허위사실 적시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돼 손해를 입었다는 취지였다.
민희진 전 대표 측은 애초 해당 발언에서 허세련 디렉터 개인을 지목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카피’라는 표현도 비판적인 의견 표명이며 일부 사실 적시가 포함됐다고 보더라도 민 전 대표의 발언 전부터 대중과 언론에서 아일릿과 뉴진스의 유사성 의혹이 제기됐다는 논리를 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우선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인 ‘특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희진 전 대표가 표절과 카피 등을 언급하면서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 빌리프랩은 거론했지만 허세련 디렉터 개인을 별도로 지목하지 않았다고 봤다. 허 디렉터가 기자회견 뒤 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본인이 SNS에 올린 손가락 욕설 이미지 등이 알려진 점이 공격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사상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누구의 명예가 훼손됐는지가 특정돼야 한다. 대법원도 피해자가 특정돼야 명예훼손에 따른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허세련 디렉터 사건은 이 요건이 인정되지 않아 청구가 기각됐다. 이번 판결은 아일릿이 실제로 뉴진스를 카피했는지 여부를 판단한 결과는 아니다. 두 그룹의 유사성이나 ‘카피’ 발언의 허위성 여부까지 본격적인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은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에서 진행 중인 빌리프랩 소송에 쏠리고 있다. 빌리프랩은 민희진 전 대표가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펴 회사와 소속 아티스트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취지로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허세련 디렉터 사건과 달리 민 전 대표가 공식입장과 기자회견에서 빌리프랩을 직접 거론한 만큼 ‘특정성’보다는 발언의 성격과 허위성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실제 양측도 재판에서 ‘카피’라는 표현이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하는지, 비판적 의견 표명에 그치는지를 놓고 맞서고 있다.
대법원은 객관적으로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말한 경우 ‘사실 적시’로 볼 수 있지만 순수한 의견 표명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빌리프랩 소송에서 ‘카피’ 주장이 사실 적시로 판단되면 다음에는 민 전 대표의 주장이 허위인지가 쟁점이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일릿과 뉴진스의 유사성도 살펴볼 전망이다. 민희진 전 대표가 지적한 안무와 콘셉트 등의 유사성이 실제 존재했다면 ‘근거 없는 카피 주장’이라는 빌리프랩 측 주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빌리프랩은 지난 7월 두 그룹의 차이를 보여주겠다며 동영상 18개를 제출했고 재판부는 양측이 낸 영상과 서면을 직접 검토하기로 했다. 오는 9월 11일 종합변론을 끝으로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다.
카피 논란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재판 결과가 아일릿을 넘어 빌리프랩과 모회사인 하이브의 후속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터테인먼트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은 하이브가 무슨 콘텐츠를 내놓더라도 사람들이 기존 논란을 의식하고 보게 되는 측면이 있다”며 “빌리프랩 소송에서 민희진 전 대표가 승소할 경우 앞으로 아일릿이나 하이브가 어떤 창작물을 내놓더라도 카피 논란이 계속 따라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