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바둑대상 수상자들.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MVP 김지석과 기록부문 3관왕 박정환.
김9단의 MVP 수상은 이번이 처음으로 2003년 입단 이후 11년 만이다. 김 9단은 2009년에는 기록부문(다승-승률-연승) 3관왕을 차지했고, 2013년에는 최우수기사 한 단계 아래인 ‘우수기사상’을 받았다. 우수기사상은 지난해 폐지되었다.
2014년 MVP는 이세돌 김지석 박정환 9단의 3파전이었다. 화제-뉴스-상금 등에서는 이세돌 9단이 단연 앞섰다. 이세돌은 ‘세기의 대결’로 홍보된 구리 9단과의 ‘10억 원 10번기’로 1년 내내 화제를 몰고 다니는 한편 1월에 제32기 KBS바둑왕전 결승, 4월에 제15회 맥심커피배 결승에서 모두 랭킹 1위 박정환을 꺾었고, 8월에는 제26회 TV아시아 바둑선수권전 결승에서 일본의 고노 린 9단을 제압했으며 시상식 이틀 전인 27일에는, 올해 출범한 렛츠런배 결승에서 강동윤 9단을 제치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거기다 중국 리그에도 참가해 이 9단은 지난해 14억 원을 훌쩍 넘는 상금을 벌었다. 상금-대국료 역대 최고였던 이창호 9단의 10억 4000만 원에서 4억 원 이상, 무려 약 50%를 도약한 것.
이 9단은 2000년도에 처음 최우수기사상을 받은 후 2002년과 2006-2007-2008년 3년 연속, 2010-11-12년 다시 3연 연속 등 통산 8번이나 MVP를 차지했고 지난해도 이처럼 스스로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전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단 투표에서 26.5%, 인터넷 투표에서는 18.9%를 얻는 데 그쳤다. 그런가 하면 국내외 기전에서 기복 없는 활약으로 1년여 동안 한국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박정환 9단도 기록 부문(다승-승률-연승)의 성적은 여전히 발군이었으나 그게 경쟁 부문의 하이라이트인 MVP 투표에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요컨대 화제나 상금이나 승률이나 그런 것들보다는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2년 만에 세계 타이틀을 ‘찾아온’ 김지석의 결정적 한 방이 표심을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국에 다 넘겨주었던 것들 중에서 큰 것 하나를 탈환한 것이었으니까. 중국 바둑이 인구도 많고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지원도 하고 해서 이제는 객관적으로 우리가 좀 밀린다 해도,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자존심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8억여 원을 번 개인적 성취보다 바둑팬들의 자존심을 달래준 것이 반가웠다는 얘기다.
여자기사상은 최정 5단. 이의가 없었다. 한국 여왕 최 5단은 작년 9월 제6회 궁륭산병성배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난공불락의 여제였던 루이나이웨이 9단을 꺾고 우승, 세계의 여왕이 되었다. 그에 앞서 최 5단은 제2회 백령배에서 한-중-일의 남자 강호들과 겨루어 64강까지 치고 올라갔으며, 여자 세계대회 단체전인 제4회 황룡사쌍등배, 제3회 갈현녹차배 등에서 한국 팀 주전으로 활약했고 국내에서는 ‘여류명인’을 3연패했다.
최우수신인상은 신진서 2단. 6월에 열린 ‘2014 메지온배 한-중 신예대항전(단체전)’에서 3연승을 올리며 한국 팀 우승을 이끌었고 2014년 이민배 세계신예대항전에서 한국 선수로는 혼자 살아남아 8강까지 올라갔다. 8강이 내세울 것은 아니지만, 4단의 저단이면서 현재는 중국 2위로 껑충 뛰어 올라와 있는 커제를 꺾은 것이 컸다. 커제는 중국이 자랑하고, 한국 프로 고수들도 인정하는 천재기사. 국내에서는 1월에, 제2회 ‘미래포석열전(영재대항전)’에서 우승했다.
열네 살 신진서는 목소리가 아저씨 같은 중저음이어서 무슨 행사나 시상식 때면 화제가 되곤 하는데, 이날도 “신인왕은 일생에 한 번 받는 상이니 더욱 영광스럽다”는 식으로 의젓하게 말문을 열고는 도중에 다음 말이 생각이 안 나는지 10초쯤 머뭇머뭇하더니 “5년 안에 꼭 다시 나오겠다”는 선문답으로 마무리해 좌중에 한바탕 큰 웃음을 선사했다. 무슨 뜻이었을까. 5년 안에 최우수기사상을 받으러 나오겠다는 뜻이었을까.
신 2단과 경쟁했던 동료는 박창명 초단과 김명훈 초단. 강원도의 희망 박 초단은 입단 후 8개월 만에 제10기 물가정보배 결승에 진출했다. 나현 5단과 겨루어 1 대 2로 지긴 했어도 입단부터 결승까지 최단시간 주파 기록을 세웠다. 이겼다면 그야말로 파천황의 신기록이었다. 김 초단은 또 입단 19일 만에 본선 진출이는 초스피드 진기록의 주인공. 번개소년답게 KB리그 정관장 팀에 뽑혀 팀의 준우승에 일조했고,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4승1패로 맹활약했다. 신 2단뿐 아니라 박 초단과 김 초단도 요주의 인물들이다.
다승-승률-연승의 기록 부문은 박정환 9단의 독무대. 상을 받으러 세 번이나 무대에 나갔다. 83승26패로 승률 76.2%이고 2014년 7월 7일부터 8월 8일까지 18연승을 달려 세 부문에서 모두 1위. 탁월한 성적인데 박 9단이 “올해(2014년)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잘 반성하고 공부해 내년에는 아쉬움이 덜 남도록 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말하자 사회자가 “상 3개가 부족하고 아쉽다면 5개쯤 받겠다는 것이냐”고 물으면서 웃었다. 그렇다. 아닌 게 아니라 아쉬움이 남는다. 늘 결정타 하나가 아쉽다. 박 9단은 2009년에 신인상, 2011년에 연승상을 거쳐 이듬해에는 이번처럼 다승-승률-연승의 3관왕에 이미 한 차례 올랐었고, 2013년에는 기록 부문에서 연승 하나를 놓쳤지만 다승-승률과 함께 최우수기사상을 차지했는데, 누구나 꼭 스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스타는 타율보다는 아무래도 홈런이다.
시니어기사상은 조훈현 서봉수 최규병 유창혁 9단의 4파전. 앞의 세 사람은 시니어 기왕, 시니어 왕위, 시니어 국수 우승자. 유 9단은 국가대표-상비군 감독. 유 9단이 상을 받았다. 단기간에 한국 바둑의 전열을 재정비한 공로다.
한편 2013년까지 ‘아마 바둑인의 밤’에서 열렸던 아마추어 시상 부문도 지난해부터 바둑대상에 포함되어 최우수아마기사상은 위태웅 선수(제9회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대회 우승), 여자아마기사상은 전유진 선수(제39기 여루국수전 우승, 여자랭킹 1위)회에게 돌아갔고, ‘미생’ 신드롬의 윤태호 작가가 공로상, 전라남도바둑협회가 최우수지부상, 김기형 전 제주도바둑협회장과 파주 파양초등학교 김흥준 교장이 바둑나눔상을 받았다.
2014년은 김지석의 해였다. 김지석에게는 또 하나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이길 때는 완봉승, 질 때는 영패다. 오는 2월에 열리는 제19회 LG배 결승3번기, 상대는 박정환. 거기서는 어떻게 될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