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박근혜 대표의 친위그룹이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
박 대표는 그간 “새로운 정치를 위해 죽어도 계보정치는 안한다”며 주변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왔다. 하지만 국가정체성 논란과 최근의 국회 파행 등을 거치면서 이제는 ‘개인 플레이’가 아닌 ‘팀 플레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박 대표는 여권과의 싸움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워 왔으나 당내 지원은 시원치 않았다.
또한 대중적 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내 기반이 취약해 비주류의 타깃이 됐던 박 대표에게 그의 생각과 입을 뒷받침하고 대변하는 ‘친위대’를 형성하라는 당안팎의 요구 또한 줄기찼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 박 대표의 친위그룹으로 누가 뜨고 있을까. 우선 전여옥 대변인이 꼽힌다. 지난 총선에서 박 대표와 함께 전국의 시장, 골목길을 누빈 전 대변인은 박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전 대변인의 아침 표정을 보면 박 대표의 그날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지난 10월28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이해찬 총리가 한나라당 폄훼 발언이 쏟아내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박 대표가 처음 찾아 대책을 숙의한 사람은 전 대변인이었다.
두 사람의 돈독한 정은 정치적 동지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이다. 지난달 전 대변인이 격무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박 대표는 직접 전화를 걸어”그렇게 누워 있으면 누가 날 도와주느냐”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가 소속 의원에게 사적인 전화를 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 주목할 사람으로는 유기준 의원이다. 부산 출신인 소장개혁파 유의원은 박 대표와 젊은 개혁성향 의원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박 대표가 한나라당 출입 기자단과 만찬을 할 때 합석한 의원이 유 의원이었다.
당시 회식에 참여했던 한 기자는 “초선인 유 의원이 당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박 대표 회식 자리까지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있는 줄 몰랐다”며 “당시 참석자 모두가 유 의원 출현에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영남권·수도권 출신 초선의원 10여 명이 모여 박 대표 ‘도우미’ 모임을 결성했다. 당내에서 박 대표를 돕자며 그룹이 결성된 것은 처음이다.
회원은 곽성문(대구 중·남), 김태환(경북 구미을), 권경석(경남 창원갑), 김정훈(부산 남갑), 유기준(부산 서), 주호영(대구 수성을), 장윤석(경북 영주), 김충환(서울 강동갑) 의원 등으로, 지역별로 선정했다는 후문이다. 유 의원과 곽 의원이 모임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들은 “박 대표 회식자리에 나가 폭탄주나 대신 마시자는 ‘흑기사’ 모임에 불과하다”며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단순한 도우미 모임은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CF와 유기준, 전여옥, 유승민 의원(왼쪽부터) 얼굴을 합성한 것. | ||
한나라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 ‘3박’ 중의 한 명으로 매주 박 대표에게 당의 중장기 전략을 보고하는 박형준 의원(부소장),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인 이주호 의원, 율사 출신의 장윤석 김재경 의원 등도 박 대표가 가까이 하는 의원들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이었던 유승민 의원도 박 대표와의 거리가 무척 좁혀졌다. 유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 대표 연설 작성을 주도했으며, 여권이 추진중인 4대 쟁점법안 등에 대한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 대표의 활동도 심상치 않다. 박 대표는 최근 황인태 서울디지털대학교 부총장을 정책특보로 임명했다. 박 대표가 정책특보를 임명한 것은 황 특보가 처음이다. 한나라당이 2030 세대 등 취약 계층을 집중 공략해 2007년 대선에서 51% 지지율로 집권한다는 ‘5107 프로그램’을 준비중인 상황에서 황 부총장의 정책특보 임명은 박 대표의 대권전략과 연계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표는 최근 당내 백지신탁추진 태스크포스팀 소속 의원들과의 모임을 시작으로 3선 의원그룹과 두번, 수도이전 특위, 5선 이상 중진 그룹, 국회 상임위원장, 국가보안법 태스크포스팀 등과 잇따라 오찬·만찬 회동을 가졌다. 특히 이번 국회 등원 결정을 앞두고는 등원에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한 당직자는 “박 대표가 최근 약점으로 지적돼온 스킨십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며 “국회 파행 및 등원을 둘러싸고 김덕룡 원내대표는 비판해도 박 대표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박 대표의 스킨십 정치를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10일 의총에서 국회 등원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남경필 원내수석대표는 “박 대표의 뜻”이라며 반발을 일축했다.
박 대표 주변인사들은 자신들은 이전의 측근정치, 가신정치와 질적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표의 인적 네트워크 구성 방식은 독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박 대표는 중요한 판단에 앞서 여러 의원들에게 먼저 자문을 요청하고, 실력을 검증한 뒤에야 비로소 ‘벽’을 허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당내에 그동안 측근이나 변변한 지원세력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가려쓴다는 것이다.
박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과거 1인 보스를 위해 맹목적 충성심 하나로 똘똘 뭉쳤던 사람들과 같은 시각으로 보면 안된다”며 “공적 시스템을 통해 일로서, 능력으로서 각자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한나라당에서 박 대표 측근그룹 형성은 당의 중심축으로서 당의 안정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당내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특히 사사건건 박 대표와 각을 세워온 수도권 비주류의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들은 박 대표로는 다음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박근혜 불가론’을 주장하고 있다. 한 인사는 “가능성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엉뚱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였다가는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며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