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심판, 득보다 실이 많다
우리는 거의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며 살아간다. 만남은 단순히 만남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나름의 잣대로 옳다 그르다 심판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그 심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문제는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나름의 잣대’가 대개는 정보매체가 쏟아내는 ‘시뮐라시옹(Simulation)’에 의해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 믿고, 실재와 허구, 본질과 현상을 착각하며 살아간다. 진정한 사유는 정지되어 있고 복사물이 더 진짜 같은 세상이 되고 있다. 사이버 세상이 가속화 되면서, 무분별한 온라인 댓글과 동영상이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예측대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세상은 득보다 실이 많을 뿐이다.
■ 법의 심판, 유한하고 제한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영리하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에만 호소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규칙과 규범 등 객관적 의미의 잣대, 즉 법(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법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조선 시대에도 8조법금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의 법가사상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법가사상을 종합했던 한비자(韓非子)는 통일대업에 필요한 군주의 권술(權術)을 조언했고, 진시황은 이를 거의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정작 한비자(韓非子) 자신은 동문수학했던 친구, 이사(李斯)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 후 근대적 법(法)들의 진보는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인지, ‘법은 최대한의 도덕’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김영란법’을 둘러싼 소동을 보면, 법이나 도덕이나 하나의 잣대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말해 세상은 분명 법과 제도에 의해 발전하고 진보하였으나, 여전히 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 역사의 심판,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동양의 성현, 공자(孔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배출되는 혼란한 시기에 ‘春秋’라는 역사서를 통해 당대를 비판하고 대의명분을 세우려 하였다. 노(魯)나라 242년 간에 발생했던 사건에 대하여 단순히 사실만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예와 명분에 입각하여 포(褒, 옳음)/폄(貶, 그름)의 잣대를 엄정하게 제시하였다. 역사 앞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사안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도 쉽게 판단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평균수명 100세 시대, 우리에겐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 공자(孔子)조차도 자신이 필생을 걸고 주장했던 대의명분과 세상은 정반대(戰國時代)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공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 우주의 섭리, 그 앞에 겸허해야 한다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 그는 임진왜란 때 약탈된 서적을 통해 일본 에도시대의 사상 형성에 큰 공헌을 한 분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아는 분들도 퇴계의 불행했던 가정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생후 1년만에 부친상을 당하고 친형은 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되고, 첫 부인을 27세에 잃고, 두 번째 부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데다 48세에 사망하였고, 둘째 아들은 요절하였다.
과연 퇴계의 삶은 행복했던 것일까? 불행했던 것일까? 혹시 퇴계의 지독했던 매화사랑은 자신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자연에 합일하고자 했던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과학을 통해 자연을 파헤쳐 가고 있고,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그러나, 광대무변한 우주의 섭리, 여전한 우리의 무지 앞에 겸허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보라, 강호제현(江湖諸賢)들이 뭐라고 해도 봄은 확실히 오고 있다. 이 봄, 우리 모두 도산서원이나 섬진강변으로 매화나 보러 갈 일이다.
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 리더십교육/ 성과향상 코칭/ 감정코칭 등 다수 경영분야 강의
► 대구 성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MBA)/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 박사(수료)/ LG 인화원 기획팀장(부장)/ 팬택 아카데미 본부장(상무)/ 엑스퍼트컨설팅 본부장(상무)/ LG CAP,Work-out Facilitator/ Hay Group Leadership Facilitator/ KMA Assessment Center Assessor