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안제 전 위원장 | ||
그는 기자에게 “내가 한 말을 가감없이 그대로 반영해줄 것”을 몇 번이고 확약받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예상 질문서까지 뽑아놓고 기다렸는데, 헌재라고 하는 곳이 그 중요한 판정을 하면서 추진위원장 말 한마디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그는 먼저 헌재에 직격탄을 퍼부었다. 반대론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도저히 이성적인 설득으로는 안 될 것 같은 어떤 거대한 벽을 느꼈다. 수도 이전은 절대 불가하다는 그들의 무조건적인 논리를 여기서 말하면 또 논란이 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헌재의 위헌 판결 가능성을 전혀 예상치 못했나.
▲솔직히 꿈도 못 꿨다. 이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합헌 판결을 하더라도 어떤 부대조건은 반드시 달 것이다’ 하는. 예컨대 여론의 동의를 얻는 데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달라든가 하는 정도의. 난 헌법학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헌재의 판결에 수긍이 가야 하는데 도저히 수긍이 안 간다. 관습헌법이란 것을 그렇게 함부로 들먹이면 앞으로 벌어질 그 논란들은 다 어찌하려는지….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하고자 했으면 좀 더 타당한 논리 개발을 했어야지. 최고의 율사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논리가 빈약해서 어정쩡하게 관습법 하나 달랑 던져놓고 다시 한번 국론을 분열시키고 여러 사람을 당혹케 만드는 것 아닌가.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데 좀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지 않나.
▲내 역할이 그것이었기에 나름대로 힘 닿는 데까지 찾아다녔다. 심지어는 헌재의 판결에 대비하기 위해서 내가 아랫사람들에게 ‘자료를 준비해라. 내가 직접 (헌재에) 가서 설명을 하마’라고 했다. 그래서 예상 질문까지 미리 짜놓고 거기에 맞춰 답변서를 다 준비해놓고 부를 날만 기다렸다. 국정감사에서도 날 증인으로 불러서 나갔는데, 헌재에서 그 중요한 판결을 준비하면서 대체 뭘 했는지…. 그래도 최고 책임자였던 날 찾지도 않는 것이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나라당이나 국민연대 등 반대 세력들과는 대화하지 않았나.
▲솔직히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느꼈다. 국민연대 관계자들 역시 대부분 내 동료들이거나 제자들이어서 개인적인 친분이 다 있다. 그들과도 공적 사적 자리에서 숱한 토론과 언쟁을 벌였다. 그들도 기본적으로 수도권 과밀 집중 현상 해소와 지방 분권 추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수도 이전은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론자들의 논리의 빈약 아닌가.
▲나도 그들의 반대 이유를 심정적으로 알기는 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사석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말할 순 있어도 공식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그런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인 것이다.
─지난 8월 중요한 시기에 위원장직을 사퇴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일부 언론의 좋은 시빗거리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위(청와대)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둥, 이해찬 총리와의 불화설도 불거져 나오고, 참….
내가 메모를 잘 하는 성격이어서 정확히 기억하는데, 입지 선정이 이뤄지면 사퇴하겠노라고 혼자 결심한 시기가 7월17일이었다. 내 역할을 ‘입지 선정까지’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8월11일 입지 선정 발표 이틀 후 내 계획대로 이 총리에게 사의의 뜻을 전하고, 15일 청와대에 사직서를 냈다. 물론 충분히 내 입장을 설명했다. 이 총리도 무척 말렸고, 청와대에서도 처음에는 ‘대통령이 수리를 안하겠다고 하신다’는 전갈이 왔다. 내가 ‘그래도 난 그만둔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그럼 후임 위원장이 정해질 때까지만이라도 계속 맡아달라’고 하기에 정확히 한 달을 더 자리를 지킨 뒤 후임 위원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지난달 25일 노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하는 헌재 판결이 났으니, 국회에서 헌법을 고쳐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내가 대통령께 건의한 것은 ‘사실상 행정수도는 어려워졌으니, 대안으로 행정도시 건설을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수도이니만큼, 청와대와 외교 안보 통일 관련 분야 부처는 서울에 남겨두고 나머지 행정부처를 모두 옮기는 방안이다. 물론 이조차도 야당 등 반대론자들은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헌재의 판결 역시 궁극적으로는 ‘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것인 만큼 무조건 반대만 고집하는 것도 명분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