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은 중국의 구리 9단을 누르고 ‘10번기’를 우승했다.
각종 행사장에서는 회고와 전망도 펼쳐지게 된다. 올해 국내외 바둑계 10대 뉴스를 꼽는 손길도 분주하다. 국내에서는 김지석 9단의 비상이 단연 첫 손가락이다. 김 9단은 더구나 연말 가까이 오면서 맹활약했기에 효과 120%다. 내년 2월로 예정되어 있는 LG배 결승3번기가 정말 기다려진다. 과연 김지석이 세계대회 2관왕에 오를까. 어제까지의 천적 박정환의 터널에서 벗어날까. 세계 타이틀 7개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금 2관왕은 곧 세계1등이고, 한국 1등이다.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조건호 대한바둑협회 회장의 이원 체제가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 겸 대한바둑협회 회장으로 단일화한 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내 프로기전의 다양화다. 올해는 참신한 방식의 기전이 줄을 이었다. 시니어 국수-왕위-기왕-국기-기성전 등 5개 토너먼트에서 각각 우승자를 가리고, 우승자와 상위 입상자들이 모여 ‘왕중왕전’을 벌이는 ‘시니어 클래식’에 50대 이상 기사들이 새로운 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현재 시니어 국수 최규병 9단, 시니어 왕위 서봉수 9단, 시니어 기왕 조훈현 9단이다. 조훈현 서봉수 9단이야 그렇다 치고, 국수전에서 서봉수 9단을 4강에서 제치고 올라가 우승을 차지한 최규병 9단과 국수와 기왕 4강전에서 똑같이 조훈현 9단을 만나 1승1패한 김일환 9단 등이 돋보였다.
하찬석 국수배 같은 영재 프로기사들의 경연 무대도 생겼다. 중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게 되면서 영재 발굴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또 너무 영재, 영재 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꿈나무 조기 발굴은 이론의 여지없는 과제다. ‘양신’-신민준 신진서 등도 내년에는 좀 더 분발해 주면 좋겠다. 영재의 후광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지도 벌써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우리가 너무 조급한 것일까. 그밖에 ‘렛츠런배’ ‘국수산맥’ 등의 대회도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자만을 위한 엠디엠 리그가 내년 1월 13일 개막해 3월말까지 더블리그를 치르고 상위 세 팀이 4월에 포스트시즌 경기를 벌인다.
올해 제주 전국체전에서 첫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바둑대회.
바둑이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승격한 것은 경사였다. 대한바둑협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시종목에서 시범종목으로 오는 데에는 자그마치 11년이나 걸렸지만, 내년에는 바둑이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서 동시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심판 감독 코치 선수를 꿈꾸는 프로-아마-청소년 기사들은 좀 설레고 있다. 또 바둑이 올해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빠졌지만, 2018년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때는 다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지난 주 서대원 아시아바둑연맹 회장과 김달수 사무총장이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인도네시아 바둑협회 임원 등을 만나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왔다. 인도네시아에는 또 우리 김동명 사범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어 저들의 답변이 의전적인 말만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미생>의 장그래역을 맡은 임시완이 제작발표회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최근에는 <반집>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이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저자인 송영화 씨(46)는 정식으로 등단한 수필작가이며 작년에 지역연구생으로 5전6기로 입단한 이동휘 초단(19)의 어머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승부의 세계에서 꿈꾸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마침내 이루는 과정을 지켜본 어머니의 시선이 애틋하고 촉촉하다. 아들의 입단 결정판이 반집 승부였고, 엄마의 책이 <반집>이다.
세계 뉴스로는 ‘이세돌-구리의 10번기’가 퍼뜨린 8억 4000만 원의 상금, 6대 2의 스코어가 시종을 압도한 해였다. 한 달 전쯤 이세돌 9단이 기자들에게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냈다. 누군가 “이거 약소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고 이 9단 쪽에서 “상금이 아직 안 들어왔다”고 대답해 한바탕 폭소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기전도 보면 중국은 상금 지급이 늦다. 지금쯤 들어왔는지.
일본 소식도 몇 개는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먼저 우칭위안 선생의 타계 소식. 선생의 타계는 말 그대로 초거성의 스러짐이었고 막을 내리는 100년의 드라마 앞에서 모두들 옷깃을 여몄다. 엊그제 16일에는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24)이 이야마 유타 9단(25)을 꺾고 제62기 ‘왕좌’를 차지했다. 얼마 전 후지사와 리나가 여류본인방을 차지했을 때만큼이나 반갑다. 5월에 유럽에서는 프로가 탄생했다. 바둑계 10대 뉴스로 손색이 없는 사건이었다.
자, 이제 내년에는 박정환 김지석의 쌍두마차가 휘저을 것이고 영재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며 일본이 한-중 대결에 끼어들면서 한-중-일 삼각구도의 재편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