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9단이 2014년 12월 10일 삼성화재배를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오른쪽은 김 9단과 중국 탕웨이싱 9단이 결승전에서 대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지석은 어린 시절부터 ‘광주의 바둑신동’으로 꼽히며 한국 바둑계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바둑신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김지석은 조훈현 9단의 관심을 받으며 6살의 나이에 조훈현과 넉점 지도기를 두기도 했다. 당시 조훈현 9단은 김지석의 색다른 기풍에 만족스러운 눈길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제자였던 이창호 9단의 ‘두터운’ 기풍과는 다르게 ‘끊고 찌르고 싸우는’ 어린 김지석이 퍽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이다.
김지석이 제2의 이창호가 될 것인가에 대한 바둑계의 기대가 모아졌지만, 정작 김지석은 조훈현의 평창동 집으로 들어간 지 단 ‘열흘’ 만에 쫓겨나게 된다. 바둑보다 놀기를 좋아하는 김지석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당시 조훈현 9단은 “예전에 창호(이창호 9단)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기보를 놓아보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지석이는 시켜도 공부를 하지 않으니 내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라고 회고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렇게 놀기를 좋아하는 김지석이었지만, 워낙 바둑 실력이 출중해 2003년 14살의 나이로 입단에 성공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입단 후’였다. 입단 후 3년이 지나도록 김지석은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당시 이를 두고 김지석의 바둑을 지켜보는 이들은 “김지석이 재능만 있고 노력은 하지 않는다”라는 우려 섞인 시각을 보내기도 했다.
정말 김지석의 바둑에 노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가. 하지만 김지석은 문제의 답을 스스로 찾아 나갔다. 김지석과 절친한 박정상 9단의 칼럼 중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지석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정말 강해지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그 전엔 시합에 져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 뒤 지석이는 정말 열심히 바둑을 했다.”
김지석의 모습은 그 뒤에 확실히 달라졌다. 김지석의 강점인 수읽기와 부분전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어린 시절 즐겼던 ‘끊고 찌르고 싸우는’ 공격적인 바둑은 점차 유연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이세돌’이라는 걸출한 멘토가 있었다. 이세돌 9단은 자주 연구실에 들러 김지석과 연습대국을 했다. 이세돌 9단은 김지석의 바둑에 대한 센스와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김지석을 상당히 아꼈다.
김지석의 재능과 노력은 점차 거듭돼 드디어 2009년 결실을 이루기 시작했다. 2009년 김지석의 한국랭킹은 19위에서 8위까지 치솟았고, LG배와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을 통과해 한국대표로 세계무대에 출전하기도 했다. 김지석의 첫 타이틀 역시 2009년에 완성된다. 물가정보배에서 이창호 9단을 결승에서 만나 2-0으로 승리는 거둔 것. 흥미롭게도 이창호 9단은 그 이후 물가정보배에서 내내 고배를 마시며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이렇듯 김지석의 바둑이 꽃필 것으로 모두가 예상할 무렵, 김지석은 웬일인지 또 다시 ‘주춤’한다. 또 다시 노력이 다한 것인가. 김지석이 정상을 향한 길목 초입에서 헤맬 무렵, 그를 다잡아주기 위해 등장한 이는 또 다시 이세돌9단이다. 2013년 초, 이세돌 9단은 “포스트 이세돌이 누구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지석’이라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세돌 9단은 김지석과의 전적에서 12승 3패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런 이세돌이 후계자로 김지석을 지목하다니. 바둑계 일각에서는 의아함을 표했지만, 김지석은 이세돌에게 “고마웠다. 그 말이 큰 힘이 됐다.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고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이후 신기하게도 김지석의 바둑은 또 다시 날아오른다. 상승세를 탄 김지석은 2013년 GS칼텍스배 결승에서 이세돌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컵을 차지한다. 한국랭킹이 3위로 훌쩍 뛴 것도 그 즈음이다.
그리고 드디어 2014년 연말 김지석은 바둑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12월 10일 끝난 2014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서 중국의 탕웨이싱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 김지석의 첫 세계 대회 우승이자, 한국 바둑도 2년여의 무관 설움을 씻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김지석의 질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화재배 우승에 이어 LG배도 결승 진출, 춘란배에서도 박정환과 함께 8강에 진출해 있어 또 한 번의 세계대회 우승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 김지석의 최대 과제는 후배이자 천적인 박정환 9단과의 맞대결이다. 김지석은 박정환과의 대결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통산 전적 4승 14패. 승률 22.2%의 참담한 성적을 거뒀던 것. 하지만 김지석은 LG배 준결승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정환이에게 많이 진 것은 실력 차이 때문이었다. 나이에서 오는 부담감은 핑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승전은 1 대 1 승부이며 내게도 50%의 찬스는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은근한 자신감을 보여 두 ‘바둑계 스타’의 치열한 맞대결을 기대케 했다.
한때 장난기 가득한 ‘광주의 바둑신동’ 김지석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그에게는 꽤 많은 고뇌의 시간이 있었다. “5살 때 바둑을 배운 뒤부터 십수년 동안 매일 눈만 뜨면 바둑이었다. 지겹다는 느낌이 자주 들고 바둑도 재미가 없었다”라고 토로했던 김지석은 어느새 생각을 바꿔 바둑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김지석은 아직 바둑 인생을 ‘초반전’이라고 생각한단다. 그의 탁월한 기재가 어디까지 도달할지 바둑계의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