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우지영 씨는 지난 6월 2일 부동산 개발사 루트에셋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1억 원이며 우 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우 씨와 남편 박흥준 씨가 나란히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박 씨는 HN E&C의 전신인 태초E&C에서도 우 씨와 함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SM그룹 정도경영본부장을 맡은 이력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우 씨는 루트에셋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회사는 사익편취 규제대상으로 분류됐다.
사업목적은 부동산 개발 전반에 걸쳐 있다. 주택건설 및 대지조성, 주택건설분양, 공동주택관리, 부동산 개발·임대·매매·보유·자산관리업 등이 포함됐다. 특히 경매·공매 부동산을 취득해 보유·임대·관리한 뒤 매각하는 사업까지 정관에 명시했다. 향후 시행사업뿐 아니라 직접 부동산 자산을 매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는 사업범위다.
우 씨는 이미 HN E&C를 통해 부동산 시행사업을 벌여왔다. HN E&C의 전신인 태초E&C는 2017년 우 씨가 자본금 1억 원을 넣어 설립한 개인회사로, 2022년 충남 천안 성정동 장기 중단 아파트 사업의 토지와 미완성 건물을 넘겨받아 시행에 나섰다. 이후 법정관리 중이던 HN Inc를 인수·합병하면서 현재의 HN E&C로 외형을 키웠다.
이 천안 사업을 넘겨받은 과정은 현재 공정위 심의 대상이다. 공정위는 SMAMC투자대부와 삼환기업이 상당한 수익이 예상되던 개발사업 기회를 당시 우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HN E&C에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최초 매매계약이 취소된 뒤 경쟁입찰로 전환됐지만 HN E&C가 종전보다 낮은 가격에 사업부지를 확보했고, 해당 사업에서 분양매출 1283억 원과 분양이익 365억 원을 거둔 것으로 공정위는 파악했다.
자금조달 과정에서도 계열사 지원 혐의가 제기됐다. 공정위는 SM상선과 SM하이플러스가 HN E&C에 천안 개발사업 자금을 정상금리보다 20~30% 낮은 금리로 빌려줬다고 봤다. 공정위 사무처는 이 같은 사업기회 제공과 자금지원이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법인·개인 고발 의견을 냈다. 최종 판단은 향후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해진다.
이 와중에 우 씨가 같은 부동산 업종의 법인을 새로 설립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개발사업별로 별도의 부동산 개발회사를 만드는 것 자체는 흔하다”면서도 “수익성이 높은 개발사업을 그룹 계열사가 직접 할 것인지,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개인회사가 가져갈 것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좋은 사업기회를 외부에 넘기기보다 가족회사에 남겨 이익을 가져가려는 유인이 있다”며 “기업이 경영 과정에서 얻은 사업기회를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오너 일가의 개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SM그룹에는 건설·부동산 사업을 하는 계열사들이 이미 다수 있다. 그런데 수익성 있는 개발사업이 이들 계열사가 아니라 총수 일가 개인회사로 넘어가면 그룹에 돌아갈 사업기회가 오너 일가의 사적 이익으로 이전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래 계열사가 가져갈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과 같은 영역의 회사를 총수 일가가 별도로 만든 셈”이라며 “그 회사로 사업기회가 넘어갈 경우 사업기회 유용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금 1억 원으로 출발한 회사가 수백억 원대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려면 결국 외부에서 사업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루트에셋에 SM 계열사의 일감이나 자금이 직접 들어올 경우 사익편취·부당지원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이창민 교수는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에 계열사가 직접 일감을 몰아주면 부당지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부동산 개발회사 아래 별도 특수목적회사(SPC)나 펀드를 만들고 그쪽으로 계열사 자금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규제 공백이 생길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상장 계열사가 총수 일가 개인회사와 거래해 이익을 제공할 경우에는 일반주주와 총수 일가 사이의 이해상충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유를 불문하고 상장 계열사가 포함된 기업집단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가 이익을 얻는 것은 이해상충 거래의 전형적인 형태”라며 “개정 상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SM그룹 상장 계열사가 루트에셋에 자금이나 일감을 제공하는 거래가 이뤄지는지 면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M그룹은 루트에셋의 구체적인 설립 배경이나 사업계획 등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SM 관계자는 “신규 설립한 루트에셋은 오너 일가분 중 한 분이 경영하시는 회사로 파악된다”며 “주주 구성 등 기타 세부 내용은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우 씨의 형제자매들도 각자 개인회사나 직접 보유 지분을 바탕으로 별도의 사업기반을 형성해왔다. 장남 우기원 씨는 2021년 자본금 1000만 원으로 부동산 개발·공급업체 나진을 설립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나진은 서울 구로구와 광주광역시 토지를 법원 경매로 매입했고 지난해에는 장기간 공사가 중단됐던 대구 복현동 골든프라자를 공매에서 143억 원에 낙찰받았다. 계약금 마련 과정에서는 SM 계열 건설사 경남기업에서 15억 원을 빌렸다.
우건희 씨도 2021년 자본금 1000만 원의 개인 부동산 개발회사 코니스를 설립했다. 우명아 씨는 2017년 1억 원을 출자해 경영컨설팅업체 신화D&D를 만든 뒤 SM상선 차입 등을 활용해 법정관리 중이던 LIS를 인수했다. 이후 LIS와 SM중공업 합병을 거쳐 신화D&D가 SM중공업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부동산 매입, 시행사업, 기업 인수처럼 방식은 달라도 오너 2세 개인회사에 자산과 사업이 축적돼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같은 개인회사 확대는 SM그룹의 승계 구도와도 맞물려 해석돼왔다. 우 회장은 현재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라와 삼라마이다스 지분을 각각 90% 이상과 70% 이상 보유하고 있다. 우기원 씨는 2세 가운데 유일하게 이들 핵심 지배회사 지분을 직접 갖고 있어 그룹 승계에서는 앞서 있지만, 다른 자녀들도 개인회사를 키우거나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각자 자산과 사업기반을 넓혀왔다. 개인회사의 자산과 현금창출력이 커질수록 향후 계열사 지분 매입이나 기업 인수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도 커진다.
공정위 심사 대상에는 우지영 씨 관련 거래뿐 아니라 우기원 씨가 지분 25.99%를 가진 삼라마이다스에 대한 저리 자금지원 혐의도 함께 올라 있다. SM상선이 우오현 회장과 우기원 씨가 각각 74.01%, 25.99%를 보유한 삼라마이다스에 정상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 약 164억 원의 경제상 이익을 제공했다는 혐의다.
이처럼 총수 일가가 개인회사를 키우는 흐름은 승계 비용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 승계를 앞둔 기업은 높은 승계 비용 때문에 규제를 피하면서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으려는 유인이 있다”며 “친족이 지배하는 개인회사에 거래를 몰아 회사 가치를 높이고 이익을 축적하는 방식이 반복돼 사익편취 규제가 생겼지만 거래 방식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가족에게 승계하는 것을 막을 것인지, 아니면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합리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활로를 만들어줄 것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규제만 강화하면 기업들은 또 다른 방식을 찾게 되는 만큼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