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태환(구미을) 의원은 지난 9월12일 밤 경기도 아시아나CC의 클럽하우스에서 술자리가 언제 끝날지 알아보기 위해 들여다보던 경비원에게 욕설을 한 뒤 자리를 파하고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발로 배를 걷어찼다고 한다. 폭행을 당한 경비원은 2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중인데 김 의원을 고소할 예정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은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서둘러 대 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실 골프장은 이용객이 대폭 증가했지만 아직은 고가의 이용료 때문에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인 등 일부 힘있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게 돼 그들만의 ‘무법천지’로 방치돼온 게 사실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캐디에 대한 욕설, 폭행 등이 끊임없이 발생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고액의 내기골프와 음주골프 등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골프장에 얽힌 정치인의 추태와 뒷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조폭과 정치인들이 가장 진상(매너가 안 좋은 사람을 일컫는 골프장 은어)들이다.”
놀랍게도 골프세계에서는 조직폭력배(조폭)와 정치인들이 한 묶음으로 비난을 받고 있었다. 중견프로 A씨의 증언.
“요즘 조폭들은 예전처럼 다른 골퍼들에게 위협을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진 않는다. 다만 스윙이 잘 안되거나 하면 큰소리로 성질을 부리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뿐이다. 조폭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골프장에서 기본 매너가 좋은 편이다. 실력도 좋고 점수도 잘 속이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조폭보다 더 나쁜 매너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조폭이야 원래 행동거지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일부 정치인들의 골프 행태가 조폭 수준이라면 언뜻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들은 캐디에 대한 욕설, 폭행, 점수 속이기, 멀리건(다시 한번 샷을 하는 것), 음주 골프, 고액 내기 골프 등 온갖 ‘더티 플레이’를 펼친다고 한다. 17대 국회는 초선으로 물갈이가 많이 이루어져 덜하지만 16대까지만 해도 정치인들의 못된 매너에 골프장측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먼저 일부 정치인들이 골프장에 ‘왕림’하면 가장 먼저 드러내는 것이 특권의식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앞 뒤 팀의 시간 간격을 벌여줄 것을 명령한다고 한다. 보통 6~7분 간격으로 라운딩이 시작되지만 정치인들은 10여 분 이상 차이를 두게 한다. 물론 골프장에서도 정치인들의 요구에 앞서 미리 라운딩 간격을 조정한다.
다시 프로골퍼 A씨의 말.
“요즘은 덜하지만 3~4년 전만 해도 정권 실세들이 골프장을 방문하면 골프장에는 비상이 걸린다.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앞뒤로 확 ‘밀어버린다’. 그리고 캐디에게도 철저히 교육을 시켜 웬만한 폭언 등은 참으라고 계속 지시한다.”
A프로는 또한 “골프장측으로서는 세금 문제 등 각종 민원사항이 많기 때문에 정치인 요구라면 뭐든지 들어준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해도 덮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외부에 불미스런 일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인이 필드에 오면 캐디 선정도 까다롭다고 한다. 여기에도 ‘물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예쁘고 참을성 있고 교양도 갖춘 캐디를 선발한다. 하지만 정치인뿐만 아니라 재벌 회장 등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캐디를 대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매너 좋게 그들을 대하지만 일부는 “야, 거기 백 가져와”라면서 윽박지르기 일쑤란다. 유력 대권후보였던 한 정치인은 최근 캐디를 폭행해 말썽이 된 적도 있었지만 골프장측에서 그 사실을 숨겨 그냥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씨의 골프장 이용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수도권 지역에서 오랫동안 골프를 즐겼던 한 골퍼는 “예전에 라운딩을 하러 가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가끔 본 적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캐디들이 매우 좋아했다. 그는 보통 8만원인 캐디피를 모두 지불하고 20만원을 보너스로 더 챙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캐디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최고였다고 한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씀씀이가 약해서 그런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성희롱도 만만치 않다. ‘홀’과 관련된 은밀한 성적인 농담은 양반이다. 전직 캐디였던 B씨는 이에 대해 “골프 클럽을 빼면서 팔로 은근슬쩍 캐디들의 가슴을 건드리거나 엉덩이와 귀를 노골적으로 주무르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다음에 다시 만나자며 접근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들은 고객이 고객인지라 싫은 내색을 절대 하지 않고 재주껏 참으며 어색한 상황을 넘긴다고 한다. 어떤 정치인은 성격이 불같아서 골프가 안 되는 날은 특히 캐디를 못살게 군다고 한다. 미스샷이 자꾸 발생하면 클럽을 연못에 던져버린 뒤 찾아오라고 시키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점수 속이기도 정치인들이 종종 저지르는 나쁜 매너다. 특히 라이벌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라운딩을 한다든지 체면을 유독 차리는 정치인들은 캐디들이 골프 스코어를 적을 때 슬쩍 점수를 높이도록 강요하기도 한단다. 승부욕이 강한 정치인이 ‘더블파’를 ‘파’로 고쳐달라고 떼를 쓰면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준다고. 또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멀리건(공을 다시 한번 치는 것) 용인을 당연시하는 정치인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것도 경선 불복 등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못된 경우를 그대로 빼 닮은 셈이다.
‘국사’에 바쁘겠지만 티오프 시간에 늦어 전체 골퍼들의 시간까지도 뺏어먹는 정치인도 더러 있다. 요즘엔 휴대폰 통화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일을 핑계로 끊임없이 큰소리로 통화를 해 주변을 산만하게 만든다는 것.
고액의 내기골프는 골프장의 오랜 관행이지만 정치인들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지난 2001년 5월 당시 김종필 김원기 의원 등 여권 3인방이 고액의 내기골프를 했고 알려져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당시 1천만원 내기는 농담으로 밝혀졌지만 내기골프는 정치권의 또 다른 오랜 관행이었다.
도박 방식은 경기가 끝난 뒤 총타수 차에 따라 돈을 주고받는 ‘오버게임’, 한 홀이 끝날 때마다 뒤진 타수만큼 4등은 1~3등에게, 3등은 1등과 2등에게, 2등은 1등에게 타수별로 일정액을 내는 ‘곗돈성 홀매치게임(스토로크 플레이)’, 홀마다 일정액씩을 미리 걸고(이를 ‘학교 간다’고 함) 승자에게 모두 몰아주는 ‘스킨스 게임’ 등 다양하다.
이런 일부 정치인들 때문에 일부 캐디들은 자신들만의 ‘표식’으로 악명 높은 고객들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골프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치인들의 경우 그들의 위세에 눌려 골프장에서 함부로 블랙리스트에 올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캐디들은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하면서 “예전에는 어떤 정치인의 매너가 정말 좋지 않을 경우 캐디가 몰래 그 사람의 골프클럽이나 가방 어딘가에 별표를 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캐디들이 이것을 보고 그 사람을 경계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견 프로골퍼 A씨는 “조폭과 일부 정치인이 문제라고 하지만 비슷한 부류의 검사나 변호사에 비하면 양반일 것”이라고 밝혀 골프장 매너에도 ‘옥상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