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남중·고 동창회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왼쪽)와 문재인 대표. 연합뉴스
최근 언론이 ‘PK 전성시대’를 보도하는 것을 두고 TK 출신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장은 그래보여도 새누리당의 기반은 TK”라고 누차 강조하면서 “총선은 몰라도 대선만은 TK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도 했다. 그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치권이 현재 ‘PK시대’를 연 것은 맞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8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의원을 새 대표로 뽑았다. 광주와 전남·북이 기반인 새정치연합은 1년 뒤 공천권을 쥔 PK 출신 당대표에게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맡겼다. 공교롭게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 대표는 부산의 경남중학교 동문이다. 차기 대선 후보군에서 상위에 랭크된 두 대표가 앞으로 발생할 각종 변수를 잘 뛰어 넘는다면 김영삼 정부 이후 PK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는 셈이다.
지난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남중·고 재경동창회 신년하례회에는 두 대표가 나란히 참석해 동문들에게 구애를 했다. 1년 선배인 김 대표는 “항상 영도에서 날고뛰는 용마(경남중·고의 상징물)의 기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고, 문 대표는 “부산·경남의 더 큰 발전을 위해 절반의 성원은 새누리당과 김 대표에게, 나머지 절반은 새정치연합과 저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두 대표가 힘을 합하면 서울이 아닌 부산이 제1의 도시가 되겠네”라는 의미심장한 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김·문 대표 모두 대권주자군에 속해있기 때문에 PK 표는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부산이 정치권을 장악한 것 같지만 결국 두 사람은 비주류로 전락한 TK와 충청, 호남, 강원에 구애를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호남이 문 대표의 손을 들어주고, TK가 고민을 한다면 김 대표는 필패다.
13일 ‘한국갤럽’의 주간조사를 보자. 김 대표와 문 대표가 대선에서 양자대결을 펼친다는 가정 아래 지지율은 31% 대 51%였다. 문 대표는 TK를 뺀 전 지역에서 김 대표를 앞질렀는데 TK 지지율은 김 대표 45%, 문 대표 32%였다. 반면 PK에선 문 대표가 48%로 김 대표(38%)보다 앞섰다. 김 대표로선 TK 집토끼가 뛰쳐나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집단속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한 TK 정서가 곱지만은 않다는데 있다. 1월 중순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정부를 향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역전했다. TK에선 처음 있는 일이어서 TK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PK시대를 맞았다면 검찰은 TK시대를 열었다. 정치와 사정(司正)은 물고 물리는 영역이다. 정치는 사법개혁을 통해,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칼을 빼들 수 있다.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혹자는 “검찰 내 TK 출신의 약진이 정치권 조준과 관련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성재 중앙지검장
특정 지역 편중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정라인에 대통령의 고향인 TK 출신들을 전진 배치시킨 것을 두고 정가에선 두 가지로 해석한다. 여당의 전략 쪽 관계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물러나게 되면 검찰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춘대원군 부재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읽힌다”며 “30% 밑으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법 중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이고 하나는 사정정국이다. 칼을 빼 나쁜 정치인을 겨눈다면 지지율은 그냥 올라가게 돼 있다”고 해석했다. 정치권을 위축시키기 위해선 ‘시범케이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PK와 TK가 정치적으로 융합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올해 동남권 신공항이 어디에 들어설지 결판이 난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울산·경남과 TK는 밀양 신공항을 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백지화됐지만 이번엔 어디로 결정되더라도 PK와 TK는 갈라서게 돼 있다. 만약 백지화가 이번 정부에서도 반복된다면 영남권 전체가 현 정부와 새누리당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주목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짊어진 짐이 너무 많다. 우선 유 원내대표는 여당 지도부 내 유일한 TK다. 삭막해진 TK 여론을 정부에 전하고 또 보듬어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정서를 되돌려놔야 한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이고 당”이라는 슬로건 아래 당선됐지만 당·청관계를 긴장 모드로만 가져갈 수 없다. 협력과 견제의 줄을 잘 타야 한다. 게다가 다수 의원과 국민이 요구하는 ‘건강한 여당’도 만들어야 한다. 딜레마가 분명한 짐이다.
PK가 정치1번지가 됐다고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총선까지 1년이 더 남았고 변수는 많다. 박 대통령이 후계구도를 계획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권으로선 PK와 TK가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