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할리우드 배우 보가트와 그의 부인 바콜은 누아르 장르에 어울리는 저음 목소리를 얻기 위해 목을 혹사시킨 탓에 발음 곤란이나 성대 피로 등의 증상을 겪었다.
고전 할리우드 시기를 떠올릴 때, 최고의 남자 배우는 클라크 게이블과 험프리 보가트였다. 그들은 음양과도 같았다. 클라크 게이블이 양지의 남성이었다면, ‘보기’(Bogie)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보가트는 음습한 뒷골목의 냉소적인 남자였다. 보가트라는 전설을 만들어낸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퀭한 눈빛, 시니컬한 톤, 누아르 장르의 아이콘, 모호한 도덕성…. 그 중 하나가 바로 목소리였다. 비음이 살짝 섞인 낮은 목소리는 보가트라는 배우이자 캐릭터를 완성하는 사운드였다. 보가트의 저음이 없는 <말타의 매>(1941) <카사블랑카>(1942) <빅 슬립>(1946)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 특유의 목소리는 연기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었다.
보가트는 네 번 결혼했다. 상대는 모두 당대의 여배우들이었다. 헬렌 멘켄, 메리 필립스, 메이요 메소트…. 하지만 그는 로렌 바콜의 남자로 기억된다. 무려 25세의 나이차가 있지만, 보가트와 바콜은 그 어떤 커플보다 잘 어울렸고 사랑했다. 그들의 첫 만남은 하워드 혹스 감독의 <소유와 무소유>(1944). 당대 할리우드 톱스타였던 보가트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하지만 앳되면서도 뇌쇄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한 여배우를 만난다. 바로 로렌 바콜이었고, 그녀는 첫 영화에서 보가트와 공연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저 휘파람을 불어주세요. 입술을 모으고 숨을 내뱉는 거예요”라는 허스키 저음의 명대사가 인상적이지만, 바콜의 목소리는 원래 하이톤이었다. 그녀의 모든 걸 바꾼 사람은 감독의 아내였던 낸시 혹스. 그녀는 <하퍼스 바자> 표지 모델인 바콜을 영화계로 끌어들였으며, 바콜의 매너부터 패션까지 모두 관장했고, 끊임없는 발성 훈련으로 로렌 바콜을 ‘저음의 매력녀’로 만들었다. 결혼 후 보가트와 바콜은 <빅 슬립> <다크 패시지>(1947) <키 라르고>(1948) 등 누아르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었고 그들이 함께 만들어간 비주얼의 앙상블과 낮은 톤의 사운드는 전설이 되었고, 당대의 틴에이저들은 보가트와 바콜의 저음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보가트-바콜 증후군’(Bogart–Bacall synd-rome. BBS)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음을 내기 위해 무리한 결과, 성대 바깥쪽의 근육이 지나치게 사용되고 턱 부근의 근육이 경직되는 현상이었다. 저음을 내기 위해서 폐의 공기가 거의 다 소진될 때까지 소리를 내다보면 호흡과 발성에 관련된 근육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수축하기 때문이다. 증후군은 자신의 신체 구조에 맞지 않은 음역대로 계속 소리를 낸 결과였고, 부자연스러운 탁음이나 저음 혹은 발음 곤란이나 성대 피로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심할 경우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흥미로운 건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도 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물론 치료를 통해 중증으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필름 누아르 장르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만들기 위한 작위적 발성은 배우들에게도 큰 무리였다.
1940~50년대의 일시적인 현상일 줄 알았다. 하지만 1957년 보가트가 세상을 떠나고, 바콜이 누아르 장르를 떠난 후에도, 보가트-바콜 증후군 환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유는 사회적 통념이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스피치나 대화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낮은 톤의 목소리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저음이 더 신뢰를 주고 권위를 세워 준다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대인 관계에서 저음을 사용했다. 데이비드 베컴이나 방송인 앤 로빈슨이나 소설가 로빈 쿡 등이 그런 예였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원래는 날카로운 하이 톤이었지만 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바꾸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환자 수는 과거보다 세 배가량 많아졌다. 일반적으로 남성 환자가 더 많았지만, 남자들이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보가트-바콜 증후군으로 종종 고생했고, 특히 여교사들이 이 병에 많이 걸렸다. 교단에서 권위를 세우기 위해 성대를 과하게 사용한 것이다. 배우, 가수, TV와 라디오 진행자들 중 저음을 주로 내는 사람들에게 그 증세가 종종 나타났고, 그들은 언어 클리닉에서 치료받아야 했으며,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은 위대한 배우이자 독특한 목소리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사족 하나. 험프리 보가트는 입술의 상처로 인해 s를 th에 가깝게 발음하는 작은 장애가 있었는데, 여기엔 두 가지 설이 있다. 해군 복무 시절, 그는 군 형무소에서 근무했는데 죄수 하나가 탈옥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끝까지 탈옥수를 추적한 끝에 결국 체포했고, 그 과정에서 입술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 하지만 군 병원 의사의 봉합 실력은 형편없었고, 엉망으로 꿰맨 결과 결국은 발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릴 적 나무 조각에 찔려 입술을 다쳤다는 것. 후자가 정설에 가깝지만, 전자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