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전 대통령 | ||
<일요신문>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전씨 일가 재산 추적을 통해 전씨 일가가 수백억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을 밝혀내 보도한 바 있다. 법무부가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에게 제출한 추징금 고액 미납자 현황에 따르면 전씨는 아직도 1천6백72억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다.
그런데 전씨 일가 보유 부동산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씨 맏며느리와 손자들 명의로 돼 있던 부동산 소유권이 최근 들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이들 부동산의 시가는 최소 1백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전 전씨 일가는 투기 바람이 일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 대규모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재산증식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일어난 전씨 일가 소유 부동산의 ‘이상한’ 변화를 추적해봤다.
서울 서교동 364-26와 367-27에 소재한 A전시장 건물·토지는 전씨 장남 재국씨 부인 정도경씨와 전씨 장손자인 16세 전아무개군 공동소유였다. <일요신문>은 지난 2001년 5월, 467호와 468호 두 차례에 걸쳐 이 부동산에 얽힌 의문점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수천억원대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던 전씨의 미성년자 손자 명의로 거액의 부동산이 존재한다는 점이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전씨 일가 소유 364-26, 27번지 토지는 약 2백10평이고 A전시장 건물 연건평은 2백40여 평이다. 2001년 <일요신문> 보도 당시 이곳 평당 시세는 약 1천만원선이었다. 대지 시세만 약 20억원을 넘어섰던 셈이다.
현재 A전시장 건물 일대의 평당 시세는 2001년 당시보다 3~4배 정도 뛰었다고 한다. 인근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최근 평당 시세가 3천만~4천만원선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 부동산 업자는 “최근 A전시장 부근의 건물 매입을 원하는 손님이 있어서 그 건물 주인에게 물었더니 ‘평당 4천만원 이상 주면 팔겠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A전시장 건물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토지 가격만 최소 6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셈이다.
이 ‘금싸라기’땅과 건물이 최근 다른 사람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지난 9월1일 이아무개씨에게로 등기부상 소유권이 옮겨진 것이다. 63년생인 이씨는 미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 경북 구미에 소재한 중소기업 P사의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언론에서 크게 보도해서인지 이 동네에선 A전시장 건물·토지가 전씨 일가 소유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그런데 부동산업을 하는 우리도 A전시장 건물·토지를 매물로 내놓았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소유권 이전이 ‘소리소문 없이’ 진행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 업자는 “지금도 평당 시세가 3천만~4천만원 정도이고 계속 땅값이 오르고 있어서 이 근방 땅 주인들은 모두 지금 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요즘 같은 불황에 땅값이 계속 올라주는데 뭐 하러 지금 팔겠나”라 반문하기도 했다.
▲ (위)전두환씨의 맏며느리와 장손자가 공동소유했던 서교동 A전시장 건물과 토지가 9월1일 처분됐다. (아래)전씨의 19세 장손녀가 10분의 7 지분을 갖고 있던 논현동의 건물과 토지도 지난 1월 소유권이 이전됐다. | ||
A전시장은 전재국씨 소유인 (주)리브로에서 운영하는 종합 매장이다. 지난 9월1일에 이씨에게 매각됐지만 아직도 A전시장은 영업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씨측 인사는 “원래 우리가 사업 용도로 쓸 목적으로 샀는데 그쪽(전씨 일가)에서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몇 달만 유예기간을 달라. 다른 공간을 구해서 곧 나가겠다’고 사정을 해 몇 달간만 월세를 받고 임대해주기로 했다”고 정황을 설명했다. 전씨 일가가 자금이 급하게 필요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전씨 일가는 19세 장손녀 명의로 돼 있던 거액의 부동산을 처분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85-6 소재 토지·건물의 10분의 7 지분이 전씨 장손녀인 전아무개양 명의로 돼 있었는데 지난 1월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 전양 명의로 돼 있던 논현동 부동산을 인근 부동산 업자들의 시세로 환산하면 토지 가격만 최소 40억원에 이른다. 전씨 일가는 올해에만 최소 1백억원대의 부동산을 처분한 셈이다.
이렇듯 전씨 일가는 서울 소재 ‘금싸라기’땅을 잇달아 팔아넘겼지만 최근 투기 바람이 불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일대의 대규모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5월28일 경기도 연천군 일대의 3천5백여 평 토지를 매입한 사실이 〈일요신문〉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225번지 소재 1천3백88평의 토지가 정도경씨 명의로 매입됐으며 북삼리 222번지 소재 1천5백75평 토지와 북삼리 223번지 5백56평 토지가 전씨 장손녀인 전아무개양(19) 명의로 매입됐다. 특히 222번지 토지에는 2층 건물 세 개가 있는데 이 건물들도 모두 전양 명의로 돼 있다.
현재 이 일대의 평당 시세는 약10만~20만원선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 업자들의 설명이다. 이를 환산하면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 위치한 전씨 일가 소유 부동산의 현 시세가 3억5천만원선으로 추정된다. 전씨 일가가 올해 매각한 서울 홍대 앞이나 강남구 논현동 소재 부동산에 비해 턱없이 낮은 시세로 보인다.
그러나 연천군 일대가 최근 토지가격 폭등지역으로 주목받는 것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건설교통부가 올 3분기 땅값 조사결과 경기도 연천군 등 6개 시·군에 대해 “물가상승률과 전국 평균 지가 상승률보다 30% 이상 높아 ‘토지투기지역’ 지정 후보에 올랐다”고 지난 10월29일 밝혔을 정도다.
인근 부동산 업자들은 “연천군 일대 땅값이 최근 들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밝힌다.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합작회사가 파주시와 연천군에 걸쳐서 약 1백만 평 규모의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현재 공사중이라고 한다. 부동산 업자들은 “대기업 단지가 들어서면 그 하청업체들도 들어올 것이고 덩달아 대규모 주택시설과 문화시설도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잘것없는 농촌이었는데 산업화 도시가 된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돈 가진 사람들이 몰려와 ‘땅 투기’지역이 돼 버렸다”고 설명한다. 다른 부동산 업자는 “연천군 인근에 골프장과 대규모 테마공원이 들어선다는 소문도 나있는 상태이며 이곳 일대 땅값은 계속해서 뛰어오를 전망”이라 밝혔다.
지난 5월에 이곳 부동산을 매입한 전씨 일가는 얼마만큼의 이득을 얻었을까. 기자가 연천군의 한 부동산 업자에게 “지난 5월 이곳 토지를 매입했다면…”이라고 묻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업자는 “(땅값이) 족히 두배는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 답했다. 전씨 일가는 투기 바람이 불고 있는 이 일대에서 불과 5개월여 만에 보유 토지 가격을 ‘두배로 올린’ 셈이다.
한편 〈일요신문〉은 서울 홍대 앞과 논현동 부동산을 매각한 배경과 경기도 연천군 일대 대규모 부동산 매입 경위를 전재국씨의 부인인 정도경씨에게 물었다. 정씨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렇게 사적인 것에 대해 굳이 물을 필요가 있나”라며 “누구나 필요하면 땅을 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는 것이다”고만 짤막하게 답했다. 정씨는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며 상세한 경위 설명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