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포항시립미술관은 15일부터 ‘2015 대구경북세계물포럼’을 기념해 ‘워터스케이프 : 물의 정치학(Waterscapes : The Politics of Water)’ 전시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물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 특히 국가와 영토, 국경과 분쟁 대상으로서의 물과 물의 사유화를 둘러싼 갈등에 주목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외 작가 40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비디오 아트의 전통과 영화 미학, 혹은 GPS, 인터넷, 인터렉티브, 데이터 시각화 프로그래밍 등 유동적인 속성이 강한 뉴미디어 테크놀로지 작품 33점을 통해 물이라는 주제에 접근해 주목을 끈다.
전시 제목인 ‘워터스케이프(Waterscapes)’는 문화이론가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 1949-)가 전지구화시대에 서로 다른 국가 혹은 지역의 사람, 자본, 기술, 미디어, 이데올로기들이 상호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경관(scapes)’이라는 접미어를 사용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유동적인 역학반응들의 결과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본 아파두라이와는 달리, 이 전시의 참여자들은 그가 말한 다섯 가지 경관의 상호작용이 발생시킨 결과물로서의 ‘물의 경관 (Waterscapes)’을 인류의 시급한 대처를 요구하는 위기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인 알프레도 야르(Alfredo Jaar, 1956-)의 ‘Geography=War’이다.
알프레도 야르는 1988년 이탈리아의 기업들이 유독성 산업폐기물을 수백 개의 드럼통에 담아 나이지리아의 한 해안마을에 폐기하면서 수질오염으로 주민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 현장을 찾아 유해물질이 묻혀 있는 폐기장에 방치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고, 이를 라이트박스에 담아 50개의 드럼통에 담긴 물에 투영함으로써 아프리카와 남미 등 소위 제3국가들이 겪고 있는 ‘선진국’들의 횡포를 목격하게 한다.
또, 국가의 경계에 관해 작업해 온 프란시스 앨리스(Francis Alÿs, 1959-)는 흑해의 물을 퍼서 홍해에 쏟아 붓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매우 단순해 보이는 이 행위는 그것이 진행되는 공간이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이라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터키를 가로질러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에 이르는 흑해에서 홍해까지의 경로와 그 과정에서 겪었을 각종 규제와 절차들이 배제된 채, 그저 한 양동이의 물을 뜨고, 쏟아 붓는 작가의 무심한 제스처는 순식간에 서로 뒤섞여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물과 중첩되면서 영토와 국경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무수한 분쟁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이자 액티비스트인 소원영은 데이터 시각화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여 지난 100여 년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물을 둘러싼 분쟁 지도를 제작했다. 이 인터렉티브 지도는 20세기 후반까지 산발적으로 발생했던 물을 둘러싼 전쟁이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기후변화와 물의 위기, 그리고 그 때문에 한 국가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상황에 주목하게 하였던 몰디브관 ‘이동용 국가(Portable Nation)’가 ‘전시 속의 전시’로 재구성된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는 인도의 물 문제를 조명한 9편의 영화, 2004년 인도양을 강타했던 쓰나미의 최대 피해지역인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몰디브,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쓰나미 이후의 삶을 기록한 크리스토프 드래거(Christoph Draeger)와 하이드룬 홀츠파인트(Heidrun Holzfeind)의 다큐멘터리 ‘쓰나미 건축’도 상영된다.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인 실천의 다양한 접점을 제시함으로써 ‘물의 위기’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워터스케이프 : 물의 정치학’ 전시는 미술관 1, 2전시실 및 2층 테라스에서 오는 3월 29일까지 계속된다.
이동주 기자 ilyo8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