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나이츠에서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 활약하는 김기만·전희철·허남영 코치. 이들은 모두 SK 선수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사실 SK는 문경은 감독이 감독대행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모래알 조직’으로 손꼽혔다. 수많은 명장들이 사령탑에 올랐지만 SK의 암흑기 탈출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문경은 감독이 팀을 이끈 최근 3시즌 동안 SK는 정규리그 우승 및 챔피언결정전 진출 1회,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문 감독은 사석에서 기자에게 “나 혼자였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성적이었다. 내 옆에 3명의 코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었다”라며 전희철, 허남영, 김기만 코치에게 공을 돌렸다. 젊은 조직, 신나는 팀 문화, 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K 나이츠에서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 활약하는 SK 코치 3인방과의 유쾌 상쾌 통쾌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본다.
# 코치들이 말하는 코치의 세계
전희철(전): 감독님을 잘 보좌해야 하는 자리라고 인터뷰 때마다 얘기하지만, ‘보좌’란 우리가 직접 감독님을 모시는 보좌보다는 감독님의 지시사항을 선수들에게 디테일하게 제대로 전달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큰 그림을 보신다면 우린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면서 공백이 생기지 않게끔 노력해야 한다.
허남영(허): 감독님이나 전희철 코치가 선수들을 강하게 리드한다면 난 좀 자상하고 따뜻하게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편이다. 뒤에서 다독이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전: 그렇다보니 악역은 전부 내가 도맡는다. 너무 강한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 같아 부드러운 이미지로 바꿔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생긴 것도 이런데, 이미지까지 강하다보니까 선수들이 날 부담스러워한다. 감독님이 감독대행 시절부터 정식 감독이 되는 2년여 동안은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작은 곳부터 변화시키려고 잔소리 하면서 혼도 많이 냈다. 그런 점에서 허 코치와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진 것 같다. 욕은 나 혼자 다 먹고(웃음).
김기만(김): 전 코치와는 고려대 선후배 사이다. 내가 1학년에 입학할 때 전 코치는 하늘같은 4학년 졸업반 선배였다. 그런데 SK에서 다시 만나 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관계가 더 어려워졌다. 내가 전력분석원으로 일할 때 선배는 코치였는데, 보고서에 나타난 오탈자에 얼마나 심하게 야단을 치던지, 그것도 식당에서, 선수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말이다. 진짜 울 뻔 했다. 서운하고 속상해서.
전: 지금 ‘코치의 세계’에 대해 말하는 순서인데, 왜 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얘기하는 거야? ‘이제야 말할 수 있다’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웃음)?.
허: 전 코치 입장에서는 학교 후배니까 더 심하게 야단을 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보고서 올릴 때 더 주의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김: 하긴 이젠 내가 코치가 돼 전력분석 팀장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을 때 오탈자가 발견되거나 한 팀에 김태술이 2명이 있거나 하면 크게 야단을 치니까.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말해주는 모양이다(웃음).
# 전희철-허남영 오리온스 동기
전: 솔직히 말해서 오리온스 시절, 중앙대 출신의 허남영에 대해 잘 몰랐다. 첫 이미지는 ‘와, 저 사람 진짜 밥 잘 먹는다’였다. 세상에 그렇게 밥 많이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
허: 내가 많이 먹긴 먹었지. 지금도 매일 다이어트 한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체중은 120㎏에서 떨어지질 않았으니까. 오리온스 입단할 때만 해도 전 코치는 나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전 코치야 고려대 시절부터 워낙 유명했던 선수였고, 난 식스맨 출신이라 유명 선수가 아니었다. 내 입장에선 당시의 전 코치가 다가가기 어려운 하이 레벨의 선수였다.
전: 그러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과천 산림감시원으로 같이 배치를 받으며 친해졌다.
허: 그때는 과천종합청사에 전 코치 팬들이 매일 찾아왔다. 나중에는 공무원들 일하는데 방해된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팬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었지만, 당시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다.
지난해 11월 1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서울 SK와 고양 오리온스의 경기에서 문경은 감독과 김기만 허남영 전희철 코치(왼쪽부터)가 선수들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KBL
#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코치를 한다는 건?
전: 선수 시절부터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코치나 감독하기가 어렵다는 얘길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까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절감했고, 프런트 생활부터 시작하면서 내 마인드가 많이 변했다. 물론 지금도 코치들끼리 모여 있으면 ‘야, 저것도 못하냐?’ ‘와, 저 쉬운 걸 놓치다니’ 하면서 ‘뒷담화’도 하지만, 선수들 앞에선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2군 감독이 됐을 때는 선수들 앞에서 무게 잡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못가 그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선수들에게 다가가려면 나를 낮추고 가야 했다. 그에 따른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도 지도자로 조금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김: 전 코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지만, 허 코치와 나는 식스맨 출신이라 벤치 멤버들의 심리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전 코치가 주희정, 박상오, 김선형, 김민수의 머릿속을 읽고 있다면, 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다가가기가 용이하다. 그래서 우리 팀이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럴 땐 사표 쓰고 싶더라!
김: 난 아까 먼저 말씀 드렸던 것처럼 보고서 올렸다가 오탈자 났다고 전 코치로부터 엄청 깨졌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전: 오늘 나를 아주 죽이려고 작정하고 나왔구나(일동 폭소).
김: 만약 다른 학교 선배 출신이라면 애교도 부리면서 ‘한 번만 봐 달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내게는 너무 어려운 선배라 억울한 게 있어도 참고 버텼다. 당시엔 전력분석원이 1명이었다. 혼자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는데 혼이 나니까 서러웠던 것이다. 그래도 사표 쓸 생각은 안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 코치를 하다보면 종종 선수들한테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서 선수들에게 베풀고 마음을 다했는데 선수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걸 알았을 때는 멘탈붕괴 그 자체다. 일에 대한 회의도 들고, ‘내가 이걸 해서 뭐 하나’ 싶기도 하고. 그때 정말 힘들었다. 그러면서 선수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난 과연 당시 코치님들에게 예의 바른 선수였나? 절대 아니었다(웃음). 선수 경력이 화려하지 않은 코치님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전 코치야 워낙 커리어가 화려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코치 입장에서도 대표팀 출신의 선수를 가르치는 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는 ‘급’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코치한테는 선수일 뿐이다. 세상을 길게 보면 서로 어떤 위치에서 다시 만날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전 코치나 나나 지금 하고 있는 코치 생활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 난 SK에서 은퇴 후 매니저 일부터 시작했다. 두 코치보다 가장 오랫동안 SK에 머물렀다. 그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선수가 뒤에서 다른 말을 했을 때, 절망감이 엄습했다. 나를 이용하나 싶기도 했고. 어느 조직이나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숙제인 듯하다.
전: 갑자기 생각난 것 한 가지! 은퇴 후 SK에서 프런트로 일하며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내 앞에 20대 후반의 젊은 기자가 앉았는데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이런 얘길 하더라. ‘개인적으로 전희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유명한 분이란 얘긴 들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냐? 그렇게 유명한 선수 출신이 기자들 접대나 하고 그러면 마음 편하시냐?’라고 물었다. 그 얘길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정말 많이 힘들었다. 집 앞 주차장에서 2시간 동안 울었다. ‘아,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구나’ 싶었다. 농구하던 놈이 왜 저걸 하고 있지? 먹고 살려고? 코치 못하니까? 그런 얘기들이 계속 들리는 듯 했다. 농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 모비스와 치열한 순위 다툼
허: 모비스와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올해로 벌써 3년째다.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비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했기 때문에 한 번쯤은 꼭 넘고 싶은 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지면 다른 팀한테 지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허탈감이 몰려온다. 프로농구 최강 팀이니까, 그 팀을 이기고 싶고, 우리가 받았던 상처를 되갚아 주고 싶다.
전: 지도자 중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 감독이 인정해주는 감독이 문경은 감독이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팀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문 감독이 이 팀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누가 지금의 SK를 상상했겠나. 그때는 목표가 6강 플레이오프 진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비스와 우승을 다투고 있지 않나. 모비스는 분명 우리보다 한 단계 위의 팀이다. 우린 그 팀을 쫓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
김: 농구계에서는 우리를 젊은 팀으로 꼽는다.
전: 지금은 안 젊어. 이상민 감독(삼성), 김영만 감독(동부)이 이끄는 팀들이 훨씬 젊은 팀이다.
김: 그래도 모비스보다는 젊다(웃음). 젊은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모여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모비스를 상대로 우승을 일구는 모습을 반드시 이뤄내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 기자 riveroflym@ilyo.co.kr
인터뷰 뒷담화 김기만 ‘뺨따구 사건’ 언급 “동근아, 미안하고 미안했다” 김기만 코치에게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2005~2006 시즌 12월 3일 SK와 모비스의 경기였다. 그날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양동근을 저지하기 위해 선수 김기만은 경기에 투입된다. 목적은 자신의 파울(도발)로 인해 양동근이 흥분하면 같이 더블 파울을 받는 것이었다고. 즉 양동근을 아예 경기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저격수’로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 경기 승리에 대한 인센티브도 걸려있고, 이기고 있던 경기가 양동근의 활약으로 뒤집어지는 상황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무조건 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속셈은 양동근을 때리고 싸우면 더블 파울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동시 퇴장이니까 우리 팀에 이익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거사’는 실패로 끝났다. 하프라인 있는 데서 경기와 전혀 상관없이 따귀를 때리려고 동작을 취했는데 갑자기 우지원 선배가 쫓아와서 말리는 바람에 양동근 얼굴에 손끝만 스쳤고, 양동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봤고(도발은 하지도 않았고), 난 그걸로 퇴장당했고, 인센티브도 날아갔고…. 정말 창피하고 죽고 싶었던 흑역사였다. 그 즉시 바로 사과했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치다보니 지금까지 나 혼자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동근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당시 일을 용서해 달라고.” 그 일 이후로 김기만의 연관검색어에 양동근이 뜨고, 김기만의 별명은 ‘킬기만’이 됐다는 가슴 아픈 스토리. SK 코칭스태프는 모두 딸만 둔 가장이다. 허남영 코치가 이에 대해 설명을 곁들였다. “‘딸딸’(허남영) ‘딸딸’(전희철) ‘딸’(김기만) ‘딸’(문경은)이다. SK에서 코치하려면 절대 아들을 낳으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농구인들이 딸을 많이 낳는 편인데, SK에는 감독, 코치부터 유독 딸이 많다.” 전희철 코치는 용인시 수지에 몰려 사는 농구인들에 대한 얘기도 덧붙였다. “결혼하면서 처음에는 분당에 살려고 했다가 문경은 감독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문 감독 사는 아파트의 맞은편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그 주위에 이상민 감독, 현주엽, 우지원 등이 모여 살다보니 비시즌 때는 일주일에 5일을 만나 술을 마셨다.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만나디시피하며 즐거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시들해지더라. 김기만 코치도 수지 쪽으로 이사 올 뻔하다가 부동산 중개업자가 ‘이곳에 농구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김 코치 아버지가 반대했다고 한다. 모여 있다 보면 술만 마실 것 같아서.” 김 코치도 거든다. “그래서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비시즌 때는 택시비가 더 나온다. 매일 불려가니까(웃음).”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