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조선대 교수·양선숙 경북대 교수와 12년 공동노력 결과
정병훈 교수 등이 완역, 출간한 <인간지성론> 표지와 정병훈 교수
[일요신문] 국립 경상대학교(GNU·총장 권순기) 인문대학 철학과 정병훈 교수가 17~18세기 영국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인간지성론>(한길사, 1권 596쪽, 2권 464쪽) 원전을 12년에 걸친 작업 끝에 한국어로 처음 완역해 출간했다.
이 방대한 작업에는 조선대 철학과 이재영 교수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양선숙 교수가 함께 했다.
존 로크는 정치·사상적으로 혼돈과 변혁의 시대인 근대 초기에 살면서 근대정신의 토대를 정초(定礎)한 철학자다.
그가 남긴 업적은 오늘날에도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학·심리학·교육학·신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그의 사회·정치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혁명정신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
<인간지성론>은 로크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통치론>, <관용론>, <교육론> 등 로크의 다른 저작들의 인식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로크 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모두 4권으로 구성돼 있다.
제1권 ‘본유개념’은 우리가 영혼 가운데 동일률이나 도덕률과 같은 선험적인 원리들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본유이론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로크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원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며,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모든 관념은 경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제2권 ‘관념’에서 로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체, 공간, 운동, 존재, 힘, 원인과 결과 등의 관념들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로크는 ‘우리의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유래한다’는 경험주의의 테제를 확립하고 있다.
제3권 ‘낱말’에서는 언어의 본성과 용법을 검토한다. 로크는 일반어의 의미 혹은 지시체를 추상적 일반관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후 버클리와 흄의 공격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대 철학의 주된 관심사인 언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조명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4권 ‘지식과 의견’에서는 지식의 기원, 종류, 확실성의 정도, 지식의 범위를 다룬다. 로크는 확실성을 가진 지식의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개연성이 지식의 부족을 보충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중요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우선 <인간지성론>은 근대철학에 있어서 ‘철학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또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관념을 통한 길’을 보여준다.
아울러 로크는 <인간지성론>에서 일반명사 분석을 통해 추상관념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언어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그 논의는 오늘날 언어철학의 의미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로크는 <인간지성론>에서 뉴턴 역학을 비롯한 근대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지식의 개념을 확립하려고 했다.
이런 점들에서 볼 때 <인간지성론>은 서양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천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인식론뿐만 아니라 현대의 심리철학, 과학철학, 언어철학, 형이상학, 종교철학, 윤리학 등 광범위한 철학의 문제에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의 저작들과 함께 근현대 철학의 어젠다를 설정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병훈 교수는 “<인간지성론>은 근대철학 이해의 기본이자 현대철학의 여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도 필요한 저작이다. 로크 원전의 영어가 쉽지 않아 일반 독자나 비전공자가 읽기에 매우 어려웠지만, 원전 번역으로 많은 이들이 로크의 사상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특히 로크 철학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로크의 정치사상이나 근대사상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