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대의 바둑 신동이 깜짝 등장하기도 하는 한바연 바둑대회는 학생들이 많이 참가한 만큼 승패가 나눠진 곳곳에서 눈물바다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한국중고바둑연맹(회장 신상철)이 주최하고 (사)대한바둑협회가 주관하며 일요신문사가 후원한 이번 한바연 바둑대회는 지난 1월 18일 오전 10시 한국중고바둑연맹 차수권 사범의 개회사로 힘찬 막을 올렸다.
1995년부터 시작된 한바연 바둑대회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대회로 유명하다. 프로리그와 연구생리그 다음인 루키군리그에 해당하는 한바연 바둑대회는 출전자의 평균 기력이 아마 5단을 상회할 정도로 루키 쪽에서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 대회로 알려져 있다. 한바연 바둑대회는 100명이 넘는 프로기사를 배출하기도 했는데, 박영훈, 홍기표, 배준희, 이재웅, 김기용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중고바둑연맹 유재성 사무국장은 “벌써 대회가 20주년이 됐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들이 오는데 이제는 한바연 몇 조 출신이라고 하면 기력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대회가 됐다. 프로기사들이 많이 배출된 만큼 전국 바둑 꿈나무들이 실력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한바연 바둑대회는 실력에 따라 가장 수준이 높은 최강부부터, 1조부터 10조까지, 선발전 등으로 나눠 진행된다. 경기 방식은 스위스리그 방식이다. 토너먼트와 리그 방식을 혼합한 스위스리그 방식은 승자는 승자끼리, 패자는 패자끼리 계속 대진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얻은 점수에 의해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경기는 30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 나이 자격은 7살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기에,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가 어울려 바둑실력을 겨뤘다. 나이순이나 학년으로 조를 나누는 여타 대회와 차별화된 모습이다. 유재성 사무국장은 “실력을 기준으로 조를 나누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을 누르고 우승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때로는 어린 나이대의 바둑 신동이 깜짝 등장하기도 하는 대회다”라고 전했다.
주최 측의 말을 입증하듯 이날 대회에서는 ‘바둑영재’라고 불리는 김은지 학생(여·9)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김은지 학생은 3조에서 경기를 했는데, 해당 조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의 참가자로, 이날 공중파 방송이 직접 찾아와 경기 모습을 촬영을 하기도 했다. 김은지 학생은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오로지 바둑교실만 다니며 바둑실력을 연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소년체전에서 올해부터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향후 전국적인 활약이 기대되는 인재다. 김은지 학생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바둑이 너무 재미있다. 13살이 될 때까지 프로기사가 되는 게 목표다”라며 깜찍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아이들의 대국 모습(왼쪽)과 승부가 끝난 후 스마트폰 앱으로 복기를 하는 모습.
학생들이 많이 참가한 만큼 승패가 나눠진 곳곳에서는 때 아닌 눈물바다가 연출되기도 했다. 아깝게 패한 뒤 경기장 밖 계단에서 오열하던 한 남학생은 학부모 품에 안겨 한참동안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심판위원장 손근기 4단은 “아이들이 승부욕이 강하니까 가끔 그게 과하게 표출되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며 “한바연 대회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강한 것일 수도 있고 대회가 치열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대회에서 치열한 ‘진검승부’가 펼쳐진다는 사실은 외국인 참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하다. 프랑스에서 5개월 전 바둑 유학을 왔다는 Benhamin 씨(22)는 “어리지만 강한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프랑스와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는 바둑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하지만 한국은 승부가 치열하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 부분을 많이 느꼈고 어린 친구들의 독특하고 생기발랄한 수를 접해서 매우 기분이 좋다”라고 전했다.
바둑대회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승부가 끝난 곳곳에서는 기보책을 펴들고 복기를 해보는 참가자들이 속속 보였다. 이 중에서는 신세대임을 대변하듯 스마트폰을 보면서 복기를 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김경환 학생(대전중·1)은 “스마트폰에 복기를 할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다. 이것을 보면서 복기를 하면 편하다”라며 “이번 대회는 3승에서 그쳤지만 다음 대회에는 최강부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대회에도 어김없이 ‘일요신문배 어린이 바둑대회’ 참가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우연찮게 본 참가자는 권효진 학생(별망초). 권효진 학생은 지난해 개최된 ‘제3회 일요신문배 전국어린이바둑대회’에서 유단자부 3등을 차지했다. 이날 한바연 대회에서 권효진 학생은 최강부에서 열띤 경기를 치렀는데, 시합 도중 상대와 무승부를 이뤄 경기를 다시 치르는 에피소드를 겪기도 했다. 재대국을 결정한 유재성 사무국장은 “바둑에서 무승부가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보통 무승부가 이뤄지면 ‘화국’(和國)이라고 해서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고 한다. 또 다른 말로는 ‘장생’(長生)이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수이기에 그만큼 신기하고 좋은 일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 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 열띤 분위기 속에 시작된 경기는 어느새 차분하게 막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이번 대회 최강부 1위는 이연(광명북초 5)에게 돌아갔다. 최강부 2위는 이의현(응암초 5), 3위는 최재호(경성중 2), 4위는 이용빈(18)이 차지했으며, 1조 1위는 김현(18), 2위는 박연주(충암중 3), 3위는 김세진(경성중 1), 2조 1위는 신건호(중원초 5), 공동 2위는 임경찬(화곡초 2), 이건형(13)이 차지했다. 최강부 우승을 차지한 이연 학생은 “막판에 조금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다음 대회에도 또 참가하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